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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몰랐다’는 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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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진 '몰랐다' 대통령 질책 겁냈나
국민추궁 피하려는 대통령 7시간 부재론
진실규명 뒤 엄하게 책임 물어야 재발막아
28사단의 윤일병이 쓰러진 날은 4월 6일이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기 열흘 전이다. 그가 문제의 의무대에 배치된 것은 2월이고 폭력이 시작된 것은 3월초였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이처럼 끔찍한 폭력의 실체가 제때 세상에 노출되었다면, 그래서 문제를 일으킨 이들이, 문제를 덮으려던 이들이 엄정하게 처벌을 받았다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까. 4월 16일 그날, 감히 해경이 선원부터 구조하고 일반승객의 구조는 적당히 하면서 시간만 끄는 일이 일어났을까.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과 국방부는 입이라도 맞춘 듯이 ‘상세한 정황을 몰랐다’ ‘보고하지 않았다’고 책임을 회피하고 심지어는 곧바로 터진 세월호 참사로 인해 이 사건을 수습할 경황이 없었다는 듯 변명하지만 윤일병 사건과 세월호 참사는 동전의 양면이다. 이 정부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똑같이 노출시킨다. 진실은 얼마든지 감출 수 있으니 내 책임만 피하면 그만이라는 사고가 정부에 만연해 있고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김관진 당시 국방장관이 이 사건을 보고받은 것은 4월 8일이다. 국방부 발표를 그대로 믿어서 그가 상세한 정황은 몰랐다고 쳐도 ‘군대 내 폭행에 따른 사망사고’로 보고받은 것은 분명하다. 군대 내 폭행으로 국방의 의무를 지키려던 무고한 청년이 세상을 떠났는데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어디 있는가. 당시에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지도 않았다. 병역의 의무가 있는 국가의 국방장관으로서 그는 징집한 병사의 폭행 끝 사망을 가벼이 여겼다는 것만으로도 책임을 져야 한다. 만일 이 문제가 그 당시에 곧바로 밝혀지고 책임자들이 남김없이 책임을 졌다면 세월호 참사까지는 못 막았을지 몰라도 적어도 6월에 22사단의 임병장이 5명의 동료병사를 죽게 만든 GOP 총기난사사고는 막았을 것이다. 국가의 부름에 따랐다가 죽은 청년들은 뭐며 살인자가 된 청년은 도대체 무엇인가. 이게 모두 국방부도 군도 책임을 피하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그런 생각을 해도 전혀 처벌받지 않기 때문에 생겨난 비극이다.
그런데도 김관진 안보실장에 대한 책임론에 청와대의 반응은 안이하기 짝이 없다. 참모총장이 사퇴했으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사건을 넉 달 가까이 은폐했고 군인권센터라는 민간단체가 전모를 폭로하지 않았으면 현재까지도 진상이 드러났을까 의심을 주는 정부답게 무책임하고 뻔뻔하다. 사건의 재발을 막겠다고 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원회를 만들었지만 사건만 터지면 위원회부터 만드는 못된 버릇부터 정부는 고쳐야 된다. 대신 진상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밝히고 바로잡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
어떤 사건이든 재발을 막는 방법은 명확하다. 누가 잘못했는지를 정확하게 밝히고 책임자에게 분명한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다. 고위직일수록 그 책임을 무겁게 해야 한다.
그런데 사건이 터지면 본질에 접근은 하지도 않다가는 위원회 만들고 보고서 만들고 1차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으로 사건을 덮어버린다. 윤일병 사망사건에는 이병장을 비롯한 가해자 6명을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만 따진다. 어떻게 집단의 가해가 그렇게 조직적으로 계속 일어날 수 있는지, 누가 관리감독을 소홀히 했는지, 왜 조직적으로 사건을 은폐했는지 진짜 책임져야 할 고위 책임자들은 ‘모른다’ 한마디로 책임을 피한다. 세월호 참사도 선박 소유자인 유병언의 죄상만 파헤칠 뿐 왜 해경이 구조를 회피했나 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외면한다. 김관진 전 국방장관은 윤 일병의 참사를 상세히 몰랐고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가 있던 날 7시간이나 사라져서 현장의 위기 상황을 몰랐다고 한다. 해경이 구조를 외면하는 그 때 정부는 도대체 뭘 했고 청와대는 뭘 했느냐에 대한 변명으로 나온 ‘대통령 7시간 부재론’은 급기야 사생활에 대한 온갖 루머를 만들어 일본 산케이 신문이 보도하기에 이르렀다. 나라 망신이다.
윤일병 사건이나 세월호 참사가 닮은 점 또 하나는 죄 없는 이들의 죽음으로 겨우 문제가 표면에 드러났다는 사실이다. 선한 이들의 죽음으로 겨우 드러난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할 망정 진상을 은폐하려 한다면 그건 또다른 무고한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다. 공직자 자격이 없다. ‘몰랐다’는 거짓말로 진상규명을 피하지 마라.
서화숙선임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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