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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유임으로 새삼 떠올린 ‘불명예 퇴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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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두리(34·FC서울)가 자신의 트위터에 홍명보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을 유임시킨 대한축구협회 결정에 의구심을 나타내는 듯한 글을 올려 눈길을 끌었다.
차두리는 3일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98년에는 왜? 혼자서…"라는 글을 게재했다. 그의 짧은 글에는 지난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본선의 한국 사령탑이자 부친인 차범근 감독이 현지 경질된 사실에 대한 섭섭함도 녹아있었다.
축구협회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본선에서 부진한 성적을 낸 홍 감독을 유임시키기로 했다. 차두리로서는 부친의 경질 사례와 비교할 만 하다. 차 감독 경질 이후의 역대 대표팀 감독들도 '파리목숨'에 비유될 정도로 대회 성적에 대한 책임론과 여론의 압박 속에 사임하는 일이 잦았다.
차범근 감독 이후의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의 불명예 퇴진 사례들을 짚어봤다.
◆차범근 (1997년 1월~1998년 6월)
차범근 감독이 이끈 한국 대표팀은 1998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파죽지세'였다. 6승 1무 1패. 이 결과 속에는 지금도 회자되는 '도쿄대첩'이 포함된다. 차범근호는 예선에서의 활약 덕분에 큰 성원을 받고 본선 무대로 출항했다.
하지만 한국은 멕시코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선제골을 넣은 하석주의 백 태클 퇴장과 함께 1-3으로 역전패했고, 2차전에서는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끌었던 네덜란드에 5골을 내주며 0-5로 무너졌다. 축구협회는 차 감독을 즉각 경질했고, 차 감독은 홀로 쓸쓸히 귀국해 온 국민의 지탄을 받았다.
차 감독은 이후 인터뷰에서 프로팀 감독시절 겪은 선수들의 태업 등을 한국 축구의 문제점으로 지적했고, 이것이 승부조작 폭로 파문으로 번지면서 축구협회로부터 '지도자 자격 정지 5년'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차 감독은 쫓겨나듯 중국으로 건너가 프로팀 지도자로 활동했다.
◆움베르트 코엘류 (2003년 1월~2004년 4월)
포르투갈을 유로 2000 대회 4강에 올려놓았던 코엘류 감독은 한국 대표팀 감독 부임 초반부터 경질론과 맞서왔다. 약팀에 약했던 게 큰 타격이었다. 2004년 아시안컵 본선 출전을 위한 지역예선에서 오만에 1-3로 패했다. '오만 쇼크'로 기록된 이 사태는, 한국 축구사의 치욕으로 기억된다. 이후 힘겹게 아시안컵 본선에 진출했지만, 2군으로 꾸려진 불가리아와의 평가전 패배로 또 경질설에 시달렸다.
코엘류는 일본서 개최된 1회 동아시아 축구대회에서 우승한 뒤 2006 독일월드컵 지역예선 초반 활약으로 안정된 지도자의 길을 걷나 했다. 그러나 최약체로 분류된 몰디브와의 원정경기에서 0-0 무승부를 거두자 사퇴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자진사퇴 했다. 하지만 코엘료 감독은 재임 기간 동안 협회의 불충분한 지원, K리그 선수 차출 거부 사태 등으로 제대로 된 팀을 꾸리기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본인 역시 사임 기자회견에서 "14개월간 단 72시간 밖에 훈련하지 못했다"며 유감을 전하기도 했다.
◆요하네스 본프레레 (2004년 6월~2005년 8월)
코엘료 감독의 사임 이후 어수선한 대표팀 분위기를 추스르기 위해 협회는 '히딩크의 추억'을 떠올리며 '히딩크의 나라' 네덜란드 출신의 본프레레 감독을 발탁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감독을 맡게 된 본프레레 감독은 독일과의 친선전에서 3-1 대승을 거두고 독일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뤄내는 등 어느 정도의 성과를 냈지만 역시 아시아 팀들과의 대결에서 기대 이하의 결과를 얻어 경질론에 시달렸다.
2005년 8월 한국서 개최된 동아시안컵 대회에서 중국, 북한, 일본을 상대로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최하위를 기록했고,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 2번 연속으로 패하는 등 부진이 겹치면서 자진사퇴 형식으로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재임 기간 동안 선수들을 존중하지 않은 언행으로 여론의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이후 2006년 독일 월드컵 본선에는 조별리그 상대국인 토고에 한국팀의 정보를 제공했다는 의혹이 일며 ‘스파이설’까지 대두됐다.
◆핌 베어벡 (2006년 7월~ 2007년 7월)
핌 베어벡은 한국 대표팀과 두 차례 월드컵을 함께 한 감독이다. 2002 한일월드컵 당시 히딩크 감독 밑에서 4강 신화를 함께 일궜고,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이끈 2006 독일월드컵에서는 수석코치를 맡았다. 그만큼 어떠한 외국인 감독보다 한국 축구에 대한 이해도도 높았다.
하지만 대표팀 소집 과정에서 프로팀과 깊은 감정의 골이 생겼고, 때마다 '전술 부재'라는 지적도 따라다녔다.
자신이 직접 본선에 올려놓은 2007년 아시안컵 대회에 앞서 "4강에 오르지 못하면 거취를 고민하겠다"고 공언했지만, 3위의 성적을 기록하고서도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한국 축구계에서 인심을 잃고 부진한 경기력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도 등을 돌린 게 사퇴의 주된 원인이었다.
◆조광래 (2010년 7월~2011년 12월)
조광래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반년이었다. 5개월여 동안 12승 6무 3패를 기록한 감독을 해임하면서 축구협회가 내놓은 이유는 성적 부진이었다.
이를 두고서는 축구계 안팎에서 수많은 논란이 일었다. 부임 초기인 2010년 8월 한일전에서 0-3으로 패했지만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에서 1위 달리고 있었다. 최종예선 자력 진출에 위기감은 없어 보였지만 레바논전 1-2 패배가 해임의 빌미가 됐다.
▶해임 발표 영상 보기
특히 절차를 무시한 해임 과정이 도마에 올랐다. 축구협회는 대표팀 감독을 해임하는 데 기술위원회도 열지 않고 갑작스럽게 해임을 결정해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축구협회의 무리수에 K리그 전북 현대 감독을 맡고 있던 있던 최강희 감독이 '시한부 사령탑'을 맡았다. 김형준기자 mediabo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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