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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함께 아파했던 대한민국 어디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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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법 놓고 국민 여론 극한 분열… 국민적 슬픔의 대상에서 정쟁거리로
일부 언론 김영오씨 신상 털기 골몰… 폭식투쟁 예고 등 유족 비방 도 넘어
봄이 한창이던 4월 16일 오전, 300여명 승객이 배와 함께 바닷물 속으로 가라앉는 장면을 눈 뜨고 지켜본 국민들은 한 동안 깊은 슬픔과 우울에 빠졌다. 내 자식, 내 형제, 내 부모를 잃은 듯 온 국민이 함께 눈물 흘리고 함께 분노했다. 희생자 가족들과 한 마음으로 ‘더 이상 대한민국이 이런 나라여서는 안 된다’고 가슴을 쳤다.
하지만 130여 일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은 두 동강이 나고 있다.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위한 여야 합의가 유족들의 거부로 두 차례나 깨지고도 종착점 모를 공전만 거듭하면서 국민 여론은 점점 더 양쪽으로 갈라지고 있다. 여느 이념 대결과 같은 극한 분열이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비판을 넘어 적개심 가득 찬 글이 넘쳐난다. “유가족들이 배상금을 노리고 농성을 한다”는 사실과는 다른 주장이 퍼지고 심지어 “시체 장사를 한다” “국가를 전복시키려는 빨갱이” 같은 유족들의 상처를 후벼 파는 글들이 난무한다. ‘잠수함 충돌설’ 같은 황당한 음모론이 번진 지도 오래다.
일부 보수단체와 언론들은 46일째인 28일 단식을 중단한 유가족 김영오씨의 신상과 막말을 파헤치는 데에만 골몰하고 있다. 심지어 이날 자유대학생연합이라는 단체가 유가족의 비극을 조롱하는 듯한 ‘폭식투쟁’을 예고했다가 취소하기도 했다.
이렇게 세월호 참사는 국민적 슬픔에서 정쟁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김상학 한양대 사회학과 교수는 “선진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선거결과가 50 대 50으로 양분되는 일이 적지 않고 이는 문제가 안 된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와 같은 비극은 반반으로 나뉘어 싸울 사안이 아닌데도 정파와 이데올로기가 개입돼 문제가 변질됐다”고 진단한다.
정쟁이 되자 국민은 피로하다. 특별법의 쟁점이 뭔지 냉정히 들여다보기보다는 ‘이제 그만했으면’하는 생각만 절실하다. 피해자들을 원망하는 국민마저 적지않은, 서글픈 상황이다.
세월호 참사 직후 많은 시민들이 몇 시간씩 줄을 서며 분향소를 찾았을 때 한 전문가는 “2002년 월드컵 이후 이처럼 국민들이 집단적으로 감정이입하며 공감대를 형성한 것은 처음”이라며 “월드컵 때와는 다른 감정이지만 이런 에너지가 하나로 모이면 국가발전의 동력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안전의식이 전에 없이 고취됐고, 업계와 관료간 마피아적 유착을 끊어야 한다는 요구도 높았다. 국가 개조라 부르든 적폐 근절이라 부르든 국민은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집단감정을 사회발전의 동력으로 이끌어 낼 리더십이 없었던 게 한국의 비극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참사 다음날 진도체육관에서 희생자 가족들을 직접 만난 후 지지율이 71%(리얼미터)까지 오히려 오른 것은 비극을 극복하고 해결하라는 지지와 열망이었으나 현실은 그렇게 나아가지 않았다. 여야는 유가족과 제대로 소통하지 않아 번번이 협상에 실패했고, 박 대통령은 모든 해법을 국회로 돌린 채 불통만 재연하고 있다. 정치적 득실계산만 있을 뿐 국가의 리더는 찾아볼 수 없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고가 처음 터졌을 때 국가가 어떻게 개조돼야 하는지 국민적 공감대가 있었지만 정치권에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해 결국 저마다 거리로 나서게 됐다”며 “권력을 갖고 있으며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부여 받은 정치권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 매우 심한 상황에서 왜 못 믿느냐고, 양보하라고 하는 건 해법이 아니다. 믿지 못하는 사람들도 신뢰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고 제안했다.
세월호를 정쟁과 분열에서 건져내지 않는다면 한국은 4월 16일 이전과 다를 게 없는 나라다. 다시 통합할 때다.
김희원 사회부장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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