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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염치 유족 만들기

입력
2014.08.29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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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국민의 보편적 연민 대상이었던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족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시비 다툼이 가능한 일개 정파 세력처럼 여겨지게 된 건, 야당의 지나친 선거 쟁점화 탓도 있지만 진상 규명 문제를 당위의 영역에서 논쟁 가능한 영역으로 끌어내린 우파 진영의 적극적 틀 짓기 영향이 결정적이었다. 그 중 가장 강력하게 작용한 담론이 ‘배후 세력 조종론’이다. 이완구 원내대표를 비롯한 새누리당 원내 지도부와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 관계자들이 지난 27일 국회 새누리당 원내대표실에서 2차 회동을 갖기에 앞서 희생자들에 대한 묵념을 하고 있다. 오대근기자 inliner@hk.co.kr
온 국민의 보편적 연민 대상이었던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족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시비 다툼이 가능한 일개 정파 세력처럼 여겨지게 된 건, 야당의 지나친 선거 쟁점화 탓도 있지만 진상 규명 문제를 당위의 영역에서 논쟁 가능한 영역으로 끌어내린 우파 진영의 적극적 틀 짓기 영향이 결정적이었다. 그 중 가장 강력하게 작용한 담론이 ‘배후 세력 조종론’이다. 이완구 원내대표를 비롯한 새누리당 원내 지도부와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 관계자들이 지난 27일 국회 새누리당 원내대표실에서 2차 회동을 갖기에 앞서 희생자들에 대한 묵념을 하고 있다. 오대근기자 inliner@hk.co.kr

세월호법은 흥정 대상이 아니다. 공동체 책무다. 유족에겐 권리뿐이다. 당위를 상대화하는 건 정권 음모다. 공리 프레임에 정의가 갇히고 피해자는 가해자 자리로 시나브로 전락한다.

“어떤 언어로 규정하느냐에 따라 적과 동지, 이익과 손해, 정의와 부정의가 달라진다. (…) 우리는 도덕 불감증이 아니라 도덕의 개념 자체가 바뀐 시대에 살고 있다. 후안무치가 도덕인 시대다. 세월호는 ‘도덕의 재구성’ 시대를 상징하는 사건이다. (…) 내가 가장 충격을 받은 새로운 언어는 여야가 혹은 정부ㆍ여당이 유가족과 세월호특별법을 “협상한다”는 말이었다. (…) 피해는 이미 발생한 과거의 일이지만 현재 시점에서 피해를 최대한 구제(救濟)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법질서의 기본이다. 세월호 탑승자들과 그 가족의 피해는 공동체의 책임이고 이는 무조건적 당위다. 그런데, 협상이라니! 유가족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는 것과 협상은 다르다. 협상은 동급 행위자 간의 일이지, 가해자와 피해자 그것도 일방적 피해자에게 선심 베풀 듯 제안할 일도, 피해자가 쟁취할 사안도 아니다. 유가족은 아무런 의무가 없다. 타협과 협상은 힘의 균형을 합리적으로 조절하는 바람직한 정치지만, 지금 정국에서 ‘협상’은 피해자가 무슨 요구를 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정부와 여당은 앞장서서 피해자를 위로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법을 제정하면 된다. ‘협상’은 이 문제에 대한 정부ㆍ여당과 지지 세력의 세월호를 대하는 시각이 반영되어 있다. 염수정 추기경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그는 지난 26일 기자간담회에서 “세월호 아픔 이용돼… 유가족도 양보할 수 있어야”라고 말했다. (…) 유가족이 양보해야? 이 말은 무슨 뜻인가. 가족의 죽음. 그 이후의 삶, 우주, 모든 것을 상실한 사람들이 누구에게 무엇을 더 양보해야 하는가. (…) ‘우리’는, 사회는, 국가는 그들에게 무엇을 양보했는가.”

-협상?(경향신문 ‘정희진의 낯선사이’ㆍ여성학 강사) ☞ 전문 보기

“문(재인) 의원의 단식은 김(영오)씨의 단식을 중단시키기 위한 단식은 아니었다. 그가 “유족들의 요구가 지나친 것이 아니다”라는 글을 트위터에 올리며 단식의 주인공으로 나섰을 때 이미 김씨 차원을 벗어났다. 순식간에 ‘사생결단’의 정국(政局)으로 몰고 간 것은 바로 문 의원이었다. 그가 결심하자 각계각층의 지지 세력들이 기다렸다는 듯 ‘릴레이 동조 단식’을 벌였다. (…) “대통령이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라고 요구하는 그의 단식 농성은 오히려 대통령이 나설 수 없게 만들었다. 이런 그의 모순적 행동에 상당수 국민은 혼란스러웠다. 다만 세월호 유족들은 앞장선 그에게서 천군만마(千軍萬馬)를 얻은 든든함을 느꼈을지 모른다. 적어도 그만은 끝까지 책임져줄 자신의 편으로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동조자보다 객관적 방관자가 나을 수 있다. 방관자의 존재는 자신을 돌아보게끔 하지만, 감상적인 동조자는 자신에게서 절제와 평정심을 잃게 한다. 문 의원의 단식 농성은 유족들의 귀에는 벨 소리로 울렸을지 모르나 다른 세상의 소리는 못 듣게 했다. 감정에 기반한 선동적인 동조 세력이 없었다면, 자녀를 잃은 슬픔도 지극한데 ‘염치가 어떻다’며 속삭이는 세상 사람들의 말을 유족들이 들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 한때는 국민 모두가 미안해하고 차마 잠도 제대로 못 이루게 했던 유족의 고통이었다. (…) 그런 대접을 받던 유족들이 점점 더 논란과 시비,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것은 정말 누구도 원치 않았다. 그래도 세상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여전히 연민이 남아 있다. 이런 마음을 얻지 못한 법과 보상이 이뤄지는 것은 유족들의 뜻도 아닐 것이다. 유족들도 슬픔과 분노를 표현하는 자신들의 방식이 주위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비치는지를 한번 살펴볼 때가 됐다. 자신들을 맹목적으로 만드는 세력이 바로 자신을 해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斷食은 끝났지만(조선일보 기명 칼럼ㆍ최보식 선임기자) ☞ 전문 보기

