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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교황의 정치적 메시지 잘 헤아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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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 중 보인 모습과 남긴 메시지에 대한 울림이 강하다. 일각에서는 교황의 행보가 가톨릭 교세 확대를 위한 바티칸의 고단수 정치와 치밀한 전략에 기인한다는 싸늘한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지난 4박5일 교황이 보여준 소탈하고 겸허한 모습, ‘낮은 데로 임하는’ 행보, 그리고 약자의 아픔을 진정으로 보듬는 공감의 메시지는 대다수의 국민에게 실로 감동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필자 또한 큰 감동을 받으면서도 다른 한편 직업 속성상 교황의 방한 어록과 관련 기사 및 논평을 꼼꼼히 읽으면서 교황의 메시지가 던져주고 있는 정치적 의미를 찾아보고자 노력하였다. 사실 교황의 메시지는 비록 겉으로 보기에 상당히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내용이긴 하지만 실상 중요한 정치적인-정파적 혹은 정략적인 의미와는 다른-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가령 “연대의 세계화”를 강조하면서 “비인간적인 경제모델”을 거부하고 “물질주의의 유혹에 맞서, 그리고 이기주의와 분열을 일으키는 무한경쟁의 사조에 맞서 싸우기를 빈다”는 연설 내용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항하는 소위 지구적 정의 운동(Global Justice Movement)의 입장과 다르지 않다. “우리의 대화가 독백이 되지 않으려면 다른 이들의 경험, 희망, 소망, 고난과 걱정도 들을 수 있는” 공감 능력이 중요하다는 내용도 정치학의 민주주의 논의 중 소통과 대화 및 공감을 중시하는 토의 혹은 심의 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와 맞닿는다.
무엇보다도 관심을 끈 내용은 15일 대전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강론 말미에 나오는 “다스림이 곧 섬김”이란 표현이다. 비록 정치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바꾸어 말하면 좋은 정치란 섬김으로 다스리는 것이란 메시지다. 또한 강론 내용을 보면 다스림과 섬김의 주체가 각각 위정자와 국민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다 같이 함께 섬기면서 다스린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위로부터 권위주의적ㆍ통제적인 방식으로 위정자가 국민을 지배하는 ‘거느림의 정치’와 달리 위정자와 국민이 소통과 공감, 그리고 대화와 협력으로 함께 섬기면서 다스리는 이상적인 ‘다스림의 정치’의 상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다스림이 곧 섬김”이란 메시지야말로 종종 협치(協治)라는 용어로 번역되고 있는 정치학의 거버넌스 논의에 대하여 근본적인 통찰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여하튼 필자에게 교황의 정치적 메시지는 연대, 공감, 다스림과 섬김이란 화두로 다가왔다.
그렇다면 우리 정치권은 어떠한가? 우선 떠오르는 모습은 세월호 특별법 표류를 놓고 한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 ‘네 탓’ 공방만 하면서 싸우고 있는 여야 정치인들이다. 이번 교황의 행보와 메시지를 두고서도 순수한 종교적 의미 이상으로 확대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손사래 치는 여당의 정략적 입장과 대통령의 불통 리더십과 정부 여당의 실정에 대한 일침이라는 야당의 아전인수식 해석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제 교황은 떠났고 최우선적으로 정치권은 정략적ㆍ대결적 구도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국민을 섬기는 자세로 세월호 특별법 협상에 임해야 할 것이다. 오늘 끝나는 7월 임시국회에서 극적인 합의를 도출해내는 것이 노력의 그 첫 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다스림보다는 거느림에 익숙한 기존 정치문화와 정치 행태에 대한 정치권의 반성과 각성이 필요하다. 교황의 메시지가 큰 울림을 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삶에서 보인 솔선수범의 모습과 진정성 때문일 것이다. 같은 메시지도 우리 정치인들이 얘기할 때는 왜 위선으로 들리는지 자성해 봐야 할 것이다. 현재 정부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국가개혁 드라이브과 야당이 내걸고 있는 새정치의 방향에 대한 성찰 또한 요청된다. 무늬와 구호만 개혁과 새정치가 아니라 연대와 공감, 그리고 다스림과 섬김의 정치를 구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제도와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이번 교황 방한이 던진 정치적 메시지를 살리는 길일 것이다.
김의영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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