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아이스슬레지하키 국가대표팀 2012세계선수권 준우승

입력
2012.04.02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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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판에 '장애'란 단어는 없었다.

아이스슬레지하키 국가대표팀이 노르웨이 하마르에서 1일(현지시간) 열린 '2012 IPC(국제장애인올림픽위원회) 아이스슬레지하키 세계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 경기는 하반신이 불편한 장애인들이 스케이트 대신 썰매를 타고 아이스하키를 하는 스포츠로, 동계장애인올림픽에서 최고 인기 종목으로 꼽힌다.

대표팀의 준우승은 세계선수권대회 세 번째 출전만에 거둔 쾌거다. 그동안 국제대회 성적은 사실 신통치 않았다. 2008 세계선수권대회 B풀(2부 리그 격) 우승, 2009 세계선수권대회 A풀 7위, 2011 밴쿠버장애인동계올림픽대회에서 6위 등을 한 게 전부였다. 박거준(48) 대표팀 감독은 2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결승전에서 미국에 5대 1로 패했지만 5위를 목표로 대회에 참가한 것을 고려하면 기대 이상의 성적"이라고 평가했다.

세계 무대에서의 최고 성적은 땀과 노력의 결실이었다. 국가대표 17명은 1월부터 혹독한 합숙 훈련에 들어갔다. 연습 공간을 찾아 서울과 춘천의 빙상장을 수십 차례 오갔을 정도다. 클럽팀에 소속돼 있다 국가대표로 선발된 일부 선수들은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대표팀에 합류했다. 대표팀 주장 한민수(42·강원도청) 선수는 "아이스슬레지하키는 '올인'할 가치가 있다"고 했다.

"다리가 불편한 사람들은 땅 위 활동에 제약이 많지만 얼음 위에서 썰매를 타면 다리 대신 팔로 달릴 수 있고, 몸싸움을 하면서 희열을 느낄 수도 있어요. 운동 좋아하면 그 맛을 잊기 어렵습니다."

한 선수는 서른에 골수염 진단을 받고 왼쪽 허벅지 아래를 절단했다. 이후 휠체어 농구를 하다가 2000년 국내에 아이스슬레지하키 팀을 처음 만든 고 이성근 감독의 권유로 시작한 선수 생활이 벌써 11년째다.

갑작스런 교통사고, 패러글라이딩 추락사고 등으로 다리를 다친 중도장애인들이 대표팀의 절반을 차지한다. 한 선수는 "우리나라 인구 가운데 10%가 장애인인데 길을 가다 장애인들을 볼 수 없는 이유는 이들이 거의 집이나 시설 안에서만 생활하기 때문"이라며 "아이스슬레지하키가 대중화되면 더 많은 장애인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될 것"이라고 했다.

격렬한 운동이다 보니 부상도 잦다. 척추장애가 있는 박상현(40·경기 레드불스) 선수는 욕창이 심해져 썰매에 앉기도 괴로운 상황에서 경기에 임했다. 막내 정승환(25·강원도청) 선수도 왼쪽 네 번째 손가락이 골절된 상태에서 대회에 참가했다. 급할 때엔 다른 나라(이탈리아) 팀 닥터에게 부탁해 응급 처치를 받으며 가까스로 컨디션을 유지하기도 했다. 박 감독은 "악 조건 속에서도 죽기 살기로 연습한 선수들의 정신력이 최대 무기였다"고 했다. 강력한 정신력이 있었기에 300여개가 넘는 팀이 활동하는 아이스슬레지하키 강국들과 겨룰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모태범, 이상화 등 비장애인 동계스포츠 종목 선수들이 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을 보면서 우리 선수들은 '무관심'이라는 상대와 이중으로 싸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장애인 스포츠에 대한 국가적 지원과 국민적 관심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국내 아이스슬레지하키팀은 실업팀 1개와 클럽팀 2개가 전부다. 대표팀은 3일 오전 입국한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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