자기 이익부터 따지는 이가 대통령이다. 한 치 양보도 없다. 고작 망신하지 않으려고 국가 도약 기회마저 차버릴 정도. 연민은 오직 자길 향한다. 정략만 발군이다. 나라의 비극이다.

“지금 우리는 이중의 우울에 빠져 있다. 세월호 참사 자체가 첫번째 우울이라면, 그런 참사의 재발을 막고 문제를 해결해야 할 사회가 해결력의 마비를 보인다는 것은 사람들을 슬프게 하는 두번째 우울이다. (…) 세월호 유족들이 사고 진상을 밝히려는 것은 돈 때문이 아니다. (…) 2300년 전 맹자의 말에서처럼 세월호 유족들은 ‘이’(利)를 따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의’(義-진상 밝히는 일)를 말하고 있다. 그 유족들을 마치 보상금 투쟁이나 하고 있다는 듯한 시선으로 흘겨보거나 과거 우리 정부와 기업들이 전가 보도처럼 써먹어온 사고처리법(“이 정도 줄 테니 그냥 돈이나 받고 물러서라”)을 이번에도 적용하려 한다면 그건 번지를 잘못 잡아도 한참 잘못 잡은 것이다. 여당 사람들이 유념해야 하는 것은 진솔한 마음으로 유족들의 ‘품위’를 존중해주어야 한다는 문제다. (…) 다시 말하지만,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밝히는 일이 아니라면 물속에 사라져 간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유족들은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말한 ‘정의’도 바로 그 진상 규명이라고 유족들은 생각할 것이다. (…) 그 정의가 아니고서는 세월호 참사와 특별법 교착이라는 이중의 우울에서 우리가 벗어날 길은 없다. 맹자와 제선왕의 대화(맹자 공손추장구)도 지금 우리 맥락에서는 아주 요긴하다. 왕이 묻는다. “저 같은 사람도 백성을 보호하고 민생을 편안케 할 수 있을까요?” (…) 맹자는 말한다. “왕께서는 소가 죽을 곳으로 끌려가는 것을 차마 그냥 볼 수가 없어 놓아주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그런 마음이면 충분히 왕도를 구현할 수 있습니다.” (…) 소가 끌려가는 것도 차마 볼 수 없어 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라고 맹자가 말한 그 마음-그것은 어찌된 셈인지 현대 한국에서는 매말라 버린 마음, 그래서 우리 사회가 목말라하는 연민, 동정, 공감(empathy)의 마음 그거다.”

-세월호와 맹자(한겨레 ‘특별기고’ㆍ도정일 경희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 전문 보기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4개월이 넘었지만 대한민국은 세월호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국가의 관리와 운영을 제대로 했다면 그런 참사가 일어나지도 않았겠지만 일어났더라도 국정의 난맥과 공백이 이처럼 길게 이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국가 경영의 중추인 청와대에서 정부, 국회, 정당까지 뭐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다. 청와대와 여당은 세월호특별법과 관련한 유족들의 무리한 요구와 이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야권 탓이라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그동안 청와대와 여당이 보여온 행태를 보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최종 책임은 나에게 있다”며 유족들에게 여한이 없도록 진상조사에 필요한 모든 조치를 다 하겠다고 눈물을 흘리며 약속한 사람은 대통령 자신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언제 그랬느냐는 식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지 1년반이 됐지만 그동안 뭐 하나 제대로 이룬 게 없다. 관리 능력이 없으면 공감 능력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그마저도 안 보인다. 아무리 원칙이 중요하다고 해도 40일 넘게 단식한 사람 손 한 번 못 잡아준단 말인가. 영화 보고, 시장 상인들 만날 시간은 있어도 세월호 유족들 얼굴 잠깐 볼 시간은 없단 말인가. 나와 청와대부터 철저히 조사받을 테니 여야가 합의한 특별법안을 받아들이자고 했다면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 호텔 경영과 국가 경영이 같을 수야 없지만 진정성이 고객과 국민에 대한 서비스의 본질이란 점에선 다를 게 없다. 호텔리어도 파악하고 있는 경영의 요체를 이 나라의 지도자는 모르고 있는 것 같다.”

-타슈켄트 팰리스의 추억(8월 26일자 중앙일보 기명 칼럼ㆍ배명복 논설위원 겸 순회특파원) ☞ 전문 보기

* ‘칼럼으로 한국 읽기’ 전편(全篇)은 한국일보닷컴 ‘이슈/기획’ 코너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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