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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마현 추도비 철거, 우익 정치인 선동"

입력
2014.08.03 14:09

철거 위기에 놓인 ‘기억, 반성 그리고 우호의 추도비를 지키는 모임’의 공동대표인 쓰노다 기이치(角田義一ㆍ변호사) 전 참의원 부의장은 한국과 인연이 각별하다.

역시 변호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일제시대 한국인 독립운동가 변론을 자처한 것이 밉보여 3년간 옥살이를 한 적이 있었다. 쓰노다 대표는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한국인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키워왔고, 안중근 의사 순국 95주년이던 2005년 일본측 추모단 40여명을 이끌고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2007년 정계 은퇴후 군마현 마에바시(前橋)시에서 변호사 활동을 하고 있는 쓰노다 대표를 지난달 30일 만나 추도비를 둘러싼 그간의 경위와 향후 대응 방침을 들었다.

-군마의 숲에 세워진 추도비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던데.

“일본의 반성을 담은 추도비가 지자체 소유 공원내에 설립된 곳은 군마현이 유일하다. 과거를 직시하고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한 추도비라는 점에서 주민들도 자랑거리로 생각해왔다. 갑작스런 철거결정에 주민 3분의 2 이상이 반대하는 상황인 만큼 결코 물러설 수 없다.”

-군마현은 추도비 설치 연장 불허가 배경으로 설립단체의 정치적 행위, 추도비로 인한 분쟁 우려를 들고 있다.

“추도비앞에서 행사를 하는 과정에서 일부 회원이 정치적인 인상을 주는 발언을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가 불거지고 난 이후 정치행위를 한 적은 없으며 앞으로도 하지 않겠다고 군마현에 수 차례 다짐까지 했다. 분쟁이라는 말도 어불성설이다. 추도비가 세워진 뒤 8년간 없던 분쟁을 일으킨 쪽은 재일한국인의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모임(재특회) 등 이른바 넷우익을 중심으로 한 세력들로 이들이 오히려 정치적 의도를 갖고 조직적으로 반대 운동을 펼쳤다.”

-우익세력들이 추도비 철거 운동에 나선 이유는.

“일본의 과거 잘못된 역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정치인들의 선동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부 정치인들이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정하고 강제징용이 없었다는 주장을 일삼는데다, 아베 신조 총리는 고노담화 검증을 통해 역사왜곡을 시도하는 등 정치인들의 우경화가 심각하다. 이런 분위기에 우익세력이 편승한 것이다.”

-추도비 설립된 과정을 설명해달라.

“1995년 종전 50주년을 맞아 일본에서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자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군마현에서도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과거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한국인에 대한 조사작업을 실시해 6,000여명이 강제노동에 못 이겨 숨진 사실을 밝혀냈다. 이후 돌아가신 분들의 영혼을 달래고 일본의 반성을 토대로 한국과 우호를 더욱 돈독히 하자는 취지에서 추도비 건립운동이 일어났다. 현내 기업과 시민단체,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1,000만엔을 모금해 추도비를 건립했다.”

-건립 당시에는 반대세력이 없었나.

“군마현은 역대 자민당 세력이 강한 지역이다. 후쿠다, 나카소네 등 자민당 출신 총리도 4명이나 배출한 곳이다. 하지만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정치적 이견은 없었다. 당시 군마현은 현 소유 공원인 ‘군마의 숲’에 추도비 건립부지를 기꺼이 내주었고, 현 의회는 만장일치로 추도비 건립을 찬성했다. 추도비 뒷면에 새겨진 문구도 건립단체, 군마현, 일본 정부가 참여해 의견을 모아 정리한 것이다. 지금 젊은 자민당 의원들은 그런 배경을 잘 몰라 추도비 철거를 요구한 것 같다.”

-철거 결정에 어떻게 대응할 계획인가.

“군마현은 추도비 자진철거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일 수 없어 관련 자료를 수집한 뒤 10월께 소송을 제기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시민운동을 통해 철거를 반대하는 주민들의 서명운동을 받는 등 현의 결정을 뒤집기 위해 온힘을 다하겠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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