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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쪽에 친구들 있다고 했는데… 해경은 바라보기만"

입력
2014.07.28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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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닿을 거리 고무보트에 탄 해경 바다로 떨어진 사람 건져만 올려"

"선실에 물이 차오르는 상황서도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만 반복"

28일 수원지법 안산지원에 마련된 증인지원실의 화상 장비들. 재판부는 이날 단원고 생존학생들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화상증언을 계획했지만, 학생들 대부분은 친구, 선생님과 함께 증인석에 앉는 조건으로 직접 법정에 나왔다. 안산=사진공동취재단
28일 수원지법 안산지원에 마련된 증인지원실의 화상 장비들. 재판부는 이날 단원고 생존학생들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화상증언을 계획했지만, 학생들 대부분은 친구, 선생님과 함께 증인석에 앉는 조건으로 직접 법정에 나왔다. 안산=사진공동취재단

28일 세월호 선원에 대한 공판이 열린 수원지법 안산지원에서 증언한 단원고 2학년 1반 A(17)양은 세월호 4층 선미 쪽 왼편 SP1 선실에 머물다 친구들이 끌어주고 밀어줘 90도로 기운 선실에서 빠져 나왔다. 친구들 30명 정도가 복도에 줄지어 서서 차분히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구조대가 오지 않아 한명씩 바다로 뛰어들었는데 내가 뛰어든 뒤 파도가 비상구를 덮쳐 나머지 절반의 친구들은 빠져 나오지 못했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A양과 같은 선실에 있던 B(17)양 등 4명의 친구들도 차분하게 사고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일부 질문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변하다가도 ‘탈출 과정에서 승무원이나 해경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나’라는 질문에는 단호하게 “그런 사실이 없다”고 진술했다. B양은 “손 내밀면 닿을 거리에 있던 고무보트에 탄 해경은 비상구에서 바다로 떨어진 사람들을 건져 올리기만 했다”며 “비상구 안쪽에 친구들이 많이 남아있다고 말했는데도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고 증언했다. 방청석에서 지켜보던 생존학생 가족들 사이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사고 당시 친구를 만나러 선체 중앙 왼편 B22 선실에 갔던 C(17)양은 배가 기울어져 위쪽에 위치한 다른 선실에서 누군가가 커튼으로 만든 줄을 던져줘서 탈출했다. 하지만 도움을 준 사람이 승무원이나 해경은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사고 당시 많은 학생들이 두려움 때문에 배 안에 있던 캐비닛에 숨었지만, 선실에 물이 찬 이후에는 오히려 그 속에 갇혔다가 겨우 빠져 나왔다고 급박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28일 오전 세월호 침몰사고와 관련해 안산 단원고 생존학생들이 법정증언을 마친 후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으로 나서고 있다. 재판부는 학생들이 미성년자이고 안산지역에 살고 있어 광주까지 장거리 이동에 어려움이 있다고 보고 안산에서 증인신문을 진행하기로 했다. 안산=사진공동취재단
28일 오전 세월호 침몰사고와 관련해 안산 단원고 생존학생들이 법정증언을 마친 후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으로 나서고 있다. 재판부는 학생들이 미성년자이고 안산지역에 살고 있어 광주까지 장거리 이동에 어려움이 있다고 보고 안산에서 증인신문을 진행하기로 했다. 안산=사진공동취재단

생존학생 6명은 모두“‘단원고 학생들 자리에서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내용의 방송이 반복됐다”며 “탈출하라는 방송이 나왔다면 캐비닛 등을 밟고 많은 인원이 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D(17)양은 “콸콸콸 물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고 옆에 있던 캐비닛이 부서지는데도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만 나왔다”고 말했다.

이들은 재판부를 향해 승객을 버리고 배에서 먼저 탈출한 승무원들을 엄벌에 처해달라고 호소했다. E(17)양은 “친구와 선생님 생각이 나고 가끔 꿈도 꾼다”며 “승무원들에 대한 처벌도 중요하지만 친구들이 왜 그렇게 됐는지 근본적인 이유를 밝혀달라”고 요청했다.

재판부는 학생들이 미성년자이고 대부분 안산에 거주하며 사고 후유증으로 장거리 이동이 어려운 점을 고려해 그 동안 재판이 열린 광주가 아닌 안산에서 재판을 열었다. 또 학생들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화상증언을 계획했지만 학생 대부분이 친구나 선생님과 함께 증인석에 앉는 조건으로 법정 증언을 희망해 6명 중 5명의 학생이 직접 법정에 나왔다. 이준석 선장 등 피고인들은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으며 재판부의 비공개 결정에 따라 학생 가족과 취재진 등 10여명만 재판을 지켜봤다. 이날 오후 재판에는 사고 당시 부상으로 거동이 불편한 일반인 생존자 등 3명이 증인으로 출석했고 29일 재판에는 생존 학생 17명이 오전부터 증인으로 출석해 사고 당시 상황을 증언할 예정이다.

김기중기자 k2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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