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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아이들 부모가 얼마나 억울할지…" 조부모의 통곡

입력
2014.06.24 16:36

“착하고 조용한 아이인데, 이 죄를 어찌 다 받을지”

동부전선 GOP(일반전초)에서 총기난사 뒤 무장탈영한 임모 병장이 23일 자살을 시도한 뒤 체포돼 이송된 강릉 아산병원 응급실 앞에 군 관계자와 의료진이 모여 있다. 연합뉴스
동부전선 GOP(일반전초)에서 총기난사 뒤 무장탈영한 임모 병장이 23일 자살을 시도한 뒤 체포돼 이송된 강릉 아산병원 응급실 앞에 군 관계자와 의료진이 모여 있다. 연합뉴스

23일 오후 2시 55분쯤, 경기 수원의 한 아파트. 6평 남짓한 거실 한 구석, 노부부의 시선이 뉴스가 방영되는 TV에서 떠나지 않았다. TV에서는 21일 저녁 강원 고성 동부전선 일반전초(GOP)에서 동료들을 향해 총기를 난사하고 도주한 임모(22) 병장의 체포소식이 흘러나왔다. 임 병장이 체포 전 스스로 왼쪽 가슴 위쪽에서 어깨 사이에 총을 발사,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과 함께였다. “내 새끼….” 초조한 얼굴로 TV를 보던 할머니는 손자가 다쳤다는 소식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할아버지는 말없이 담배를 꺼내 물었다.

임 병장의 조부모는 손자가 총기를 난사하고 탈영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순간부터 거의 먹지 못했다. 이날도 두 노인이 먹은 것이라곤 두유 한 병, 팥빵 반쪽이 전부. 혹여 건강을 해칠까 염려해 다른 가족이 아침 일찍 사다 놓은 갈비탕은 가스레인지 위에서 차갑게 식은 지 오래였다.

“착하고 조용한 아이인데, 이 죄를 어찌 다 받을지 모르겠어요.” 임 병장의 할머니 허모(75)씨는 기자가 권한 청심환 하나를 삼키고 나서야 겨우 입을 뗐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얼마나 우리 새끼를 욕하겠어요.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어요.” 할머니의 통곡이 거실을 울렸다.

이들에게 임 병장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자였다. 노부부는 손자가 열세 살이 되도록 아들 가족과 함께 살았다. 할머니는 “아직도 아이가 태어나서 포대기에 싸여 울던 그때가 생생하다”고 말했다. “생전 욕이란 것도 할 줄 모르고 살던 아이인데….”

24일 오후 동부전선 GOP(일반전초) 총기난사 사건으로 숨진 장병들을 위한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 합동분향소에 슬픔의 눈물이 흐르고 있다. 연합뉴스
24일 오후 동부전선 GOP(일반전초) 총기난사 사건으로 숨진 장병들을 위한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 합동분향소에 슬픔의 눈물이 흐르고 있다. 연합뉴스

다음은 임 병장 조부모와의 일문일답.

-손자는 평소 어떤 사람이었나.

(할아버지)“대인관계가 넓은 편은 아니었지만 엄마, 아빠, 형 네 가족이 아무 문제없이 잘 살고 있었다. 경제적으로도 불편한 것 없이 잘 살았다. 형제지간에 우애도 참 좋았다. 그렇게 서로 다정한 애들이 없다. 휴가 나와서도 형이랑 안고 장난하고 난리였다. 또 술은 입에도 못 댔다. 우리 가족이 체질상 술을 먹질 못한다.”

(할머니)“친구들이 막 장난스럽게 대하는 걸 싫어했다. 여자같이 얌전하고 차분해서 누구와 어울리기보다, 혼자 하는 걸 좋아했다. 컴퓨터도 좋아하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 건가.

(할아버지)“걔가 중학교 때까지는 그런 일이 없었는데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문제가 있어서 2학년 2학기 마치고 자퇴를 했다.”

