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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선 탓? 속단 탓? 싱크홀 빠진 박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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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특별법 재합의안마저 유족 측의 거부로 표류하게 되면서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의 협상 과정을 두고 의문이 적지 않게 나온다. “그냥 덜렁덜렁 와서 여당과 합의만 덜렁해 놓고 유가족이 안 된다고 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고 하는 게 말이 되냐”는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의 쓴소리처럼, 당 내에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많다. 지난 7일 1차 합의가 유족 측의 반발로 무산돼 재협상 과정에서 “유가족 동의가 최우선”이라고 했던 새정치연합이 또 다시 유족 동의 없이 덜컥 합의하는 실수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박 대표의 성급한 합의에 측근들마저 고개를 젓는 분위기다. 박영선 대표와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가 2차 합의안을 도출했던 지난 19일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유족 동의 없이 협상장 들어가
새정치연합 당직자 등의 얘기를 종합하면 박 대표는 지난 19일 오후 1시 30분께 이완구 대표를 비공개로 만나 합의안을 조율했다. ‘특검 추천위원 여당 몫 2명에 대해 야당과 유족의 동의를 거친다’는 내용이었다. 이 합의안을 들고 나온 박 대표는 그간 유족 측과 접촉해왔던 전해철 의원을 통해 유족들의 의사를 타진했다. 당시 전 의원은 자신의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유족 대책위 지도부를 만나 해당 안을 설명했는데, 그 자리에서 유족들은 “결국 여당이 추천하는 구조라 불안하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고 한다. 전 의원도 이 같은 유족들의 반대 의사를 박 대표에게 전달했다는 것이다.
이런 기류로 일부 측근은 박 대표가 협상장에 들어가는 것을 말리기도 했다. 한 핵심 당직자는 “안 되겠다 싶어 협상장에 가려는 것을 붙잡아서 유족들의 의견을 수렴해야 하니 좀 천천히 가자, 주말까지는 끌자고 했다”며 “왜 그렇게 박 대표가 서둘렀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당일 오후 3시 30분에 예정됐던 원내대표 회동에 박 대표가 한 시간 가량 늦게 나타난 것이다.
박 대표가 협상장으로 나서기 직전, 유족들의 반대가 거세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문재인 의원이 “그대로 가기 어렵지 않겠느냐”고 반대 의사를 전달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박 대표는 유족의 동의를 받지 않은데다 주변 의원들이 만류하는 기류 속에서 협상장에 들어간 것이다. 박 대표 측은 “당시 이완구 대표와 만나기로 약속을 했고, 당일 예정된 유족 총회 상황을 더 지켜볼 필요가 있어 일단 협상장에 들어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문의 합의안 사인
협상장에서 박 대표는 이 대표에게 유족 대표단이 반대하는데 유족 전체 총회가 예정돼 있으니 기다려달라고 양해를 구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날 1시간 가량 진행된 협상에서 박 대표는 합의안에 전격 사인을 하고 오후 5시40분께 이 대표와 함께 국회 귀빈식장에서 합의문을 공식 발표했다.
박 대표가 협상장 안에서 어떤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었을까. 이에 대해 관계자들의 얘기는 엇갈린다. 한 당직자는 “유족들이 거부하는 기류가 강해서 협상장에서 나오라고 했다”고 말했다.
박 대표 측의 얘기는 다르다. 유족 측과 접촉한 한 비례대표 의원이 “합의안 중에 ‘사전’에 동의라는 문구를 추가로 넣는다면, 유족 측이 수용할 수 있다”는 취지의 내용을 박 대표에게 전달했다는 것이다. 특히 유족 대책위 내에 강경 그룹에 속하는 이도 그런 내용이면 수용할 수 있다는 언질이었다고 한다. 실제 박 대표는 합의문 발표 당시 기자들과의 질의 응답에서 “야당과 유족의 동의를 사전에 받는 것”이라며 ‘사전’의 의미를 강조했다. 그러나 해당 의원 측은 “유족들이 합의안을 수용할 것이란 얘기를 명확히 전달했던 게 아니었다”고 얼버무렸다. 박 대표에게 전달된 의견이 유족이 아니라 대한변협 등 외부 변호사 그룹의 시그널이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독단적 스타일 도마
결국 박 대표가 유족들의 의사를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서 의사 전달 과정에서 혼선이 빚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당내에선 이 같은 혼선이 박 대표의 독단적 리더십 스타일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박 대표가 문제의 합의안에 대해 주변과 제대로 토론하거나 논의하는 절차도 생략하고 혼자 조급하게 판단하다 일을 그르쳤다는 것이다. 한 의원은 “협상 시한에 얽매일 필요가 없고 25일 본회의까지 유족들과 머리를 맞대자는 얘기가 당 내에서 많이 나왔는데, 박 대표가 왜 그리 빨리 협상을 타결 지으려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박 대표가 유족들의 의사를 안이하게 판단했고, ‘합의안 타결’이란 정치적 성과를 내는 데 조급했던 게 아니냐는 시각도 나온다.
이에 대해 박 대표 측은 “협상의 전권을 일임 받은 입장이었고 합의안이 논의 될 당시 여러 중진 의원들에게 자문을 구했고 ‘그 정도면 됐다. 수고했다’는 격려까지 들었다”고 설명했다. 한 수도권 재선 의원은 “자기 확신이 강한 게 개인으로는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다”며 “그러나 당을 이끄는 대표가 된 이상 자기 하나 물러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닌 만큼 의사 결정에 좀 더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윤주기자 k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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