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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 소녀의 강간 무고에 인생 꼬인 30대 교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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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특수강간 용의자로 체포합니다."
명문대 졸업 후 공기업에서 수습사원으로 근무하다가 국립대 교직원 시험에 합격한 A(32)씨. 한 달 뒤면 새 직장에 들어간다는 꿈에 부풀어 있던 그는 2010년 5월11일 저녁 퇴근길에 영문도 모른 채 서울 금천경찰서로 끌려갔다. 혐의는 2009년 12월 당시 16세이던 B양을 공범과 함께 서울 중랑구 망우동 한 모텔에서 강간했다는 것.
A씨는 경찰조사에서 "B양을 본 적도,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고 망우동 근처에 가보지도 않았다"며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법원은 체포 이틀 만에 "증거 인멸 및 도주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고, 경찰은 A씨를 기소의견으로 서울남부지검에 송치했다.
A씨의 혐의는 검찰 단계에서 바로 잡혔다. 피해자 B양이 경찰 첫 조사 뒤 행방을 감춘 것이 수상했고, A씨가 강간 범죄를 저지를 사람이 아니라는 게 명백했기 때문이다. A씨는 체포 한달 후 풀려나 같은 해 11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앞날이 창창했던 A씨 인생 항로는 이미 뒤틀린 뒤였다. A씨는 구속 기간 새 직장에 출근하지 못해 합격이 취소됐고, 전 직장에서도 권고 사직을 당했다. A씨 부모는 6개월간 B양의 어머니로부터 거액의 합의금을 요구받으며 시달려야 했다.
B양이 생면부지의 A씨를 강간범으로 몰았던 이유는 더욱 황당하다. 판결문에 따르면 가출한 뒤 친구들과 빈집털이를 한 혐의로 수배 중이던 B양은 2010년 초 갑자기 임신을 했다. B양 어머니는 집에 돌아온 B양에게 임신 경위를 추궁했고, 궁지에 몰린 B양은 며칠 전 우연히 주운 휴대폰에 저장돼 있던 A씨 연락처로 전화를 걸어 기록을 남긴 뒤, 통화내역을 근거로 A씨를 신고했다. 그리고는 경찰 조사에서 "채팅을 통해 A씨를 처음 만나 같이 게임을 하며 어울렸고, 2009년 12월 A씨가 모텔로 친구를 불러내 자신을 수 차례 강간하게 한 뒤 그것을 지켜봤다"고 태연히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3부(부장 박평균)는 A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1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6일 밝혔다. 재판부는 "검ㆍ경의 체포 및 구속이 경험이나 논리에 비춰 도저히 그 합리성을 긍정할 수 없을 정도의 행위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성폭력 당시 상황 등에 대한 B양의 진술이 비교적 구체적이었고, 아동행동진술분석 전문가가 'B양의 진술내용이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한 상황 등을 고려할 때, 공무원이 고의적으로 중과실을 범한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법원은 앞서 A씨가 B양 측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는 받아들였지만, B양 측은 경제 형편상 손해배상금을 낼 능력이 안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B양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간 사법기관 때문에 회복하기 힘든 피해를 입었지만, 민사상 구제를 받기 어려운 형편이 된 것이다. 대한변협 관계자는 "성폭력 범죄의 경우 법원이 유달리 피해자의 일방적인 진술만 듣고 영장을 발부하거나 유죄 판결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A씨가 입은 피해가 명백한데도 공무원 과실에 대한 배상 책임 기준을 너무 엄격하게 적용하다 보니 피해자 권리 구제가 어려워진 경우"라고 말했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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