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건축 적립금으로 기숙사 지어라"

입력
2012.09.18 17:40
구독

대학생 이한솔(22·연세대 신학과 3)씨는 한 달 생활비로 30만원 남짓 쓴다. 일주일에 30시간짜리 사무직 아르바이트를 해서 월 60만원을 버는 이씨가 방세 25만원을 내고 손에 쥐는 돈이다.

"이 돈으로 밥 먹고, 전공 책 사고, 여자친구랑 데이트 하려면 아무리 아껴 써도 빠듯해요. 올 들어 옷 하나도 못 샀어요."

그나마 친구랑 함께 살아 집값이 절약된다는 윤씨는 "같은 과 친구 중에는 월 45만원 하는 하숙비가 밀려 결국 통학에 2시간 걸리는 '본가'로 들어간 친구도 있다"고 귀띔했다.

대학생들에게는 자취나 하숙에 비해 비용 대비 만족도가 높은 기숙사 입성도 쉽지 않다. 강경루 한양대 총학생회장은 "한양대 재학생 가운데 기숙사가 필요한 지방 학생은 8,000명 가량 되지만 기숙사 수용 인원은 1,600명에 불과하다. 그 중에서도 외국인, 특정 단과대, 고시생 전용 기숙사를 제외하면 학생들이 쓸 수 있는 방은 더 줄어 든다"며 "기숙사가 턱없이 모자라다 보니 자연스레 가난한 대학생들이 곰팡이 피고 창문이 없는 방, ㄱ(기역)자로 눕는 방을 찾아 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지난해 말 기준 서울 4년제 대학의 평균 기숙사 수용률은 14.1% 수준이다.

높은 주거 비용, 열악한 주거 환경에 두 번 우는 대학생들이 18일 한 곳에 모였다. 이날 오후 국회의사당 앞에서는 20대 청년 주거모임 '민달팽이 유니온'을 중심으로, 연세대 총학생회, 한양대 총학생회, 경희대 총학생회 등 서울 시내 7개 대학 총학생회가 자리해 '기숙사 공급을 통한 대학생들의 주거 문제 해결과 주택바우처 사업 확대, 전·월세 상한제 입법 요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민달팽이 유니온 대표인 권지웅(24·연세대 기계공학과4)씨는 "최근 정부가 청년들의 주거난을 해소하고자 싼 이자로 대학들에 기숙사 건립 비용을 빌려주기로 했지만 대학은 이 비용조차 대학의 자체 건축적립금이 아니라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갚으려 한다"며 "대학생들의 진정한 주거 복지를 위한다면 기숙사 건립 비용을 학생들에게 전가하려는 움직임을 멈춰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는 지난 6월 사학진흥기금과 국민주택기금을 낮은 이자율로 대학에 빌려주고 대학교 기숙사 건립을 돕는 '대학생 기숙사 건립사업'을 발표하고, 경희대, 세종대, 단국대 천안캠퍼스, 대구한의대를 대상자로 선정했다. 대학생들이 고시원이나 옥탑방처럼 열악한 주거지를 전전하게 되는 원인이 '부족한 기숙사'라고 판단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대학교의 기숙사 추가 건립을 장려하고 나섰지만 대학들이 이마저도 학생들에게 부담을 지우려 하고 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기숙사 건립뿐만 아니라 다각적인 주거마련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박지하 경희대 총학생회장은 "최근 총학생회 내에 '경희대 쪽방탈출작전단'을 조직해 재학생 4,8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더니 '집은 많은데 대학생이 살 수 있는 집이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며 "치솟는 집세를 견제할 수 있는 전·월세 상한법 등의 정부 정책이 당장 절실하다"고 말했다. 권지웅씨도 "정부는 대학생들에게 한 달마다 소정의 집세를 지원하는 주택바우처 같은 실효성 있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