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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 "관심병사 관리에 주의" 사후 약방문만 요란했다

입력
2014.06.25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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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인성검사 강화 2011년 기수열외 대책 등 사고 터질 때마다 반짝 대책

관심병사 입소 '그린캠프' 철창에 이중 자물쇠까지 치유 역할보다 고립감 불러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2011년 7월7일 국회 국방위 긴급회의에 출석해 “무거운 책임을 통감한다. 반드시 재발하는 일이 없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사흘 전 강화 해병부대에서 총기난사로 4명의 장병이 숨진 데 대한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다짐이었다.

3년 가량의 세월이 흐른 25일 김 장관은 국회 국방위에 다시 나타나 똑같은 장면을 연출했다. 고성 GOP(일반전초) 총기난사 사건으로 장병 5명이 사망하자 또다시 고개 숙여 국민에게 사과한 것이다. 군 당국이 허울뿐인 대책 마련에 매달리는 사이 ‘관심병사’라는 군의 고질적인 병폐가 똬리를 틀면서 인명참사가 되풀이됐다.

반복되는 ‘강력한 대책’ 헛구호

국방부가 구타ㆍ가혹행위, 집단 따돌림 등 병사 상호간의 악습을 철폐하고 병영문화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시작한 것은 2005년 6월 경기 연천 530GP(전방초소) 총기난사 사건을 겪으면서부터다. 인성검사를 강화하고, 군생활 부적응자를 의미하는 이른바 ‘관심병사’ 관리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게 된 것도 이즈음이다.

하지만 2011년 7월 해병대 총기난사를 막는데 역부족이었다. 특히 기존의 군생활 부적응 외에 해병대 특유의 따돌림 문화인 ‘기수열외’라는 병폐가 알려지면서 병사간 관계를 명확히 정립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그러자 총기사건 보름 뒤인 7월 19일 국방장관 지시사항으로 전군에 ‘병영생활 행동강령’을 하달하는 보다 강한 처방전이 내려졌다. 그간 모호하고 관습적으로 유지되던 병영생활의 행동요강에 법적 구속력을 부여함으로써 강제성을 높였다. 국방부는 당시 “민군 합동 토론회를 거쳐 만든 종합 혁신대책”이라며 “다시는 불상사가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또한 관심병사를 분류하기 위한 인성검사를 3단계로 강화해 문제발생 소지를 줄였다. 김 장관은 당시 “병무청에서 인성검사로 거르고, 해병대 입대하면 또 거르고, 훈련 시작 전에 또 거르는 방식으로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고성 GOP 총기난사로 이 같은 군 당국의 호언장담이 무색해졌다. 임모 병장의 범행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계급열외’는 해병대의 ‘기수열외’와 다를 바 없는 집단 따돌림의 한 유형이다. 군 관계자는 25일 “규정을 엄격히 하고 처벌을 강화해도 병영문화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 확인됐다”면서 “이번에도 새로운 대책을 내놓을 텐데 효과가 있을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린캠프’는 약 아닌 독

군 당국은 신병부터 병장에 이르기까지 복무기간 중 주기적으로 인성검사를 실시해 관심병사를 가려내고, 자살 우려가 있어 상태가 심각한 경우에는 최소 2주 이상 ‘그린캠프’에 보내 집중적으로 치유하고 있다. 하지만 그린캠프를 통해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키는 부작용이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군 당국의 대책이 당사자의 고민을 해결하는 실효성보다는 보여주기 위한 전시행정에 치중하고 있다는 얘기다.

2011년 8월 부대에서 자살한 A씨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2010년 6월 입대한 그는 신병교육을 받던 중 조울증 증세가 나타나 B급 관심훈련병으로 분류됐다. 이에 그린캠프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은 뒤 자대에 배치됐지만 한번 낙인이 찍힌 그에게 동료들의 따돌림은 갈수록 심해졌다. A씨는 병영생활상담관을 찾아가 “힘들어 죽고 싶다”고 호소했지만 현역복무부적합 심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A씨는 부대원들을 원망하는 유서를 남긴 채 전투화 끈으로 목을 매 목숨을 끊었다.

그러자 유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수원지법은 25일 “부대 지휘관과 간부들은 상황을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지만 주의의무를 게을리 했다”며 “1억1,700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판결을 내렸다.

그린캠프의 폐쇄적인 운영방식이 화를 키우는 경우도 있다. 고교시절부터 자폐와 우울증 증세에 시달렸던 B씨는 입대하자마자 그린캠프에 입소했다. 하지만 이곳의 환경은 기대하던 것과 달랐다. 사고 예방을 명분으로 창문에는 철창이 설치됐고 출입문과 화장실은 이중 자물쇠로 잠겼다. 다른 입소자들이 퇴소하고 혼자만 남게 되자 프로그램 운영은커녕 방치되면서 폭언을 듣기 일쑤였다.

이에 B씨는 정신과 치료를 위해 국군수도병원에 들렀다가 6층에서 뛰어내려 사망했다. 그린캠프에서 퇴소한 지 불과 8일만이었다. 법원은 B씨 유가족에게 1억5,500만원의 배상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엄격한 규율과 집단행동이 중시되는 군대에서는 장병 개인이 체감하는 정신적ㆍ신체적 고통이 일반사회의 그것과 크게 다르다”며 “군 당국은 장병이 건강한 상태로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충분한 배려를 기울여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김관진 국방부장관 겸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25일 국회 국방위원회 고성 GOP 총기난사 사건 관련 긴급 현안질의에 앞서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왼쪽 사진은 지난 2011년 7월 인천 강화도 해병대 해안초소 총기난사 사건 당시 국회 긴급현안질의에 참석한 김 장관 모습. 오대근기자 inliner@hk.co.kr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관진 국방부장관 겸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25일 국회 국방위원회 고성 GOP 총기난사 사건 관련 긴급 현안질의에 앞서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왼쪽 사진은 지난 2011년 7월 인천 강화도 해병대 해안초소 총기난사 사건 당시 국회 긴급현안질의에 참석한 김 장관 모습. 오대근기자 inliner@hk.co.kr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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