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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어떤 회의론자의 눈물

입력
2014.08.22 20:00

대한민국 헌법에는 종교의 자유가 명시되어 있다. 모든 국민에게는 종교의 자유가 있고, 나에게는 종교가 없다. 이것은 무신론자라는 뜻과는 엄연히 다른데,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인간의 삶을 지켜보는 초월적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단정을 하기에 나는 아는 것이 많지 않고 덜 살았다. 또한 이것은 신이 분명히 거기 계시다는 확신 앞에서 주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명백히 신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인 것이다. 신과 종교에 관하여 이야기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나는 늘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다물곤 했다.

지난 8월 14일부터 18일까지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언론을 통해 실시간으로 교황의 행보가 전해졌다. 2013년 3월 제266대 교황에 취임한 그분에 대해 나는 잘 몰랐다. 지금까지 어떤 교황도 사용한 적 없던, 아시시의 청빈한 성자 프란치스코의 이름을 따 교황명을 선택했다는 정보와 어렵고 힘든 이들 곁에 서슴없이 다가가는 탈권위적이고 소탈한 성품의 소유자라는 이미지만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타인의 종교에 관한 일이라면 으레 그래왔듯 나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서 교황 방한 뉴스를 대했다.

무심하던 내가 자세를 고쳐 앉은 건 교황이 “세월호 희생자들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다”고 했을 때부터였다. 누구나 한마디 거드는 의례적인 수사와는 다르다는 걸, 이분이 진심으로 가슴 아파하고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지난 봄 세월호 참사 이후 내 가슴 안에도 슬픔의 응어리가 단단히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일 터다. 한국사회의 그 누가, 세월호를 운 없는 남에게 일어난 일이라 치부할 수 있는지,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진심으로 미안해하지 않을 수 있는지 나는 여전히 어리둥절하다. 이 의아함은 시간이 지나는 동안 분노와 좌절감이 뒤섞인 기이한 형태로 변해가는 중이었다.

방한 이튿날 교황은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 단원고의 아버지들이 38일간의 도보 순례 내내 메고 다녔던 십자가와 노란 리본 배지를 건네 받았다. 나는 교황이 왼쪽 가슴에 매단 그 작은 리본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사제복의 순백색과 대비되어 노란빛이 더욱 선명했다. 16일 오전 시복식 카퍼레이드 도중 교황은 차를 멈추고 땅 위에 내려섰다. 그가 선 곳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한달 넘게 단식을 이어가고 있던 단원고 유민 양 아버지 김영오 씨 앞이었다. 교황이 한없이 약하고 한없이 강한 김영오 씨의 깡마른 두 손을 꼭 잡았다. 동영상 화면으로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것은 오랫동안 잊고 있던 진짜 위로였다. 신이 인간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에게 하는, 그 가장 인간적인 방식의 위로가 나를 움직였다. 내 마음은 어쩌면 신이 어딘가 정말 계실지도 모른다는 쪽으로 반걸음 다가갔다. 신의 존재를 간절히 믿고 싶어졌다.

그를 더 알고 싶은 마음에 서점으로 갔다. ‘무신론자에게 보내는 교황의 편지’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다. 이 책은 이탈리아의 유력지 ‘라 레푸블리카’의 창립자인 언론인 스칼파리가 무신론자로서 교황에게 던진 도발적인 질문들에서 비롯되었다. 스칼파리가 신문지상을 통해 던진 공개서한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솔직하고 자상한 답신을 보낸 것이다.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고자 직접 만나는데, 그때 나눈 긴 대화가 ‘타인에 대한 사랑이 공동선의 씨앗입니다’라는 제목의 장에 수록되어 있다. 교황은 이렇게 말한다. “어떤 만남이 있고 나면 그 만남을 한번 더 가지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어요. 서로를 알고 서로의 말에 귀 기울이고 생각의 반경을 넓히는 것 우리에게는 바로 그런 태도가 필요합니다. (중략) 우리 각자는 선과 악에 대한 자신의 견해에 따라 선을 따르고 악을 물리쳐야 합니다. 더 나은 삶을 사는 데에는 그런 노력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월호 유족들의) 인간적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는 말과 함께 이 땅을 떠났고, 나는 남았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그것을 생각한다.

정이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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