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 plus/ 놀이공원 해부

입력
2011.02.17 12:00

■ '喜喜落樂' 해방과 자유를 맛보라… 무한궤도 위의 일상

나서 처음 미끄럼틀이라는 걸 타본 그 날. 소년은 고사리 손을 가슴에 얹고 좀체 가라앉지 않는 서늘한 울렁임을 누그러뜨려야 했다. 하루 또 하루. 그렇게 낙차와 속도의 쾌감에 적응한 소년은 또래 친구들과 동네의 놀이터며 초등학교 운동장을 샅샅이 훑고 다녔다. “거긴 더 높아, 계단도 세봤어. 더 많아!” 그 시절. 소년들은 고도에 비례해 커져갈 것만 같은 새로운 자극에의 기대로 잠을 설쳤고, 꿈 속을 헤매며 갈망을 키워갔다. 어린이날 흑백TV로 보던 저 멀고 낯선 서울 놀이동산의 풍경은, 떨어진 거리만큼이나 아스라한 쾌감의 신천지였다.

지난 주말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 매직아일랜드. 스릴 라이더 ‘아틀란티스’는 에버랜드의 ‘T 익스프레스’와 쌍벽을 이룬다는 명성답게 긴 대기자의 행렬을 달고 있었다. 쇠 바퀴 구르는 소리, 제동 마찰음, 탑승자들의 비명 섞인 환호성…. 스릴과 쾌감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축에 든다는 첨단의 ‘미끄럼틀’ 앞에 선 중년의 남자는 여전히 삭지 않은 사십 년 전의 그 울렁임을 긴 숨으로 다독여야 했다.

여느 롤러코스터와 달리 아틀란티스는 무릎(Lab Bar)과 허리(Seat Belt)만 기구에 붙들어 매는 방식. 상체를 온전히 열어, 요동치는 기구에 관성으로 맞서도록 함으로써 스릴감을 극대화하도록 한 것이다. 기구 한 대당 최대 8명을 태우는 단출한 행장 역시 기동력을 높여 눈이 감지한 궤도의 굴곡에 마음이 무장할 여유를 박탈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톱니바퀴를 타고 덜컹덜컹 천천히 고도를 높여가는 일반적인 롤러코스터와 달리, 아틀란티스는 시동하자마자 시속 72km의 속도로 직벽같은 궤도(경사도 72도)를 타고 올라 여정의 한 정점에 도달한다. 순식간에 얼을 빼놓는 순간 급발진을 위해 아틀란티스는 자기부상열차에 단다는 리니어 모터(선형모터)를 장착하고, 제동과 가속에 전자석시스템을 채택했다. 롯데월드 관계자는 “항공모함의 짧은 활주로에서 전투기가 발진하는 효과와 흡사하다”고 말했다.

고공 다이빙선수가 확보한 고도는 자유낙하하며 펼쳐 보일 연기의 시간무대다. 하지만 다이빙 선수와 달리 아틀란티스는, 풀(pool)의 표면을 응시하며 심호흡할 시간도 허락하지 않고, 좌우로 꽈배기 틀듯 뒤틀며 45도의 급경사 궤도를 미끄러져 석촌호수의 수면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신음과 비명과 환성이 잦아들기도 전에 기구는 비밀스러운 고대 사원의 성곽 속을 후비며 치달아 또 하나의 정점에 오르고, 극한의 원심력으로 예리한 원호를 그리며 추락. 16m, 17m, 9m의 세 차례 급하강이 반복될 때마다 몸은 수평으로 달려나가려는 관성의 힘으로 순간 중력의 자장을 벗어난다. 엉덩이가 열차에서 떨어지는 듯한 찰나. 이른바 에어타임(air-time)이다. 아틀란티스의 낙하구간 최대 중력가속도는 3.8G로, 한껏 끌어올렸다가 수직으로 내려꽂는 롯데월드의 또 하나의 명물 ‘자이로드롭(3.5G)’을 앞선다. 중력가속도(Gravity-Force)란 중력에 의한 낙하가속도라는 뜻으로, 3.8G라면 자유 낙하하는 물체의 중력가속도(1G)보다 3.8배 강한 압력을 우리의 몸이 느낀다는 의미이고, 놀이기구가 선사하는 스릴의 척도 가운데 하나로 인용되곤 한다.

놀이기구에서 느끼는 스릴과 쾌감은, 따지고 보면 낯선 자극에 인간의 감각이 놀라는 것이다. 그 자극은 대부분 공간 이동 경사도 및 회전각과 속도가 어우러져 만들어낸다. 땅에 발을 딛고 사는 한 경험할 수 없는 감각. 그 감각을 찾아 안전과 스릴이 아슬아슬하게 맞서며 조화하는 속도와 이동 경로 및 반경을 확보하는 것이 최고를 지향하는 모든 미끄럼틀의 숙제인 셈이다. 더 높이, 더 가파르게 파고드는 놀이기구의 욕망은 결국 욕망에 조화하려는 또 다른 욕망. 욕망의 무한궤도 위에서 인간은 그 경계의 궤도를 타고 움직이며 감각의 극한, 임사(臨死) 체험과 같은 찰나의 죽음을 경험한다. 놀이기구를 타며 죽음의 공포와 마주서는 짧은 순간의 체험을 통해 우리는 역설적으로 종교적 법열과도 같은 해방감을, 자유의 원초적 감각을 맛본다. 그것은 3D 홀로그램 속의 유토피아처럼 거짓 해방이고 기만적인 자유지만, 또 그것이 해탈하지 못한 인간이 피 흘리지 않고 값싸게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자유의 감각인지 모른다.

