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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 공직 기강 잡기 고삐…"적폐 청산" 강드라이브

입력
2014.08.05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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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병·유병언 사건 관련 군·검경 안이한 행태에 책임 추궁

정부기관에 국민 불신 들끓자 2기 내각 발목 우려감 작용도

"군 통수권자로 사과 표명 안해 대통령 스스로 책임 회피" 지적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5일 국무회의에 참석해 의사봉을 두드리는 박근혜 대통령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5일 국무회의에 참석해 의사봉을 두드리는 박근혜 대통령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이 5일 윤모 일병 폭행 사망 사건 및 유병언씨 부실 수사와 관련해 군 당국과 검ㆍ경을 강하게 질책하며 엄정 대처를 천명한 것은 정부 기관에 대해 확산되고 있는 국민적 불신을 차단하면서 2기 내각의 핵심 국정 과제인 ‘적폐 청산’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실제 박 대통령이 일벌백계의 고강도 문책 방침을 밝힌 후 권오성 육군참모총장과 이성한 경찰청장이 잇따라 사의를 표명하는 등 공직 사회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안이한 군 당국과 검경에 고강도 경고

박 대통령이 이날 휴가 후 처음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일벌백계의 문책 방침을 언급한 것은 군과 검경의 안이한 행태에 대해 고강도의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윤 일병 폭행치사 사건에 대해 “지난 수십 년 동안 계속 이런 사고가 발생해왔고, (군이) 그 때마다 바로잡겠다고 했지만 또 반복되고 있다”며 ‘뿌리 깊은 적폐’로 규정했다. 병영 내 폭력 문화를 그만큼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얘기다. 역으로 보면 군 당국이 사건 초기 윤 일병 사건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한 채 사건을 축소한 데 대한 질책이 담긴 것이다. 실제 박 대통령은 윤 일병 사건의 폭력 실상에 대해 민간단체가 폭로한 것을 계기로 지난 1일 한민구 국방 장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진상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때서야 한 장관도 부랴부랴 각군 총장 등을 소집해 긴급대책회의를 가졌다고 한다. 군이 안이하게 판단한 사안에 대해 사실상 대통령이 책임 추궁에 나선 것이다.

특히 박 대통령은 “국가 혁신 차원에서 반드시 바로잡겠다”며 병영 폭력 문화를 2기 내각의 국정 기조인 ‘국가 혁신’이란 큰 그림 속에서 뿌리 뽑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병영문화의 근본적인 문제점과 관행을 철저히 조사해서 병영시설을 수용공간에서 생활공간으로 바꾸고 군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부터 인성교육과 인권 교육을 강화하는 것을 포함해 근본적인 방지책을 만들어주기 바란다”며 강력한 재발 방지 대책도 주문했다.

박 대통령은 그러면서 유병언 시신 확인 과정에서 보인 검경의 부실 수사도 뒤늦게 도마에 올렸다.“시신이 최초 발견된 부근에 신원을 추측할 수 있는 유류품 등이 많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검경이 이를 간과해서 40일간 수색이 계속됐다”며 검경의 무능을 지적하면서 “국민의 신뢰를 크게 떨어뜨렸다”고 질타한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병영 폭력과 이를 은폐하는 군 당국의 문제, 수사를 둘러싼 검경간 엇박자 등은 고질적인 문제가 아니냐”며 “대통령께서 이를 ‘적폐’로 규정하며 강력한 개혁 의지를 천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확산되는 정부 불신 차단, 적폐 청산의 계기로

박 대통령이 이처럼 강경한 어조로 군 당국과 검ㆍ경에 동시다발적인 경고를 보낸 것은 무엇보다 정부 기관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예사롭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유병언씨 시신 발견을 두고서 온갖 음모론이 무성했던 데다, 여론조사에서도 정부 발표를 믿지 못하겠다는 의견이 50%를 넘는 등 정부 신뢰가 위험 수위를 오갔다. 여기에 윤 일병 사건이 불거지고 군 당국의 은폐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정부를 향한 국민적 불신이 확산될 경우 막 시동을 건 2기 내각의 발목이 잡힐 수 있다고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일벌백계의 문책 방침이 나오는 것도 이 같은 불신을 해소하고 들끓는 여론을 달래기 위한 조치인 것이다.

아울러 이번 사안을 2기 내각의 국정 핵심 과제인 ‘적폐 청산’을 부각시키는 계기로 삼겠다는 의도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 이후 ‘국가 개조’를 내세우며 ‘적폐청산’을 강조했으나, 2기 내각 출범 과정에서 숱한 인사 파동을 겪으며 지지부진을 면치 못했다. 박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도 급락해 ‘레임덕’ 전초 단계인 40% 선이 위협 받고 있는 실정이다. 7ㆍ30 재보선에서 여당의 압승으로 국정 운영의 동력을 만회한 박 대통령으로선 강력한 ‘적폐 청산’ 드라이브를 통해 2기 내각 출범의 명분을 다시 찾고 이를 통해 민심 회복에 나섰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이 윤 일병 사건에 대해 군 통수권자로서 사과 표명을 하지 않고 질책만 한 것은 스스로의 책임을 회피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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