(할머니)“고등학교 들어가서 짓궂은 애들이 욕하고 함부로 대하는 게 싫었나 보더라. 친구들이 괴롭혀서 학교 다니기 싫다고 했었다. 애들이 툭툭 치고 장난치고 치대는 걸 정말 싫어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그 친구들한테 주의도 많이 주고 했었다. 아이가 학교에 늦게 등교하곤 했다. 애들이 괴롭히는 게 싫어서. 선생님이 학교를 아예 늦게 오라고 했었다. 아침 자습시간 넘기고 수업 시작 직전에 오면 아이들끼리 부딪히는 일이 적어지니까. 그런데 결국 선생님과 엄마가 설득에도 아이가 학교를 그만 두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우울증도 좀 있었다.”

-우울증이 심했나.

(할머니)“수원에 있는 병원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 넉 달 넘게 치료했다. 며느리가 우울증 치료에 병원비가 많이 들어갔다고 했다.

-손자가 보호관심사병인 사실 알고 있나.

(할머니)“기사를 보고 알았다. 아이가 GOP를 간 것이 불행의 시작인 것 같다. 가지 않았으면 무고한 아이들이 죽지 않을 수 있었다. 죽은 아이 엄마들이 얼마나 억울할까.”

-아들(임 병장 아버지)은 뭐라고 하던가.

(할머니)“엎질러진 물인데 걱정만 하지 말고 뭐라도 챙겨 먹으라고 했다. 체포되기 전에 아들한테 산에 올라가서 확성기라도 들고 얘기해보라 했다.”

-고등학교 졸업은 어찌했나. 대학생활은?

(할머니)“이후에 혼자 검정고시 준비해서 합격했다. 대학생활은 무리 없이 잘 했다. 대학 잘 다니다가 1학년 1학기 마치고 입대했다. 2학년 때 가라고 했는데 빨리 다녀오는 것이 좋다고 그랬었다. 대학 가서는 공무원 한다고 원하는 전공도 찾아 가고. 애 아빠가 군대에서 공무원 시험 준비에 필요한 책도 여러 번 사서 부치고 했다.”

-손자 사고 소식은 언제 처음 들었나.

(할머니)“항상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뉴스를 본다. 습관이다. 22일에도 TV를 틀었는데 22사단에서 사고가 났다고 나오더라.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우리 아이가 총에 맞은 줄 알고. 그런데 반대로 총을 쏜 것이었다. 손자가 그러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우리 아이 이제 어떻게 사나. 우리 손자는 그렇다 치고 죽은 죄 없는 애들은 또 어떡하나.”

-군 생활하면서 힘들다고 하진 않았나.

(할머니)“지난 5월에 휴가를 나와서 찾아왔었다. 애가 엄청 말라서 걱정했다. 얼굴이 반쪽이 됐다. 힘든 일 없냐는 얘기에 잘하고 있다고만 하고. 잘 먹는다고. 이제 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니까 애가 고민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순한 것이 무슨 이유로 이런 짓을 저질렀는지. 뭔가 참고 참다가 폭발한 게 아닌가. 아마도 저도 죽을 생각으로 그런 짓을 저질렀을 것이다. 원한 관계가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전역이 얼마 남지 않았었는데.

(할머니)“6월에도 휴가 한 번 나온다고 했는데. 며칠 전에도 ‘아 이제 곧 우리 아이 휴가 나오겠구나’ 생각했었는데.”

-손자뻘 되는 군인들이 많이 죽었다.

(할머니)“정말 죄송스럽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피해 가족들 고통을 어찌 말로 표현하겠나.”

김관진기자 spirit@hk.co.kr

수원=김민정기자 mjkim72@hk.co.kr

남태웅기자 huntingman@hk.co.kr

23일 오전 동부전선 GOP에서 총기를 난사하고 무장탈영한 임모 병장과 군은 강원 고성군 제진검문소 북쪽에서 밤샘 대치 상황을 이어간 가운데 임 병장 아버지가 군과 대치 중인 작전지역으로 들어가기 위해 군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23일 오전 동부전선 GOP에서 총기를 난사하고 무장탈영한 임모 병장과 군은 강원 고성군 제진검문소 북쪽에서 밤샘 대치 상황을 이어간 가운데 임 병장 아버지가 군과 대치 중인 작전지역으로 들어가기 위해 군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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