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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 뵐 면목이…" 눈물로 달 맞은 팽목항

입력
2014.09.10 04:40

"애가 아직도 물속에 있는데…" 차례·성묘 못하고 수색 지켜봐

일부 유가족·단원고 교사 등 귀성 포기하고 진도 찾아 위로

추석인 8일 진도 팽목항이 모처럼 명절을 맞아 인근 섬을 오가는 귀성객들로 북적이는 가운데, 부둣가에는 여전히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 등이 매달려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추석인 8일 진도 팽목항이 모처럼 명절을 맞아 인근 섬을 오가는 귀성객들로 북적이는 가운데, 부둣가에는 여전히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 등이 매달려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일가친척이 모여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하는 추석이건만 전남 진도 팽목항의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에겐 명절은 없었다. 아직도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 10명의 가족들은 올 추석 조상을 찾지도 차례를 지내지도 못했다.

세월호 참사 146일째이자 추석 당일인 8일 팽목항은 모처럼 조도와 관매도 등을 오가는 귀성객과 귀경객 차량들로 북적댔다. 하지만 실종자 가족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사고해역과 팽목항에서 수색작업을 지켜보면서 쓸쓸한 추석을 맞았다.

동생과 조카를 잃고 유일하게 두 명의 실종자를 기다리는 권오복(59)씨는 “추석이라고 달라진 것 없어. 동생과 조카가 아직 차가운 물속에 있는데 추석이라고 친지를 찾겠어, 조상에게 차례를 지낼 수 있겠어. 시신 찾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 외에는 무슨 소용이 있겠냐”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권씨는 “평소 같으면 추석 때 온 가족이 모여 전북 부안에 있는 선산에 벌초도 가고 동생 재근이와 술도 한 잔 했을 것”이라며 넋두리를 했다.

딸을 잃고 팽목항에서 생활하고 있는 단원고 2학년 1반 조은화(17)양의 어머니 이금희(45)씨는 “충북 충주에 계신 87세 되신 시어머니께서 ‘차라리 내가 죽어야 한다’며 애를 태우시는데, 아직 바다에 있는 딸을 데려가지 못해 불효를 하고 있다”며 “살아계신 부모도 뵐 면목이 없어 연락을 못했는데 조상 성묘를 갈 수 있겠냐”며 말을 잇지 못했다.

진도에 머물고 있는 나머지 실종자 일곱 가족 모두도 성묘를 하지 못했다. 가족들은 진도군청에서 명절 음식과 추석 차례상을 제공하겠다는 제안도 거절했다.

이들에게 작은 위안이라도 되고자 일부 자원봉사자들과 안산 단원고 교사들은 귀향 대신 진도로 내려가 실종자 가족 곁을 지켰다. 교사들은 팽목항 가족식당에서 직접 어전과 산적, 된장찌개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도우며 조촐한 추석을 보냈다.

안산 합동분향소에서 추모를 마친 일부 유가족들도 진도에 내려와 실종자 가족과 고통을 함께 했고, 추석 전날에는 정홍원 국무총리가 11번째 진도를 방문해 실종자 가족에게 과일과 송편을 전달했다. 가수 김장훈씨도 7일부터 2박 3일 진도에 머물며 자원봉사했다.

특히 유가족과 단원고 교사들은 보름달이 환하게 비친 추석날 저녁 팽목항 방파제에서 선생님과 아이들이 가족의 품으로 빨리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리본을 풍등에 달아 하늘로 날려 보내며 실종자 귀환을 염원했다. 가족들은 둥근 달빛이 내린 바다 위로 아들 딸 이름을 목 놓아 부르며 통곡했다.

사고해역에서는 추석 연휴에도 실종자 수색작업을 벌였지만 성과는 없었다. 지난 7월 18일 세월호 조리사 이모(56·여)씨의 시신이 발견된 이후 53일째 추가 실종자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권오복씨는 “수색은 매일 하고 있지만 시간이 많이 흘러 배 내부가 약해져 무너져 내리고 뻘이 쌓여 작업 여건이 나빠지고 있다”며 “한달 후면 기상이 더욱 악화돼 그 이전까지는 실종자를 꼭 찾아야 한다”며 발을 굴렀다.

진도=하태민기자 ham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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