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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 北 허 찌른 제안… 꽉 막힌 관계 개선 주도 의지

입력
2014.08.1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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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AG 실무접촉 재개 기대에 의제 제한 없는 통 큰 만남 응수

모자 보건사업 지원 이례적… 한미 군사훈련 실시 등이 변수

한민구 국방장관이 1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군장성 진급 및 보직신고식에 참석해 머리를 숙인 채 깊은 생각에 빠져 있다. 홍인기기자 hongik@hk.co.kr
한민구 국방장관이 1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군장성 진급 및 보직신고식에 참석해 머리를 숙인 채 깊은 생각에 빠져 있다. 홍인기기자 hongik@hk.co.kr

정부가 11일 남북 고위급 접촉과 1,330만 달러(약 137억원)의 인도적 지원을 북한에 전격 제의한 것은 꽉 막혀있는 남북관계를 주도적으로 풀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15일 박근혜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 담길 대북정책 구상에 앞서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사전 포석도 엿보인다. 하지만 북측과 사전교감 없는 일방적 제안에 북측이 호응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아시안게임 자신감으로 고위급 접촉 선제 공격

정부의 고위급 접촉 제안은 북측의 허를 찌르는 측면이 크다. 인천 아시안게임에 참가할 선수단과 응원단 파견과 관련한 남북 실무접촉이 지난달 17일 결렬된 터라 북측으로서는 실무접촉 재개를 고대했을 법하다. 더구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앞장서 아시안게임 참가를 독려하면서 대남 협상 실무진은 곤혹스런 입장에 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아시안게임을 넘어 고위급 접촉으로 응수했다. 회담 의제에도 제한을 두지 않았다. 박근혜정부 들어 처음 열린 지난 2월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 북측이 “5ㆍ24조치 해제와 금강산 관광 재개를 다루자”고 주장했지만 우리측이 극구 거부하던 것과 180도 달라진 태도다.

북측이 아시안게임에 목을 매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정부가 북한의 참가 의지를 확인하고 과감한 제안을 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실제 정부 당국자는 “비공식 경로를 통해 북측의 실무회담 재개 의지를 확인했다”며 “20일 아시안게임 조추첨을 위해 북측 대표단이 인천에 오기 때문에 그 전후로 남북간 간접적인 의견교환이 있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부는 남북 화해 메시지를 들고 올 것으로 예상되는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또한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로 고려했다는 후문이다.

국제기구 통한 대북지원에도 기조 변화

정부가 이날 발표한 북한 모자(母子) 보건 지원사업도 이례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정부는 지난해 방한한 김용 세계은행 총재가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지원이 필요하다”고 강력 요청했지만, “대북 직접지원을 통해 북한의 태도를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며 반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이날 정부의 세계식량계획(WFP) 지원금액이 2007년 2,000만 달러에 비하면 적고, 세계보건기구(WHO) 지원금액도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기는 하지만 박근혜정부 들어 천명해 온 대북정책 기조에 비춰보면 전격적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정부의 기조 변화는 박 대통령이 지난 3월 독일에서 밝힌 ‘드레스덴 제안’의 연장선에서 풀이된다. 박 대통령은 당시 드레스덴 공대 연설을 통해 북한 주민들을 위한 인도적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밝히면서 유엔과 함께 ‘모자패키지(1,000days) 사업’을 펼쳐나가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1,000일은 여성의 임신부터 출산 뒤 아기가 두 돌이 되는 기간으로 유엔은 1,000일 동안 산모와 영유아의 영양과 보건을 지원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UFG훈련 변수와 북한 반응

정부는 고위급 회담에서 5ㆍ24 조치나 금강산 관광 문제 등 북측이 제기하는 문제도 충분히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제의는 이산가족 상봉을 포함해 남북 간에 당면한 여러 현안을 포괄적으로 협의해나가자는 취지에서 제의한 것”이라며 “이번 (고위급) 접촉이 성사되면 드레스덴 선언이나 통일준비위원회 발족과 관련해서 북측에 소상하게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전격 제안으로 이제 공은 다시 북한으로 넘어갔다. 북측은 우리측의 제안에 바로 답을 주기 보다는 일단 시간을 끌면서 상황을 좀더 관망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박 대통령이 얼마나 전향적인 대북 정책을 밝힐 지가 관건이다. 대북 소식통은 “북한은 15일 이후에야 움직일 것”으로 내다봤다.

북한이 극도로 꺼리는 한미 연합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훈련도 변수다. 정부가 UFG훈련을 기간 중인 19일 고위급 접촉을 열자고 제안한 것은 북측의 대화의지를 시험해 보려는 의도로 보인다. 대북 소식통은 “박 대통령의 경축사에 북한이 움직일만한 내용이 포함된다면 전격 제안은 더욱 탄력을 받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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