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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질서 있는 퇴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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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초기 독일의 전격적인 포위작전에 도버 해협에 면한 프랑스 북부 해안도시 됭케르크에서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 40만명이 고립돼 궤멸 위기에 처했다. 독일은 이를 계기로 평화협상을 통한 항복을 영국에 종용하고, 영국은 사상 최대의 철수작전을 펼치게 된다. 동원 가능한 군함은 물론 민간인 선장들도 위험한 작전에 대거 나섰고 후위 방어부대는 영웅적인 희생으로 노도와 같은 독일군의 예봉을 버텨냈다. 철수작전의 기적 같은 성공으로 무사히 영국에 건너온 35만명은 훗날 전세를 역전시킨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주역이 됐다.
▦ 6ㆍ25전쟁 당시 미군의 장진호 철수도 역사에 남을 만하다. 혹한이 몰아친 1950년 11월 동쪽으로 북진하던 미 해병1사단 1만8,000명이 개마고원 장진호에서 10배에 달하는 중공군 7개 사단 12만 대군의 덫에 걸렸다. 공군의 지원 속에 포위망을 돌파하는 용감한 후퇴작전으로 미 해병은 3,500명, 중공군은 2만5,000명의 사상자가 났다. 미군 궤멸에 실패한 중공군은 2주 이상 남하가 지연됐다. 당시 미군 실종자(182명)가 사상자에 비해 훨씬 적었던 것은 장교와 사병들이 얼마나 질서정연하게 후퇴했는지 보여준다.
▦ 한국군 역사에서 최악의 치욕으로 여겨지는 강원 인제군 현리 전투는 무질서한 퇴각의 참상을 보여준다. 중공군과 인민군의 포위작전에 한국군 3군단의 모든 지휘관이 지휘를 포기하고, 장교ㆍ사병들이 계급장을 뗀 채 각개로 도주하다 2만명이 희생됐다. 전력의 40%만 살아남아 3군단은 해체됐다. 현리 전투는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는 미군의 한국군 작전지휘권통제 계기가 됐다.
▦ 새정치민주연합 내분과 박영선 원내대표의 칩거로 당내에서 ‘질서 있는 퇴각’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야당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늘 나오는 레퍼토리다. 역사적인 철수작전에서 보건대 ‘질서 있는 퇴각’의 성공 조건은 희생정신이다. 하지만 지금 야당에는 계파의 각자도생만 엿보일 뿐 살신성인의 자세를 볼 수 없다. 질서 있는 퇴각이라는 말과 달리 ‘무질서한 적전분열’이 어울리는 형세다. 국민의 기억력과 판단력을 의심하지 않고서야 저럴 수 없다. 이대로 가다간 2016년 총선에서 작전지휘권을 빼앗길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정진황 논설위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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