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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 4년 만에 품평회 참석… 삼성 긴장

입력
2011.07.17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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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제품 비교전시회. 세계 굴지의 전자회사 제품과 삼성전자 제품을 전시해 놓고, 성능 품질 디자인 가격 등 껍데기부터 알맹이까지, 보이는 부분부터 보이지 않은 부분까지 모든 면 구석구석 정밀하게 비교하는 비공개 행사다. 삼성전자는 1993년 '신경영'선언 이후 매년 혹은 격년으로 이 전시회를 열어 왔다.

올해는 18일부터 29일까지 수원사업장 내 디지털시티에서 열리는데, 삼성전자는 지금 초긴장상태다. 이건희 회장이 경영일선 복귀 이후 처음으로 비교전시회에 직접 참석 키로 했기 때문이다.

삼성 관계자는 17일 "이 회장이 19일 이후 한 두 번 정도 방문하는 것으로 안다"면서 "최지성 부회장과 이재용 사장 등 최고경영진이 함께 참석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사실 이 회장은 2007년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기 전까지 매년 이 행사에 참석했다. 요즘처럼 사옥에 직접 출근하지 않을 때에도, 글로벌 경쟁사 제품과 견줘 삼성전자 제품의 현 주소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비교전시회만큼은 빼놓지 않았다.

삼성전자가 이번 이 회장의 비교전시회 방문에 유독 긴장하는 이유는 어떤 혹독한 평가가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비리척결을 위한 대대적인 사정, 전례 없이 비(非)인사철에 단행된 최고경영진 경질 등으로 현재 삼성의 내부 긴장도는 '신경영'선언 이후 최고조에 달해 있는 상태. 이런 상황에서 이 회장이 4년 만에 비교전시회를 찾는 만큼, 삼성전자 내부에선 어떤 평가가 나올지 촉각이 곤두설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이 비교전시회를 위해 전담팀까지 구성, 오랜 기간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칭찬이냐 질책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배울 것은 배우고 버릴 것은 버리기 위한 자리인 만큼 오히려 혹독한 평가가 나오는 것이 품질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사실 이 회장의 기술적 지식과 제품에 대한 눈썰미는 웬만한 전문가 수준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젊은 시절 해외출장 때 외국 유명제품을 가져다가 호텔방에서 몇 시간에 걸쳐 직접 분해ㆍ조립하고, 장단점을 일일히 확인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컨대 1991년 미국 로스엔젤레스 출장 당시 당대 최고제품이었던 일본 도시바의 비디오카세트레코더(VCR)를 직접 분해한 뒤, 임원들에게 하나하나 설명했던 것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95년에 TV 화면의 좌우가 약 1인치씩 잘리는 사실에 착안, 실무진에게 개선을 지시했고 이는 결국 '숨겨진 1인치'광고로 유명한 TV개발로 이어졌다. 맨 아래에 있던 휴대전화의 발신(send) 단추를 위로 올리도록 지시한 것도 이 회장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비교전시회에서도 이 회장은 여러 차례 실무진에 놓쳤던 부분들을 지적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2003년 전시회 당시 제품들을 유심히 살펴보던 이 회장은 뜻밖에도 금형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금형 기술이 좋아야 좋은 제품이 나온다. 금형 쪽 협력업체에서 좋은 기계를 쓰는 지 확인해 보라"고 지시했다. 이에 삼성전자는 해외에서 최고수준의 금형기계를 구입, 협력업체에 빌려준 뒤 색깔이 이중으로 보이는 이중사출공법을 개발했고 이를 통해 전세계 TV 시장에서 삼성전자를 1위로 올라서게 만든 이중색상의 크리스탈 로즈 TV가 탄생하게 됐다.

지금은 보편화됐지만 통합리모컨이 탄생한 것도 이 회장의 아이디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2002년 비교전시회를 둘러보던 이 회장은 아무도 예상 못한 리모컨 얘기를 꺼냈다. 이 회장은 "리모컨도 첨단기술이 모인 제품"이라며 "다루기 쉽도록 버튼도 줄이고 기능도 통합하라"고 특명을 내렸고 이듬해 통합리모컨이 첫 선을 보이게 됐다. 2007년 비교전시회에선 하이닉스반도체보다 떨어지는 삼성전자 반도체의 완성품 생산비율(수율)을 올리도록 질타하기도 했다.

올해 행사에는 소니, 애플, 노키아, HP, 파나소닉, 샤프 등의 제품 수백여종이 전시될 예정인데 관심은 역시 스마트폰쪽으로 쏠리는 분위기다. 현 IT산업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분야인데다, 이 회장의 경영공백기간 동안 '애니콜 신화'가 깨지면서 애플의 독주를 허용한 제품인 만큼 상당히 혹독한 평가가 나올 것이란 게 일반적 관측이다. 재계 관계자는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성공으로 이 회장도 홀가분한 마음으로 경영에 전념하게 된 상황"이라며 "위기상황 타개를 위해 본격적인 품질경영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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