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軍수뇌부 조사 없이 마무리한 윤 일병 사건 감사

입력
2014.08.14 20:00

육군 28사단 윤 일병 폭행 사망 사건의 축소ㆍ은폐 실태를 조사한 국방부 감사관실이 당시 국방장관인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권오성 육군참모총장이 엽기적 가혹행위를 보고받지 못했다는 감사결과를 발표했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3군사령관에게까지 보고가 이뤄졌으나 조사본부는 국방장관에게, 3군사령관은 육군총장에게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보고누락에 따른 책임을 물어 장성 2명 등 5명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고 밝혔다.

국방부의 감사결과에도 불구하고 윤 일병 사건 은폐와 관련한 꼬리 자르기 의혹이 가시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핵심 당사자인 김 실장을 조사대상에서 아예 제외했다는 것부터가 석연치 않다. 조사내용을 보면 사건 발생 이틀 뒤인 지난 4월 8일 28사단의 보고를 받은 6군단 헌병대는 곧바로 국방부 조사본부에 온라인으로 엽기적 가혹행위의 구체적 행태를 보고했다고 한다. 하지만 조사본부장이 장관에게 보고를 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해도 당연히 보고를 받는 당사자인 김 실장에게 같은 내용을 확인하는 게 조사의 기본 원칙이다. 처음부터 의혹의 당사자인 김 실장을 제외한 조사라면 면죄부를 주려는 의도라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특히 김 실장은 사고 발생 나흘 후 특별 군 기강 확립 대책회의를 열어 전체 군 부대에 정밀진단을 내렸다. 그 만큼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때문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5월 1일 권 전 총장 주재로 주요 지휘관 화상회의가 열렸다는 점에서도 감사결과를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설령 국방부 감사관실의 조사결과를 인정한다 해도 군의 고질적인 보고체계의 문제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국방장관이 군내 긴급 사건에 대해 보고받을 수 있는 통로는 여러 곳이다. 사건 조사를 담당하는 헌병과 정식 지휘계통, 참모계선을 통해서도 보고받도록 돼있다. 그러나 조사결과에 따르면 이 같은 여러 보고 채널이 전혀 가동되지 않았다. 이런 식의 허술한 보고체계라면 다른 중대사건에 대해서도 중간에 은폐ㆍ축소 행위가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군 내에서 일어나는 중요 사건의 실상을 제대로 보고받지 못하는 군 수뇌부라면 존재가치를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군의 기강이 철저히 무너졌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지난 2010년 강원도 화천에서 자살한 여군 장교 사망 사건에 대해 전면 재조사한 결과 상급자의 성희롱이 자살과 관련 있다는 내용도 군의 상습적인 은폐ㆍ축소 행태의 한 사례일 뿐이다. 당시 사단장은 가해자를 구두경고 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했고, 국방부는 ‘남녀간 애정 문제 탓’으로 결론 내리고 당사자를 중령진급 예정자로 발탁까지 했다. 사고가 터질 때마다 무조건 감추고 보는 군의 후진적 행태가 바뀌지 않는 한 군의 적폐 청산은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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