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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협상의 고수

입력
2014.08.26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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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순환로에서 목격한 한 장면. 주인과 함께 산책로를 걷던 애완견이 갑자기 땅바닥에 엎드렸다. 주인이 10여m쯤 가다가 땅바닥에 퍼진 애완견을 부르지만 요지부동. 이에 주인은 나 몰라라 하고 네댓 걸음을 더 나가자 애완견이 일어섰다. 되돌아본 주인이 애완견을 부르지만 여전히 움직이질 않는다. 하지만 땅에 엎드리진 않았다. 그런데 주인이 몇 발짝 애완견에게 다가가자, 오히려 애완견이 도로 주저 앉았다. 이런 식의 밀고 당기기가 수 차례 반복됐다.

▦ 한때 수 백마리 개와 뒹굴면서 사람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을 많이 했지만, 사람과 개가 연애하듯 이른바 ‘밀당’하는 광경은 처음 봤다. 만약 주인이 버릇을 고쳐줄 요량으로 그냥 제 갈 길로 갔다면, 혹은 말을 듣지 않는 개를 두들겨 팼다면 개의 반응이 어땠을까 생각해 봤다. 어쩔 수 없이 주인 말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간에 쌓아왔던 유대, 교감, 신뢰는 어떻게 될까. 당연히 금이 갈 것이다. 그건 사람과 사람의 관계, 협상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 ‘레드 라인(Red Line)’이라는 게 있다. 금지선, 넘지 말아야 할 선이다. 이 선이 무너지면 기존에 형성된 관계도 무너진다. 각자 제 갈 길 가는 것이다. 힘의 영역으로 가는 길이다. 북핵 협상 국면에서 북한은 이 레드 라인을 참 잘 탔다. 외국 전문가들은 그렇게 평가한다. 그걸 벼랑 끝 협상 전술이라 이름 붙였다. 협상과 교착의 반복된 국면에서 수 차례의 핵실험을 했지만 전면적 충돌로 이어지지 않았다. 미국의 레드 라인은 당초의 북한의 핵 보유 방지에서 핵 이전 방지로 후퇴했으니 북한의 전술이 성공이라면 성공이다. 하지만 사기를 당했다고 생각하는 미국은 전략적 무시와 함께 북한의 국제적 고립을 심화시키고 있으니 상처뿐인 성공이다.

▦ 협상과 합의, 재협상에 2차 합의, 이제 또다시 파기 국면에 이른 세월호특별법이 어디로 갈지 오리무중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거리로 나갔고, 새누리당은 야당의 3자 협의체 구성 제안에 요지부동이다. 여야가 정말 힘의 대결을 벌일 심산이 아니라면 정도껏 해야 한다. 갈등이 증폭되고 충돌이 빚어지면 절충의 접점을 찾기도, 신뢰를 회복하기도 더 어려운 법이다. 밀당의 고수는 말한다. 선을 잘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정진황 논설위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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