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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갑자기 동시에 벌어지는 '세월호 지우기'

입력
2014.09.17 20:00

박근혜 대통령이 그제 오랜 침묵 끝에 내놓은 세월호 관련 발언을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박 대통령은 유족들의 분노와 상처를 어루만지는 어떠한 수사(修辭)도 없이 진상조사위에 수사권ㆍ기소권을 부여하라는 그들의 요구를 단칼에 거부했다. 내용의 시시비비를 떠나, 보수진영에서도 발언의 시기와 장소, 화법이 적절치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2차 합의안이 마지막 결단”이라며 여당에 사실상의 지침을 내리고, “순수한 유가족의 뜻” 운운하며 철저한 진상규명 요구를 불순한 의도로 모는 듯한 박 대통령의 발언이 공직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던질지는 불 보듯 뻔하다.

우려는 금세 현실로 나타났다. 교육부는 16일 전국 시ㆍ도 교육청에 공문을 보내 세월호와 관련된 교사들의 활동을 금지하라고 지시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세월호 참사 5개월을 맞아 진행하고 있는 학교 앞 1인 시위, 세월호 주제 공동수업, 점심 단식, 리본 달기 등을 겨냥한 것이다. 교육부는 이들의 활동이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고 가치 판단이 미성숙한 학생들에게 편향된 시각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댔다. 그러나 학생들의 자발적인 동참까지 교사들의 선동 탓으로 돌리고, 리본 달기 같은 추모행위조차 강제로 막으려는 교육부의 옹졸함에서 오히려 불순한 정치적 의도가 보인다.

경찰의 세월호 관련 시위 대응에도 미묘한 변화가 일고 있다. 일례로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진상조사위 수사ㆍ기소권 부여’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해온 시민단체 ‘리멤버0416’ 회원은 16일 오후 경찰로부터 자리를 옮기라는 요구를 수 차례 받았다고 한다. “경찰서장이 그 자리에 서있지 못하게 하라고 했다”는 게 경찰관이 전한 이유의 전부였다. 앞서 스물 한 차례 같은 장소에서 1인 시위를 했지만 한 번도 없던 일이라고 했다. 유족과 시민단체 사이에서는 정부기관들이 박 대통령의 발언을 신호탄으로 삼아 ‘세월호 흔적 씻어내기’를 노골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 동안 감춰져 있던, 혹은 알고도 눈감았던 우리사회의 민낯을 드러낸 세월호 참사는 국민 모두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진상규명 작업이 첫 걸음도 떼지 못한 상황에서 민주사회의 근간인 표현의 자유까지 억눌러가며 지우고 씻으려 든다고 없어질 상처가 아니다. 대통령과 정부ㆍ여당이 나서 “이제 끝났다”고 선언하는 것은 살릴 수 있었던 생명을 살리지 못한 국가적 범죄를 망각의 역사 속으로 밀어 넣으려는 또 다른 범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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