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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내년 경기부양 예산 신뢰ㆍ책임ㆍ형평 부족하다

입력
2014.09.18 20:00

내년도 정부 예산안이 올해보다 5.7%, 20조2,000억원이 늘어난 376조원으로 편성됐다. 금융위기 이듬해인 2009년(10.6%) 이후 가장 큰 폭으로 팽창했다. 복지예산이 115조5,000억원으로 처음으로 전체 예산의 30%를 넘어섰고, 안전예산이 17.9%로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 예산 증가분 대부분은 기업투자 촉진책, 일자리 창출 및 비정규직ㆍ저임금근로자 지원 등에 투입된다. 한마디로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확장적 재정운용 방침이 과감히 반영됐다. 하지만 세입이 부진한 가운데 씀씀이만 커져 내년 재정적자는 33조원으로 불어나고, 국가채무도 570조원을 넘어서는 등 재정건전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확장적 재정정책은 폭넓은 국민적 공감을 얻었다. 장기 저성장 우려와 극심한 내수 부진, 원화 강세에 따른 수출 둔화 우려 등이 작용했다. 특히 올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전분기 대비 0.5%로 추락하는 등 보다 과감한 경제활성화 필요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적극적 재정정책과 무분별한 나랏돈 풀기는 엄연히 구별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예산안은 신뢰ㆍ책임ㆍ형평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우선 이번 예산안이 재정정책에 대한 정부의 신뢰를 훼손하고 있다는 얘기다. 확장적 재정정책의 전제는 잠시 나랏빚을 늘려 돈 풀기에 나서더라도 현 정부 임기 내 그 빚을 해결하고 재정건전성도 회복하는 것이었다. 최 부총리도 일찍이 “이번 경기부양에 쓴 국가채무는 박근혜 정부 임기 전까지 갚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정부는 예산안에서 합리적인 재정건전성 회복 방안을 구체적으로 냈어야 한다. 하지만 예산안엔 내년도에 GDP 대비 마이너스2.1%까지 악화하는 관리재정수지가 2018년엔 마이너스1%까지 개선된다며 은연중 균형재정 달성 목표 포기를 선언했다.

책임 문제는 예산 씀씀이를 얼마나 야무지게 짰느냐는 질문과 직결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만 해도 ‘공약가계부’를 처음으로 작성하고 예산 절감을 위한 지출구조조정을 강조했다. 그런 기조라면 이번 예산안에서도 쓸 곳엔 쓰되, 줄일 건 줄이는 책임 있는 편성이 이뤄져야 했다. 그러나 이번 예산안은 부처의 요구액을 거의 다 수용한 무분별 예산에 가깝다. 당초 줄이기로 했다가 대거 증액한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등도 자칫 국회의원들의 지역구 선심예산으로 흘러 들어가기 십상이다.

형평 문제는 팽창예산을 뒷받침할 실질 증세가 과세 형평성에 어긋났다는 얘기다. 이미 담뱃값 인상과 주민세와 자동차세 등 지방세 인상 방안이 나왔지만, 모두 소득 역진을 초래하는 간접세여서 결국 서민의 조세부담만 높일 수밖에 없다. 반면 예산안과 함께 처리될 세법개정안엔 소득세 최고세율 적용구간 조정 및 세율 인상 등 지난해에 논의된 부자증세방안도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최 부총리는 예산안 설명에서 “경제활성화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예산안이 국회에서 제 때 처리되길 바란다”고 요구했다. 하지만 요구에 앞서 정부는 신뢰ㆍ책임ㆍ형평의 결여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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