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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공화국' 베네수엘라의 감춰진 진실

입력
2014.09.19 13:31

보형물 모자라 사회 문제로

민간의 외국산 수입 금지로 미국산 공급 턱없이 부족, 수술비 인상 반대 시위도

왜 성형에 유난히 집착할까

가슴 성형은 하나의 통과의례, 미인대회가 신분상승 기회로

지난 4일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의 한 외과병원에서 가슴 성형수술이 진행되고 있다. 카라카스=AP연합뉴스
지난 4일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의 한 외과병원에서 가슴 성형수술이 진행되고 있다. 카라카스=AP연합뉴스

지난 15일 AP통신은 베네수엘라의 이상한 물자 부족에 대해 보도했다. 미국 등 서방 국가들과의 관계 악화에 따른 수입 감소와 외환거래 통제 강화로 가슴성형을 위한 보형물 구하기가 힘들어졌다는 내용이었다. 성형 보형물이 모자란다고 사회 문제가 되는 나라는 드물다. 뉴스거리가 되기도 어렵다. 그러나 베네수엘라는 예외다.

베네수엘라는 미인의 나라다. 세계 최고 권위의 미인대회인 미스 유니버스에서만 7명의 우승자를 배출했다. 주요 미인대회의 우승은 21번 차지했다. 두 번째로 많은 수상자를 배출한 미국보다 7회나 많은 횟수다. 베네수엘라하면 미인대회를 떠올리는 이유다.

베네수엘라는 성형의 나라이기도 하다. 미인의 나라라는 별칭에 어울리게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이 남다르다. 미에 대한 강박은 성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제미용성형학회(ISAPS)가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인구 2,880만명)에서만 3만8,500건의 가슴 성형수술이 이뤄졌다. 인구 수 대비 가슴 성형 비율을 따지면 미국(3억1,300만 명 중 31만3,000건)보다 약간 높은 수치다.

1인당 국민소득(GDP)을 따지면 베네수엘라의 가슴성형 사랑이 두드러진다. 1인당 GDP가 5만3,142달러 수준인 미국에선 가슴성형이 사치에 해당하는 반면 베네수엘라(1인당 GDP 1만4,141달러)에선 중산층의 필수로 여겨진다. 최근까지만 해도 가슴성형은 약국이나 직장에서 흔히 마주할 수 있는 경품이었다. 심지어 정치인의 선거 운동에도 활용됐다. 보형물 수입이 급감하자 베네수엘라 여성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예전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인증하는 가슴성형 보형물을 손쉽게 구했으나 정부가 민간업자의 외국산 수입을 금지시키면서 보형물은 희귀물품으로 전락했다.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국부 유출을 막는다는 이유로 베네수엘라 화폐인 볼리바르를 외국 화폐로 바꾸는 행위를 제한했다. 베네수엘라성형학회의 라몬 자파타 회장은 “베네수엘라 여성들의 불만이 많다”며 “그들은 자존감에 관심이 아주 많다”고 AP통신에 밝혔다. 지난 봄 반정부 시위에서 식품 부족과 외환정책에 대한 불만과 더불어 가슴성형 수술비의 인상에 항의하는 피켓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미국산 보형물 확보가 힘들어지면서 베네수엘라의 주요 무역 국가인 중국산 보형물에 여성들의 눈길이 옮겨가고 있다. 값이 저렴하나 정부 검사나 학계의 검증을 받지 않아 베네수엘라 의사들은 사용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2009년 미니 유니버스에 당선된 베네수엘라의 스테파냐 페르난데스. 2008년 미스 유니버스도 미스 베네수엘라였다. AP연합뉴스
2009년 미니 유니버스에 당선된 베네수엘라의 스테파냐 페르난데스. 2008년 미스 유니버스도 미스 베네수엘라였다. AP연합뉴스

베네수엘라 여성들이 유난히 성형에 집착하는 이유는 문화에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베네수엘라에선 가슴성형이 어른이 되는 하나의 통과의례로 받아들여진다. 15세 생일 선물로 가슴성형 수술을 받는 경우도 많다. 라틴 아메리카에선 전통적으로 15세가 되면 성인 여성으로 받아들인다. 성형외과 의사 다니엘 슬로보니아닉은 “다른 사람보다 예뻐지고 싶어하는 것은 (베네수엘라의) 문화다. 빈민가에 사는 여성도 가슴성형 수술을 받는다”고 밝혔다.

“미인대회가 미국 미식축구 슈퍼보울처럼 여겨지는 베네수엘라”(베네수엘라 작가 알렉산더 히달고)의 사회적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다. 미스 유니버스 우승자는 살아있는 신으로 취급 받는다. 베네수엘라에서 미인대회 입상은 미천한 신분의 여성에게 신분상승을 위한 엘리베이터 역할을 종종 한다.

이상언 인턴기자(동국대 국제통상학과 3년) 김지수 인턴기자(숙명여대 미디어학부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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