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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희생자 어머니는 뭐가 미안하셨던 걸까

입력
2014.07.28 13:25

5월 25일 오전 5시30분. 서울 청량리역에서 첫차를 타고 경기 안산으로 출발했습니다. 어떤 임무를 맡을지도 모르는 채 일단 피곤한 몸을 덜컹거리는 지하철에 맡겼습니다. 1시간 15분이 걸리는, 짧다면 짧은 거리지만 늘 잠이 부족한 견습기자에겐 달디 단 쪽잠을 잘 수 있는 아주 긴 시간입니다. 이 시간만으로도 6일간의 안산 파견이 내심 반갑기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턱이 무릎에 닿을 정도로 꾸벅꾸벅 졸며 안산으로 향했습니다.

“72기 견습 이현주입니다. 방금 합동분향소에서 분향 마쳤습니다”

“지금 안산 하늘공원으로 출발하도록. 가서 단원고 유족 사연 취재해”

불과 한달 전 상상할 수 없는 아픔을 겪은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를 내게 털어놓을 수 있겠냐"고 묻는 것은 견습기자에게는 괴롭고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불과 한달 전 상상할 수 없는 아픔을 겪은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를 내게 털어놓을 수 있겠냐"고 묻는 것은 견습기자에게는 괴롭고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하늘공원. 그 이름처럼 푸른 동산이 그 어떤 장애물도 없이 하늘과 바로 마주하고 있는 예쁜 곳, 그렇지만 마냥 예쁠 수만은 없는 ‘납골 공원’입니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은 100여명이 안치되어 있기도 한 곳입니다. 아이들의 유골이 담긴 차가운 대리석 벽면에는 가족사진, 평소 잘 먹던 초콜릿, 차고 다녔던 시계 등등 가족과 친구들이 온 마음을 다해 표현한 정성과 슬픔이 다닥다닥 붙어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곳에서 자식과 친구를 잃은 사람들의 아픔과 슬픔을 캐내야 하는 ‘기자’여야 했습니다. 차라리 피곤함을 핑계로 골아 떨어져 모든 유족을 놓쳐버리고만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안 그래도 오전 7시 납골당에 서서히 햇볕이 들기 시작하면서 지하철에서 마무리되지 않은 잠이 쏟아졌습니다. 그래도 저는 견습기자이니 부단히 노력해야만 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렇게 혼자 납골당 귀퉁이에 앉아 내면의 갈등을 거듭하는 와중에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소리 없이 걸어와 한 납골함 앞에 섰습니다. 사진 속 아이는 부모님을 닮아서 아주 얌전하고 조용한 소녀인 듯 했습니다. 정말 싫었지만 무슨 사연이라도 알아내야만 했습니다.

어렵사리 그분들에게 다가가 납덩이처럼 무거운 목소리로 말을 건넸습니다.

“A양 부모님 맞으신가요? 혹시 어떤 따님이었는지 얘기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다행스럽게도 두 분은 수줍은 듯, “우리 딸은 평범했어요. 얌전히 공부하고 말썽 안 피우고… 이렇다 저렇다 말씀드릴게 없을 정도로 조용한 아이였어요”

취재를 계속 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용기를 낸 덕분에 수많은 단원고 학생들 중 한 명에 대해 알았습니다. 학창시절 새학기가 돼 새로운 동급생들을 만나면 다들 낯설게 느껴지는 가운데 친구 한 명과 말을 트게 된 것처럼 말입니다.

그때부터 뭘 캐낸다고, 알아내자 생각 말고 한명 한명 알아가자고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물론 이 조차 쉽지 않은 유족들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 분들 중 몇 분은 마음을 터놓고 말씀해주셔서 몇몇 사례가 기사화되기도 했습니다. 자식 자랑을 하시며 잠시라도 입가에 미소를 띄우는 모습을 볼 때는 ‘아주 못할 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단원고 희생 학생들의 납골함 앞에 유족과 지인들이 사진, 간식, 유품들을 붙여 놓았다.
단원고 희생 학생들의 납골함 앞에 유족과 지인들이 사진, 간식, 유품들을 붙여 놓았다.

5월 27일부터는 유족들이 국회를 방문해 하늘공원을 찾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좋건 싫건 늘 납골당을 찾던 유족들이 오지 않으니 쓸쓸함이 더해졌습니다. “제발 오지 말았으면”하던 유족들을 “누구라도 와줬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으로 기다리게 됐습니다.

5월 30일은 안산 파견이 끝나는 날이었습니다. 조만간 49재를 치를 계획인 유가족들을 섭외하는 것이 임무였습니다. 마침 처음 알게 된 A양의 부모님이 49재를 치른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A양의 아버지는 우리 아이는 정말 평범해서 취재할 거리가 없을 거라며 취재 요청을 정중히 거절하셨습니다. 6일 내내 거절하셨던 분이니 ‘역시나 안하시는 구나’라며 다시 납골당 귀퉁이에 쪼그려 앉아 있었습니다.

“이거 드세요. 미안해요”

취재를 거절하고 돌아가시던 A양의 어머니가 다가와 버터와플 두 봉지를 건네고 가셨습니다. 아직도 궁금합니다. 어머니는 저에게 뭐가 미안했던 걸까요. [견습 수첩]

이현주 기자 lare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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