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내줄 게 없다" 靑 바라보며 강경 모드

입력
2014.08.25 04:40

정치권 전체가 세월호특별법에 갇혀 무능ㆍ무책임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국정운영에서 무한책임을 지고 있는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여야간 합의 준수’만을 강조하며 꽉 막힌 정국을 풀어낼 해법에는 귀를 막고, 새정치민주연합은 여야간 정치적 합의를 잇따라 번복하면서도 정작 ‘내 탓’은 없이 정부ㆍ여당에 공을 떠넘기기 급급하다. 이대로라면 8월 임시국회는 물론 정기국회의 순항도 기대하기 어렵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일손을 놓으면 결국 국민들이 피해자가 될 것임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마침 새누리당에서 청와대ㆍ여당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정치권 밖에서도 여야가 세월호 유가족들과 머리를 맞대야 한다는 주문이 쏟아지고 있다. 정기국회를 코 앞에 둔 이번 주가 정국 정상화의 최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꽉 막힌 세월호 정국에서 역할론이 커지고 있는 김무성(오른쪽) 새누리당 대표가 23일 대전 유성구 민병주(왼쪽) 의원 사무실 개소식에 참석해 민 의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 대표는 이날 "언제든 (세월호) 유족들이 원할 때 만남을 갖겠다"고 밝혔다. 대전=연합뉴스
꽉 막힌 세월호 정국에서 역할론이 커지고 있는 김무성(오른쪽) 새누리당 대표가 23일 대전 유성구 민병주(왼쪽) 의원 사무실 개소식에 참석해 민 의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 대표는 이날 "언제든 (세월호) 유족들이 원할 때 만남을 갖겠다"고 밝혔다. 대전=연합뉴스

세월호특별법 논의가 어그러지면서 정국이 파행으로 치닫고 있지만 새누리당은 강경모드로 일관하고 있다. ‘여야 합의 준수’를 강조하며 여야ㆍ유가족 3자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당내 일각에서 역할론이 제기되고 정기국회도 코 앞으로 다가왔지만, 현재로선 청와대의 입장 변화가 없는 한 자력으로 운신의 폭을 넓히기는 어려워 보인다.

“더 이상의 양보는 불가”… 강경모드 여전

새누리당은 24일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위한 여야ㆍ유가족 3자 협의체 구성과 박근혜 대통령의 유가족 면담 요구를 모두 일축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이날 제안이 재합의 파기에 대한 책임을 모면하는 동시에 박 대통령을 끌어들여 정치적 부담을 떠넘기려는 의도라고 보는 것이다. 이진복 전략기획본부장은 “여야 합의를 두 차례나 깨놓고 최소한의 사과도 없이 이해당사자를 참여시키는 논의의 틀을 제안하는 건 무책임의 극치”라고 비판했다.

이는 기본적으로 여야 원내대표간 잠정합의를 수용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에서 전혀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미다. 김무성 대표와 이완구 원내대표는 수 차례에 걸쳐 “더 이상의 양보는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어왔다. “협상이 다시 시작돼도 내줄 게 없는 상황”(원내대표실 관계자)이라는 얘기다.

새누리당이 정국 파행에 대한 부담이 큰 상황임에도 이처럼 강경한 입장을 굽히지 않는 건 세월호특별법 논의의 불똥이 청와대로 튈 수 있다는 부담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다. 한 친박계 핵심의원은 박 대통령의 유가족 면담 요구에 대해 “면담이 성사된들 박 대통령이 유가족들의 요구를 100% 수용하는 건 어렵다”면서 “결국 박 대통령을 ‘나쁜 사람’ 만들려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세월호특별법과 국정조사 청문회 증인 협상에서 새누리당이 초강경모드로 일관하기 시작한 때는 야권이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을 공개적으로 문제삼은 이후라는 게 정설이다. 당시 새누리당은 남북 대치 상황까지 거론해가며 야당의 공개 요구를 반박했었다.

‘靑ㆍ與 역할론’ 분출… 靑 입장 변화가 관건

하지만 새누리당도 강경 일변도로만 나아가기에는 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미 8월 임시국회의 정상 가동은 어려워졌고, 자칫 9월부터 시작될 정기국회도 파행으로 치달을 공산이 적지 않다. 이렇게 되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민생ㆍ경제활성화 관련법안의 처리도 힘들어진다. 한 원내핵심당직자는 “정치적으로야 야당을 탓하면 되지만 결국은 집권여당의 책임이 되는 것 아니냐”고 답답해했다.

이런 가운데 일부 개혁ㆍ소장파 의원들이 청와대와 여당의 역할론을 제기하고 나섰다. 김용태 의원이 청와대와 여당의 정치력 발휘를 촉구한 데 이어 수도권 중진인 정병국 의원은 지난 23일 의원 연찬회에서 유민 아빠 김영오씨의 단식농성을 거론하며 “박 대통령이 유가족을 만나야 하고 당 대표들도 유가족들과 협상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황영철ㆍ정미경ㆍ이현재 의원 등 일부 초재선 소장파도 가세했고,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ㆍ기소권을 줘도 문제 없다는 파격적인 주장도 나왔다.

하지만 당 지도부 스스로 ‘재협상 불가’나 3자 협의체 거부에서 입장을 달리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특히나 청와대는 물론 당내 다수파인 친박계에서 야당이 박 대통령을 직접 겨냥하고 있다는 의구심이 큰 상황이다. 김 대표의 한 핵심측근은 “대야협상에 관한 한 이 원내대표가 책임을 지고 있다”고 전제한 뒤 “박 대통령이 25일 청와대 회의에서 뭔가 방향 전환 가능성을 내비칠 지 여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