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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교황의 행복론

입력
2014.08.03 20:00

고대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행복을 “ 존재의 최종 목적”이라고 정의했다. 그 이래 동서양에서는 철학적, 종교적으로 행복론과 행복에 이르는 방법이 무수하게 제시돼 왔다. 우리시대 행복학 학자 중 한 사람인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행복은 존재의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를 정반대로 뒤집는다. 그에 따르면 좋은 사람과 좋은 음식은 인간의 원시적 뇌에 최고 행복감을 일으키는 양대 코드다. 그래서 좋아하는 사람과 좋은 음식을 먹는 모습이야말로 최고 행복한 장면이다.

▦ 방한을 앞둔 프란치스코 교황이 행복해지기 위한 10가지 지침을 조언했다. 고국 아르헨티나의 주간지 비바와의 인터뷰에서다. 10개 지침들을 관통하는 핵심은 ‘함께 살고 타인을 존중하라’이다. ‘자신의 삶을 살고, 타인의 삶도 존중하라’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여라’ ‘타인을 험담하지 말라’ ‘타인을 개종하려 들지 말라’ 등 10개 지침 중 네 개가 공존공생과 타인 존중이다. ‘전쟁을 지양하고 평화를 추구하라’ ‘환경 보전에 힘써라’ 역시 함께 살라는 뜻에 다름 아니다.

▦ 행복한 삶을 위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또 강조한 것은 가족이다. 평소에도 가족과 함께 하는 삶, 특히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을 강조해온 그다. 건전한 여가 생활을 위해 소비주의와 상업주의를 경계하며 가족들과 식사할 때는 TV를 끄고, 주말은 가족을 위해 보내라고 권했다. 교황의 행복론이 종교적으로 심오하거나 개인의 영성 차원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지극히 평범하고 어떤 면에선 세속적이기까지 하다. 권위를 벗어 던지고 낮은 곳, 함께 하는 곳을 향하는 교황의 소박한 면모가 새삼 돋보인다.

▦ 프란치스코 교황이 권하는 행복한 삶은 결국 한마디로 ‘함께 하는 삶’이다. 함께 하는 삶의 한 가지라고 할 수 있는 ‘저녁이 있는 삶’을 현실 정치를 통해 실현하고자 했던 손학규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 정계은퇴 선언을 했다. 재보선 낙선에 따라 그가 설 정치적 공간이 사라진 마당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일 터이다. 하지만 그의 ‘저녁이 있는 삶’ 캐치프레이즈에 공감하고 지지했던 사람들에겐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유행가 가사처럼 이루지 못한 꿈은 슬프다. 이제 또 어떤 정치인이 행복한 삶에 대한 꿈을 꾸게 할 것인가.

이계성 수석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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