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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 지금 당장 가난해져야"

입력
2014.08.18 15:13

[신학자 김근수 기고] (상) 가난한 사람들과 연대

"빈자 외면한 채 개혁 방법 없어… 물질·세속의 유혹 맞서 싸워야"

프란치스코 교황의 메시지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추기경 시절에도, 교황 취임 이후에도, 이번 방한 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 땅을 처음 밟은 날부터 그의 메시지는 일관되고 뚜렷했다. 그의 명언들만 따로 뽑아도 몇 페이지는 가볍게 넘는다. 그의 두 가지 목표는 가난한 교회, 가난한 사람을 위한 교회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연대는 그리스도인 생활의 필수 요소로 여겨야 합니다.”

방한 일정 동안 나온 교황의 모든 명언을 한마디로 압축한 표현이다. 그리스도교 신자라면 가난한 사람들과의 연대가 자기 신앙을 좌우하는 제1조건이다. 가난한 사람을 통하지 않고서 하느님에게로 이르는 길은 없다. 인간이 하느님을 잊는다 하여도 혹시 하느님께 용서받을 수 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을 잊으면 하느님께 용서받지 못한다. 가난한 사람을 잊는 죄는 무엇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다.

교황은 한국교회가 어느 지경에 있는지 모르지 않는다. “한국교회가 번영되었으나 또한 매우 세속화되고 물질주의적 사회 한 가운데서 살고 일하고 있다”고 교황은 지적한다. 한국교회는 “성공과 권력이라는 세속적 기준을 따르는 생활양식과 사고방식까지도 예수가 제시한 기준보다 우선 취하려는 유혹을 받는다”고 잇달아 경고하고 있다. 더불어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물질주의의 유혹에 맞서, 그리고 이기주의와 분열을 일으키는 무한 경쟁의 사조에 맞서 싸우기를” 교황은 바라고 있다.

종교 지도자가 ‘싸우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아주 파격적이다. 그만큼 교황은 물질주의를 커다란 유혹으로 보고 있다. 예수의 말씀 중에 하느님과 대등한 위력을 지닌 맞수로 유일하게 돈이 지적되었다. “하느님과 돈을 함께 섬길 수 없다”는 것이다. 교황은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만들어 내고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비인간적인 경제 모델들을 거부하라”는 것이다.

세속화되고 물질주의적인 사회의 유혹을 뿌리치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는 어떻게 가능할까.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야 말로 현재 한국사회에서 가장 소외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위로하는 교황을 바라보면서 국민이 위안을 받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한국천주교회는 세월호 유가족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 30명이 넘는 한국 주교들 중에서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라고 촉구한 주교가 몇이나 되는가. 가까운 광화문광장에서 단식 농성하는 유가족을 염수정 추기경은 단 한 차례도 찾지 않았다. 염 추기경이 찾아보지 않은 광화문 그곳을 교황 프란치스코는 찾았다.

슬퍼할 줄 모르는 능력을 교황은 강하게 비판한다. 무관심의 세계화에 맞서 ‘연대의 세계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교황이 가장 강조하는 가치는 바로 연대다. 교황에게서 한국교회는 어떤 충격을 받고 있을까. 아무리 거창한 직분을 지닌 종교인이라도 가난한 사람을 가까이 하지 않으면 그저 초라해진다.

교황에게 환호하는 국민과 신자들은 매우 불안하다. 교황은 우리 곁을 떠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별 관심이 없는 교회 지배층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슬픔으로 하나된 한국인들은 가난한 사람을 편드는 교회를 바라고 있다. 교황이 매달 한국을 방문할 수도 없다. 한국의 주교들이 모두 교황처럼 처신하기를 바란다. 한국 사제들이 모두 교황처럼 가난한 사람을 편들기를 바란다. 가난한 사람을 외면하고 한국교회가 개혁될 방법은 없다.

한국교회가 지금 가난한 사람들을 선택하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교황처럼 가난하게 사는 성직자를 한국에서 찾아보기란 어려운 일이다. 성직자가 가난하게 살지 않으면 가난한 교회를 만들기는 사실 어렵다. 가난한 사람을 선택하려면 우선 교회가 가난해야 한다. 돈이 넘치는 교회가 가난한 사람을 선택할 리 없다. 지금 당장 한국교회는 가난해져야 한다. 그것이 가난한 사람을 선택하는 교회가 되는 유일한 길이다. 그밖에 다른 방법은 없다.

김근수ㆍ가톨릭 평신도 신학자

신학자 김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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