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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숙였지만... 책임지지 않는 축구협회

입력
2014.07.03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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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무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이 3일 오전 서울 신문로 2가 축구회관에서 홍명보 대표팀 감독의 유임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고개를 숙이고 있다. 허 부회장은 홍감독이 수차례 사퇴 의사를 밝혔으나 내년 6월 임기만료 때까지 대표팀 지휘봉을 맡기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뉴시스
허정무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이 3일 오전 서울 신문로 2가 축구회관에서 홍명보 대표팀 감독의 유임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고개를 숙이고 있다. 허 부회장은 홍감독이 수차례 사퇴 의사를 밝혔으나 내년 6월 임기만료 때까지 대표팀 지휘봉을 맡기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뉴시스

한국 축구가 브라질 월드컵에서 졸전 끝에 참패했지만 어느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게 됐다. 대표팀 수장과 대한축구협회(회장 정몽규) 역시 “책임을 통감한다”며 머리만 숙일 뿐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홍명보(45) 감독을 향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는 가운데 협회는 3일 기자회견을 열고 홍 감독의 유임을 공식 발표했다. 협회는 3가지 이유를 들어 홍 감독 유임 결정을 합리화했다.

성적 부진 책임을 감독 혼자 뒤집어써서는 안 된다는 것과 월드컵 개막 1년 전 지휘봉을 맡겨 대회 준비 기간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또 선수로서 월드컵 4강과 감독으로서 2012 런던올림픽 동메달이라는 기쁨을 국민들에게 안겼다는 이유를 내걸었다.

허정무(59) 협회 부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쏟아지는 책임론에 대해 “감독의 책임 얘기가 나오는데 깊이 공감하고 나 역시 단장으로서 책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내 “지금 당장 누가 책임을 진다고 하기 보다 월드컵 준비 과정부터 끝날 때까지 세밀하게 분석하고 있고, 이 부분을 토대로 대책을 세우고 개선 방법을 찾겠다. 그 때 책임질 사람이 있으면 책임을 질 것”이라고 원론적인 답변을 했다.

허 부회장은 이어 “자꾸 책임론으로 (몰아가려고 하는데)”라며 말을 얼버무린 뒤 “모든 상황을 정확히 분석하고 어떤 것이 최선인지를 따지는 것이 우선”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또한 “지금까지는 감독 한 명이 모든 책임을 졌는데 이런 식으로 우리 축구가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면서 “물론 책임을 질 것은 져야 하지만 앞으로의 발전 방향을 우선적으로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협회의 행보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다른 국가들과 대조를 이룬다. 일본과 이란은 감독이 자진해서 사퇴했고, 이탈리아는 축구협회장을 비롯한 수뇌부 전원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축구인들 사이에 협회 역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정작 협회는 아무런 쇄신안도 내지 않고, 유임 카드만 꺼낸 뒤 뒷짐만 지고 있는 형국이다.

한 축구인은 “감독이란 자리는 원래 책임을 지는 자리”라며 “16년 만에 월드컵 무승 참패로 고개를 숙인 홍감독의 지도력에 더 이상 흠집을 내선 안된다”며 에둘러 사퇴를 촉구했다. 실제 홍 감독은 월드컵 최종 엔트리 발표 때 스스로 내건 원칙을 깨고 소속팀 아스날에서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하던 박주영(29)을 발탁하는 무리수를 둬 구설에 올랐다. 당시 ‘의리’ 논란이 일자 홍감독은 “모든 것은 내가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번 월드컵에서 박주영 기용은 참담한 실패로 돌아갔고, 홍 감독은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 귀국하고 나서 한 차례 더 사의를 표명한 홍 감독을 정몽규 협회장이 면담해 다시 설득했다. 허 부회장은 “면담 결과 홍 감독이 앞으로 한국 축구를 위해 책임감을 갖고 헌신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홍 감독은 이번 월드컵을 통해 지도력을 떠나 주변 의견을 듣지 않는 독단적인 자세와 자기 사람만 챙기는 협량, 자신이 세운 원칙조차 지키지 않는 무원칙으로 팬들의 불신을 받고 있다.

홍 감독은 비록 명예회복 기회를 잡았지만 앞으로의 행보는 첩첩 산중이다. 대표팀을 꾸릴 때마다 월드컵 참패 책임론과 불편한 ‘의리’ 시선이 뒤따를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김지섭기자 on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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