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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정치권, 말은 "추석민심 경청" 행동은 '민심 역행'

입력
2014.09.10 20:00

예상했던 대로 추석 연휴 기간 민심의 회초리는 매서웠다. 세월호 특별법 대치정국에서 주도적으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는 새누리당, 강경파에 발목 잡혀 사실상 정당 기능을 상실한 새정치민주연합, 세월호 문제 핵심에서 비켜선 채 공허한 레토릭만 되풀이하는 박근혜 대통령 등을 향해 국민들은 호된 질책을 쏟아냈다. 지역구에 다녀온 여야 의원들은 이렇게 험악한 민심은 처음 겪는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호된 회초리를 맞고도 여야는 정신을 아직 못 차린 모양이다. 분노의 추석 민심을 아전인수 식으로 해석해 상대방 공격에만 골몰할 뿐 스스로의 몫을 감당하겠다는 자세가 전혀 아니다. 오늘부터 재가동해야 할 정기국회 일정도 합의된 게 없다. 상당기간 파행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새누리당은 여의치 않으면 15일부터 정의화 국회의장을 앞세워 본회의를 소집, 계류 중인 90여 개 민생법안을 단독 처리할 태세다. 하지만 야당은 국회 선진화법으로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권한이 유명무실해진 마당에 어림없는 일이라고 날을 세우고 있다.

여야가 정말로 국민의 뜻을 무겁게 여긴다면 더 이상의 소모적인 정쟁을 그치고 이쯤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어떻게 보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추석 연휴 기간 분출된 민심에 그 해답이 있다. 새누리당은 집권여당의 무능ㆍ무책임에 대한 질타를 겸허하게 받아들여 보다 적극적으로 세월호 특별법 협상에 나서야 한다. 수사권과 기소권 문제가 핵심 쟁점이라고는 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정부여당과 청와대에 대한 불신이다. 이 불신을 해소할 다양한 노력을 병행하면 길이 있다고 본다.

새정치연합은 국민들 사이에‘세월호 피로’가 엄존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상식적인 선에서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 세월호 특별법을 최우선 민생이라며 다른 시급한 법안들과 연계 처리를 고집하는 것은 다수 국민들에게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당 안팎 강경파들에게 휘둘려 갈팡질팡하는 야당에 희망을 걸 국민은 없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여당과 대통령에 대한 불신에 편승해 강경 대응을 부추기는 것은 사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박 대통령이 세월호 문제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는 태도도 문제다. 세월호 사태 초기 유가족들과 만나 하소연을 듣고 눈물을 흘리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여야 정치공방으로 번진 세월호 갈등에 대통령이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인데, 동의하기 어렵다. 박 대통령이 사고 당일 자신의 ‘7시간 행적’ 논란에 화가 나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모든 일은 합리적 상식적으로 풀어가야 한다. 지금 세월호 문제에 대한 박 대통령의 오불관언의 자세는 부자연스러우며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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