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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모습 계속 떠올라 평생 못 잊을 것 같아요"

입력
2014.07.29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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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학생 16명 증언 이어져

법정 눈물바다에 재판 잠시 중단도

28일 오후 세월호 침몰사고에서 생존한 단원고 학생들이 경기 수원지법 안산지원에서 사고 당시 상황을 증언한 뒤 귀가하고 있다. 뉴시스
28일 오후 세월호 침몰사고에서 생존한 단원고 학생들이 경기 수원지법 안산지원에서 사고 당시 상황을 증언한 뒤 귀가하고 있다. 뉴시스

“아직도 실감이 안 납니다. 이 사건이 발생했다는 게, 저희 학교 애들이 다 갔다는 게 실감이 안 나요. 진실이 밝혀지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울먹이며)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더는….”

“마지막으로 방에서 나올 때 한 친구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 친구는 결국 못나왔어요. 그 친구가 바닷물에 잠기는 모습이 계속 떠올라서….”

“제 친구들이 왜 아무 이유 없이 죽어야 했는지…. 친구들은 없고 저만 살아와서….”

죽음의 공포와 싸우다 힘겹게 살아 돌아온 단원고 생존 학생들은 사고 후 100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삶과 죽음을 가른 그 순간을 잊지 못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두려움에, 살아 돌아오지 못한 친구에 대한 미안함에 눈물을 흘렸다. 학생들은 “수학여행 가다 사고가 난 게 아니라 사고 후 미흡한 조치로 죽었다”며 사고 관련자들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요구했다.

29일 오전 수원지법 안산지원에서 광주지법 형사11부(부장 임정엽) 심리로 열린 세월호 승무원 15명에 대한 공판에서 전날에 이어 단원고 생존 학생 16명이 증인으로 나섰다.

4층 B28 선실에 머물렀던 C양은 “사고 당시 한쪽으로 쏠린 짐에 선실 출입문이 가로막히고 허리를 다쳐 어쩔 줄 몰라 소리를 지르며 문을 두드렸다”며 “굳게 닫힌 문은 옆방에 있던 일반인 승객들 도움으로 간신히 열렸고 이들의 도움으로 갑판에 올라 해경 헬기를 타고 탈출했다”고 당시 급박했던 상황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A양은 “친구들을 한 순간에 잃어버렸다”며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Y군은 “바다에서 탈출하고 3~4일만에 처음 샤워를 하는데 물이 쏟아지는 순간 숨이 턱하고 막혔다. 정말 힘들었다”고 말했고 S군은 “부모님에게 항상 괜찮다고 말은 하지만 평생 못 잊을 것 같다”고 고개를 떨궜다.

한 학생은 탈출 직전 승객 구조에 힘쓰다 미처 배에서 나오지 못한 승무원 박지영씨를 봤다며 “박지영 언니가 구명조끼 입었냐고 묻고는 달려가다가 4층 로비 쪽으로 확 굴러 떨어졌다. 다쳤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 이후에는 못 봤다”고 말해 증언을 듣던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긴박한 탈출 과정은 저마다 달랐지만 승무원이나 해경의 도움을 받았다는 증언은 한 마디도 없었다. 오히려 오전에 진술한 여학생 7명은 B23호실 앞 통로에서 6반 반장인 S군이 구명조끼를 주고 헬기를 타러 올라가라고 알려줘 탈출했다고 증언했다. 오후에 증언에 나선 S군은 “통로에 있는 친구들은 창문이 없다 보니 심각성을 모르고 있었다. 제가 안 하면 그대로 있을 것 같아 움직였다. 헬기를 타러 올라가라고 한 것도 제 판단이었다”고 진술했다. 검사는 S군에게 “(구조 관련) 교육도 받지 않았지만 많은 일을 했다. 선원들은 아무 조치도 못했는데…”라고 말했고 재판부도 “용감한 행동으로 친구들을 많이 구했는데 자부심을 가지라”고 격려했다.

한 학생은 네티즌들의 ‘악플’에 상처받고 있다고 털어놨다. O양은 “저희는 수학여행 가다가 사고 난 것이 아니라 사고 후 대처가 잘못돼 친구들이 죽은 거다. 단순 교통사고로 표현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전날에 이어 승객을 버리고 먼저 탈출한 승무원들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호소하며 증언을 마무리했다. C양이 “친구 10명이 같이 있었는데 2명이 나왔다. 빨리 진상이 규명되고 처벌을 받았으면 좋겠다”며 2분여간 눈물을 참지 못하자 재판은 잠시 중단됐다. 방청객들도 함께 울었고 검사들도 하늘을 보며 붉어진 눈가를 감췄다.

김기중기자 k2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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