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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언 사망' 한달 넘게 모르고 헛발질만 한 검경

입력
2014.07.22 13:50

초동수사 미흡…변사체와 유병언 연관성 무시

검찰 "신문 볼 시간도 없는 변사담당 검사"…황당 해명

유병언(73) 전 세모그룹 회장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22일 새벽 서울 양천구 신월동 서울과학수사연구소에 도착한 가운데 정문에서 경찰들이 경계를 서고 있다. 왕태석기자 kingwang@hk.co.kr
유병언(73) 전 세모그룹 회장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22일 새벽 서울 양천구 신월동 서울과학수사연구소에 도착한 가운데 정문에서 경찰들이 경계를 서고 있다. 왕태석기자 kingwang@hk.co.kr

지난달 12일 전남 순천의 한 매실밭에서 발견된 변사체가 유병언(73) 전 세모그룹 회장(청해진해운 회장)으로 확인되면서 검찰과 경찰의 부실한 초동 대응이 도마 위에 올랐다.

유씨의 것으로 의심되는 유류품들이 시체와 함께 발견됐음에도 경찰은 노숙자의 단순한 변사로 판단했다. 변사 사건을 지휘한 검사도 경찰이 보고한 증거물 목록을 제대로 살펴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검찰은 이미 사망한 유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재청구하면서 '끝까지 잡겠다'고 국민들에게 공언하는 촌극을 빚었다.

22일 검찰과 경찰에 따르면 경찰은 지난달 12일 오전 9시 6분께 전남 순천 송치재 휴게소로부터 2.5km가량 떨어진 한 매실밭에서 부패된 남성의 시신 한 구를 수습했다. 밭 주인 박모(77)씨가 시신을 처음 발견하고 놀라 경찰에 신고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는 유씨 측근이 대표인 ㈜한국제약의 'ASA 스쿠알렌' 빈병과 유씨의 책 제목이 안쪽에 새겨진 가방 등이 발견됐다.

특히 순천은 유씨가 5월 3일부터 은신처로 머문 곳이어서 대대적인 경찰 병력이 동원된 지역이다. 유씨의 시체를 수습한 경찰관이 해당 유류품을 보고 유씨와의 관련성을 떠올리지 못했다는 것은 납득하기가 쉽지 않다.

담당 경찰관은 사건에 대한 의견과 함께 유류품 목록을 적은 변사보고서를 검찰에 제출했다.

그러나 통상의 변사사건처럼 신원확인이 어려워 부검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의견만 담겼다. 유씨와 관련된 내용은 보고서에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도 초동수사 미흡에 대한 지적을 시인했다.

우형호 순천경찰서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유류품이 다수 있었지만 당시에는 그것을 간과했는데, 그게 수사 과정에서 미흡했던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때 채취한 유류품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하는 등 조금 더 적극적으로 했더라면 확인이 더 빨리 나올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과실을 인정했다.

변사 사건을 지휘한 담당 검사와 부장검사도 유씨와의 관련성을 놓치고 단순노숙인의 변사로 판단해 대검에 보고하지 않았다.

그 결과 40일 넘게 검찰은 유씨의 사망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엉뚱한 '꼬리잡기'에 수사력을 낭비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결과적으로 검찰은 이미 사망한 유씨의 구속영장을 법원에 재청구하며 아직 국내에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는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촌극을 벌인 꼴이 됐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일반 변사 사건에 대한 부검 영장은 일선에서 하루에서 수십건씩 나간다"면서 "신문 볼 시간도 없는 변사 담당 검사가 변사자 주변에 흩어져 있는 유류품만 보고 유씨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고 다소 황당한 해명을 했다.

이 관계자는 "어쨌든 뒤늦었다고 지적하지만 그때 부검 지휘라도 했기 때문에 (유씨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경찰의 시신 수습과정에서도 문제점이 드러났다.

경찰은 유씨로 추정되는 시신의 머리카락과 뼈 등 일부 증거물을 완전히 수거하지 않은 채 40여일 간 현장에 방치했다.

지금도 전남 순천시 서면 신촌리 매실 밭에는 흰 머리카락 한 움큼과 피부, 뼈 조각 등이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결국 수사 초기 유씨의 소재를 파악하지 못해 뒤꽁무니만 쫓아다닌 검찰과 경찰은 유력 은신처 인근에서 발견된 유씨의 시체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면서 한 달 넘게 수사력을 낭비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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