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신해욱의 길 위의 이야기] 왕자와 거지 수업

입력
2014.08.17 16:47

‘왕자와 거지’에서 난데없는 왕 노릇으로 고역을 치르던 거지 톰은 궁궐 창 밖으로 무지렁이 죄인 행렬을 보게 된다. 스스로도 그런 삶을 살아온 지라 연민이 솟구친 그는 사정이나 들어보고자 행렬을 불러들인다. 죄목은 독살. 그러나 증거는 석연치 않고, 돈도 빽도 없는 죄인은 억울함을 호소하는데, 형벌은 무려 끓는 물에 산 채로 처넣는 팽형(烹刑). 톰은 기겁하며 정의와 자비의 어명을 내린다. 형 집행을 중지하라! 한편 그 시간, 거지가 된 왕자 에드워드도 굶주리고 헐벗은 채 떠돌며 빈민의 세상과 마주한다. 땅을 빼앗기고 노예로 전락한 농부, 종파가 다르다는 이유로 마녀로 찍혀 화형 당한 아낙네, 법관의 부당한 판결에 항의하다 귀를 잘리고 뺨에 인두 낙인을 얻은 변호사… 비록 혹독한 경험이었으나, 우여곡절 끝에 신분을 되찾은 에드워드는 몸소 겪은 원통함과 비참함을 밑거름으로 백성에게 공감하고 관용을 베풀 줄 아는 군주가 된다. 현실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명 왕자와 거지 수업. 한 나라의 리더가 되려는 사람은 세상 끝자락으로 내몰린 이들 사이에 섞여 무조건 몇 달쯤 살아보는 거다. 선거 전에만 재래시장에 나가 배추 값 묻지 말고 말이다. 그런 훈련을 거친 사람이라면 최소한 지금보다는 덜 매정하고 덜 일방적으로 나라를 이끌 수 있지 않을까. 교황의 소탈한 언행과 귀한 위로가 사무쳐 이런 덧없는 소망이 한결 간절해지는 시간이다.

시인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