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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ㆍ사시 수석 '공부의 신' ... 학창 시절엔 운동권

입력
2014.09.29 04:40

현역 정치인을 공부로 서열화한다면 원희룡 제주지사가 단연 수위에 오를 것이다. 그는 학력고사와 사법고시에서 모두 수석을 차지했다. 전무후무한 일이다. 인터뷰 초반 “제주에서 다른 건 별로 할 게 없었던 것 아니냐”고 농을 건넸더니 곧바로 “그렇다”는 답이 돌아왔다. 내친 김에 “연애도 안 했느냐”묻자 “여학생 몇 명 쫓아다니긴 했는데 지금 한 가정이 유지되고 있으니 너무 깊이 알려고 하지 말라”며 웃었다.

그런 그가 대학 때나 정치인으로 변신한 후에 항상 저항하는 비주류를 자처한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원 지사는 대학 다닐 때 이른바 운동권이었다. 한 때 우리 사회의 파워그룹 중 하나로 불렸던 ‘서울대 법대 82학번’에는 새누리당 나경원 의원도 있고 주사파의 대부로 불리는 김영환씨도 있다. “82학번은 고등학교로 치면 1등과 꼴등이 친구로 지내는 교실 비슷한 분위기였다. 운동권 핵심과 부잣집 애들, 평범한 학생들이 다 가까웠다. 시대상황이 공감대를 사서 그랬던 것 같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갑작스레 법조인으로 방향을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원 지사의 첫 마디는 “따로 할 게 없었다”는 것이다. 1987년 민주화 투쟁 이후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을 경험한 뒤 “이념과잉으로 가는 건 시대착오적인 것 같았고 직업적 혁명가를 꿈꾸는 건 오버 같았다”고 했다. 당시엔 선택지가 대학원 진학과 고시와 취직 중 하나였는데, 결국은 “단판 승부를 보기로 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2년 가량 공부한 뒤 수석합격했다.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원 지사는 여야 모두에서 실질적인 영입 대상 1순위였다. 그는 고민 끝에 한나라당을 택한 이유로 합리적 보수의 필요성을 언급하더니, 짐짓 웃으며 “허탈하게 얘기하면 당시 야당에는 김민석이니 누구니 하는 애들이 많아서 굳이 내가 없어도 되겠더라”고 했다. 그러면서 “동년배끼리 경쟁하는 것과 희소가치를 갖고 외롭게 가는 것 모두 장단점이 있다”면서 “당시엔 한나라당에서도 김부겸ㆍ김영춘 등과 함께 있어서 외롭지 않았다”고 했다.

원 지사는 2007년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했을 때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큰 절을 올렸다가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다. “그냥 인사만 하고 나왔어야 하는데, 너무 예의가 발라서 탈이 난 것”이라며 멋쩍게 웃던 그는 “많은 걸 생각한 계기였다. 그 뒤로 다시는 누구와 악수를 할 때조차 고개를 크게 숙이지 않는다”며 비밀스런 결심까지 털어놨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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