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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도] 선거가 덮어 버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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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라는 건 이상하다. 정당뿐 아니라 개인에게도 자신을 한번 검열하게 만든다. 나의 의견, 나의 판단, 나아가 나의 이념은 우리사회에서 과연 주류인가. 주류라면 “그것 봐라!”하면서 기세등등 해지고, 비주류라면 생각이 복잡해진다.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지 못하니 틀린 것인가, 버려야 하나?’‘어떤 지식들과 그에 따른 관점을 놓친 것인가?’하는 질문들이 줄을 잇는다.
그리고 뚜렷한 답이 없는 질문들은 해석과잉을 낳는다. 심판은 받았는데 이유는 적시가 안되니 ‘판결이유’가 적히지 않은 판결문 같다. 때문에 어느 한쪽으로 쏠린 선거결과가 나오면 이긴 쪽의 모든 전력은 용인되고, 진 쪽은 모든 전력은 폐기해야 할 쓰레기더미로 치부되곤 한다.
7ㆍ30 재보궐 선거에서 여당이 압승하면서 고위공직자 인선 실패와 국정 공백,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검거과정에서 나타난 무능과 문책론 등 최근까지 정부 여당을 향했던 화살들은 우수수 떨어졌다. 세월호 유족들에 대한 일부 여당의원들의 잇단 모욕에도 ‘유권자들이 괜찮다잖아’하는 허무주의가 감돈다. 이제 비판의 공간은 야당의 정부 여당 발목잡기, 공천실패, 비전부재 등이 주로 채우고 있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의 완패 원인 중 비교적 명확한 것은 공천실패와 비전부재이고, 여당 발목잡기나 세월호 정치이용과 같은 해석은 선뜻 “그렇다”라고 하기 망설여진다. 일방적 선거결과에도 불구하고 쓰레기더미로 던지기에는 아까운 것들, 또 승리의 영광과 함께 쓱 끼워 넣기에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이 마음 속에 맴도는 까닭이다.
무엇보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여당 발목잡기’라는 이유로 민폐로만 치부되는 현상이 강화될까 걱정된다. 물론 ‘여당 발목 잡는 것’이 이견 없는 법안 처리를 논쟁 중인 다른 법안과 연계시켜 지연시키는 것에 한정한다면, 지당한 말씀이고 이 기회에 제발 고쳐졌으면 좋겠다. 하지만 주요 정책이 충돌할 때, 야당에 “여당 발목 잡지 말라”는 것이 사회적 약자들의 손을 놓으라는 주문과 어느 지점이 같고 어느 지점이 다른지 어떤 현명한 자가 명확히 알려줄 수 있을까. ‘세월호 책임을 묻는 것’과 ‘세월호를 정쟁에 이용하는 것’의 차이를 나는 잘 모르지만, 야권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 문제에 있어 세월호 유가족의 의견을 좀더 충실히 따르고 있는 것은 명확해 보인다.
이번 선거의 최대 수확인 지역주의 타파의 영광에도 떨쳐내고 싶은 것이 딸려왔다.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이 전남 순천 곡성에서 당선된 것은 한국 사회 전체가 잔치를 열만한 일이지만, 승리의 주요 이유인‘예산 폭탄’약속은 그 위험성과 폐해가 지나치게 축소 해석되는 듯 하다. 해마다 비판 받아온 유력 정치인들의 ‘쪽지 예산’끼워 넣기와 무엇이 다를까. 주로 도로와 철도 건설 등 선심성 개발을 목표로 하는 ‘쪽지예산’은 국가살림을 왜곡한다는 비판을 받아왔지만, 그것이 정권실세가 지역주의를 타파한 영광의 땅에 적용한다면 환영해야 할 일인가.
2년 여전 부모 없이 생활하는 보육원 아동들의 한끼 밥값이 1,400~1,500원에 불과하다는 기사를 몇 번을 쓴 적이 있다. 쓸 때마다 “쓰면 개선 되겠지, 개선되겠지”하는 기대를 품었지만, 예산당국과 국회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이 아이들의 식비를 아동복지정책 권고기준에 근접하는 3,000원으로 인상하는 데는 295억원이 필요했는데, 그 해 예산안이 통과한 후 유력 국회의원들이 ‘지역구 챙기기’용도로 관철시킨 쪽지예산의 막대한 숫자들을 세어보며 쓰라렸던 기억이 있다. 결국 예산안이 통과한 후에야 비난 여론이 일자, 추경으로 500원 더 올려주는 것에 그쳤다.
서울 동작을의 표심을 잡은 ‘강남 4구 만들기’공약도 과거 ‘뉴타운’공약처럼 지역민의 개발욕구를 자극하는 시대에서 별로 나가지 못했음을 확인시켜 줬다. 물론 지역구 공약을 뛰어넘는 사회 비전을, 마음 속에 그려지도록 보여주지 못한 야당 탓이라는데 말을 보태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번 선거를 통해 우리 사회가 발전하려면 야권을 비판하는 것을 너머, ‘승자 독식’이 덮어버리는 것 또한 비판해야 한다. 그것은 버릴 것과 지킬 것의 차이를 구별하려는 노력에서부터 시작할 것이다.
이진희 사회부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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