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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씨, 은신처 탈출 18일 만에 백골? 20억 돈가방 어디로?

입력
2014.07.22 19:58

도주 중 자연사·자살 가능성… 거액 노린 추종자들이 살해 추정도

부패속도 의혹 법의학자들 이견… 시신 발견 못한 이유도 납득 안 가

유병언(73) 전 세모그룹 회장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부패된 상태로 전남 순천시 서면의 한 야산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10만 성도를 거느렸던 종교 지도자의 주검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22일 경찰은 DNA 감식과 지문대조로 유씨의 사망을 공식 확인했지만 왜 유씨가 그곳에 홀로 남겨져 죽었는지, 사망원인은 무엇인지 의문이 쉽게 풀리지 않고 있다. 자칫 유씨의 행적과 사망원인이 미제로 남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자연사냐 자살이냐 의문의 죽음

경찰은 일단 유씨가 누군가에 의해 살해됐을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우형호 순천경찰서장은 “일차적으로 외견상 타살 흔적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유씨의 발견 당시 시신은 반듯이 하늘을 보고 누운 상태였고 주변에 반항 흔적이나 타살에 의한 상처, 흉기 자국 등이 관찰되지 않았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유씨는 검경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은신처를 빠져 나와 혼자 도주하면서 자연사 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유씨가 고령인데다 극심한 스트레스, 지병 등이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와 겹치면서 급격히 건강이 악화돼 저혈당 쇼크나 저체온증 또는 굶주림으로 사망했다는 추정이 나온다.

유씨가 검경의 추적으로 막다른 곳에 몰리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부 전문가들은 반듯하게 누운 변사체의 자세에서 자살했을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또 시신의 신발이 벗겨진 채 가지런히 놓여져 있었다.

그러나 평소 구원파 신도 등의 보호를 받으며 도피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진 유씨가 무슨 경위로 홀로 노숙자 차림으로 아무도 없는 밭에서 죽어갔느냐 하는 점은 석연찮은 대목이다. 또 유씨 사망이 추정되는 시점은 유씨 일가의 도피를 도운 혐의로 구원파 내 핵심조력자 대다수가 체포되기 전이라 유씨가 혼자 산으로 도피했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유병언 회장의 사체를 처음 발견했던 마을 주민이 22일 오전 전남 순천시 서면 학구리의 야산을 다시 찾아 현장에 남아 있는 시신의 머리카락과 뼛조각을 가리키고 있다. 순천=연합뉴스
유병언 회장의 사체를 처음 발견했던 마을 주민이 22일 오전 전남 순천시 서면 학구리의 야산을 다시 찾아 현장에 남아 있는 시신의 머리카락과 뼛조각을 가리키고 있다. 순천=연합뉴스

없어진 돈가방 타살 가능성도

20억원의 돈가방을 빼앗기 위해 추종자들이 유씨를 방치했거나 독살했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유씨의 시신 옆에서 발견된 천가방 속에는 소주 2병과 막걸리 1병, 사각형의 돋보기가 들어 있는 상태였고 현금은 발견되지 않았다. 또 유씨가 항상 착용하던 안경도 시신 주변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유씨가 도피 생활에 꼭 필요한 돈은 없는데다, 평소 술을 마시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유씨가 술병을 왜 가방에 넣고 다녔는지 의문으로 남는다. 혹여 누군가 유씨의 돈 가방을 빼앗기 위해 죽였을 거라는 추정도 나온다.

검경은 마지막까지 유 전 회장과 함께 동행 했지만 아직까지 행적이 드러나지 않고 있는 운전기사 양회정(55)씨와 일명 ‘김엄마’로 불리는 김명숙(59)씨의 신병이 확보돼야 유씨의 죽음에 관한 비밀이 풀릴 것으로 보고 있다.

짧은 시간에 백골 드러날 정도로 부패?

유씨의 시신은 변사체로 발견된 당시 뼈가 드러나 보일 정도로 심하게 부패한 상태였다. 경찰은 발견 당시 부패 정도가 80%가량 진행돼 살점이 거의 붙어 있지 않은 백골상태였다고 밝혔다. 지문 채취가 쉽지 않았고 머리카락이 분리될 만큼 부패가 심해 신체 형태로는 신원을 분간할 수 없었다. 5월 25일 검찰이 순천 송치재 별장 ‘숲속의 추억’에서 유씨를 놓치며 유씨의 생존이 마지막으로 확인된 지 불과 18일 만에 백골로 발견된 것이다.

목격자는 “시신이 발견될 당시는 비가 한창 내리던 시기이고 무더운 날씨가 이어져 시신의 부패가 빨리 진행된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도 고온 다습한 기후가 부패 속도에 영향을 미쳤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18일 만에 시신의 80%이상 백골상태가 될 정도로 부패가 빨리 진행되기는 힘들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법의학자들의 견해도 갈리고 있다. 이윤성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교수는 “전혀 불가능하다고 볼 수 없지만 5월말과 6월초의 온도와 야생 동물이나 구더기 같은 시식성 곤충의 활동성을 고려해볼 때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반면 박성환 고려대 법의학연구소 교수는 “여름에는 일주일 이내에도 백골화가 가능하다. 일단 야외에 노출된 가운데 실외가 덥고 습하면 부패가 빨리 진행된다. 파리가 접근해 구더기가 많아져서 시체를 빨리 파먹으면 부패가 빨리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샅샅이 뒤졌다던 검·경 왜 몰랐나

유씨의 시신을 수습한 경찰관이 발견 유류품을 보고 유씨와의 관련성을 떠올리지 못했다는 것은 납득하기가 쉽지 않다. 시신 발견 당시 담당 경찰관은 사건에 대한 의견과 함께 유류품 목록을 적은 변사보고서를 검찰에 제출했다. 그러나 통상의 변사사건처럼 신원확인이 어려워 부검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의견만 담겼다. 유씨와 관련된 내용은 보고서에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우형호 순천경찰서장은 “유류품이 다수 있었지만 당시에는 그것을 간과했다. 결국 수사 과정이 미흡했다”고 말했다.

대규모로 검찰과 경찰 병력이 투입된 수색작전에서 유 전 회장의 시신을 발견하지 못한 것 역시 의문점으로 남는다. 시신이 발견된 장소가 불과 며칠 전 유 전 회장이 머물렀던 은신처 인근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납득이 가지 않는다. 경찰은 유씨의 도주로를 차단하기 위해 시신이 발견된 지점 인근의 서면 학구삼거리 등 5개소에 목 검문소를 설치하고 총 55회에 걸쳐 연인원 8,116명의 경력을 동원해 송치재 일대를 샅샅이 뒤졌다.

순천=하태민기자 hamong@hk.co.kr

인현우기자 inhyw@hk.co.kr

지난달 12일 전남 순천시 서면 학구리 매실밭에서 발견된 변사체의 DNA가 '세월호 실소유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과 일치한다고 경찰이 발표한 가운데 22일 오후 서울역에서 시민이 관련 뉴스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12일 전남 순천시 서면 학구리 매실밭에서 발견된 변사체의 DNA가 '세월호 실소유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과 일치한다고 경찰이 발표한 가운데 22일 오후 서울역에서 시민이 관련 뉴스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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