시인 김종철은 오이도 연작의 어느 시에서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우면 잠자는 것/ 땅에 발을 딛고 사는 것이/ 허공에 외줄 타는 것보다 더 어려운 까닭을/ 이제는 뉘에게 물어볼까”라고 물었다. 시인이 자조했듯 끝내 “주기도문의 꿈 밖을 헛날”다가 스러져갈 삶이겠지만, 아니 그래서 인간은 놀이동산을 짓고, 미끄럼틀의 높이를 갈망하는 것인지 모른다. 유희가 인간의 본질이라고 했던 호이징거의 규정은, 인간의 그 슬픈 숙명을 에둘러 표현한 것일까.

이인증(離人症ㆍ자아나 신체가 현실과 분리되어 있다는 느낌) 환자라도 된 듯, 40년 전 감각의 아이와 그 감각의 배후를 눈치채버린 중년의 남자는 4분 30초의 아틀란티스 여정을 끝내고 나란히 땅 위에 내려섰고, 아이의 고사리 손은 멈칫거리는 중년의 옷자락을 붙잡고 더 높은 미끄럼틀로 이끌었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 세계의 극한 스릴라이드

노는 것도 진화한다. 비료포대나 짚가리를 타고 눈쌓인 비탈을 내려오거나 얼음판 위에서 썰매를 지치는 것만으로 행복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스릴 쾌감의 기대치가 한없이 높아졌다. 과학과 기술이 그 꿈을 키워주었다.

1884년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코니아일랜드에 지그재그식 원시적 롤러코스터가 처음 등장했다. 이후 놀이기구는 기술의 발전과 함께 빠른 스피드와 더 강한 스릴을 향해 질주해왔다.

최근 세계 테마파크계의 가장 큰 관심이 집중된 곳은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의 '페라리월드'다. 지난해 말 문을 연 페라리월드는 세계적 명차 페라리를 테마로 한 공원이다. 페라리월드는 45m 높이의 건물에 20만㎡ 넓이의 자동차 모양 붉은색 지붕이 얹혀져 있다. 이 안에 세계에서 가장 빠른 롤러코스터 '포뮬러 로사'가 있다. 최고 시속 240km까지 나오고 최고 70도까지 꺾이는 트랙을 2km가량 달리는 어트랙션이다. 관람객은 포뮬러 로사를 통해 F1의 속도감을 체험한다. 페라리 F1머신을 빼닯은 차량에 탑승한 뒤, 가공할 속도를 견뎌낼 고글을 착용하고 출발을 기다린다. 급가속한 기구가 정지상태에서 시속 240km에 도달하는 시간은 4.9초. 마치 발사된 대포알에 걸터앉은 느낌이다. 전체 2km 길이를 70번 급커브를 틀어가며 통과한다. 차량 1대에 4명씩 타고, 그 차량 4대가 하나로 연결돼 한번에 16명씩 이용할 수 있다.

페라리월드 안에는 우리의 번지드롭을 닮은 'G포스', 페라리 스포츠카의 엔진 속을 항해하는 후룸라이드 'V12', 두 대의 코스터가 경주하듯 나란히 내달리는 'GT챌린저', 4D로 느끼는 레이싱 시뮬레이션 '스피드 오브 매직' 등도 있다.

포뮬러 로사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미국 뉴저지 식스플래그 그레이트 어드벤처에 있는 '킹다카'가 최고의 스피드를 자랑했다. 로케트처럼 발사된 코스터는 그 탄력으로 레일을 달려 하늘로 치솟았다가 뚝 바닥으로 내리 꽂힌다. 130m 높이를 수직으로 떨어질 때는 꽈배기처럼 비비 꼬며 내려온다. 2005년 처음 선보인 킹다카의 운행길이는 950m, 최고 139m까지 치솟고 출발 4초 만에 최고속도 206km에 도달한다. 정점을 찍고 내려올 때의 각도는 90도다.

일본 후지산 기슭 후지큐하이랜드에는 아시아에서 제일 빠른 롤러코스터 '도돈파'가 있다. 이 역시 한번에 팍 밀쳐지는 방식이다. 4초 만에 시속 173km에 도달한다. 궤도의 최고 높이는 52m. 수직으로 치솟았다가 다시 수직으로 떨어져 내린다. 후지큐하이랜드에 있는 우리말로 '좋지 아니한가'란 뜻의 '에자나이카'도 명물이다. 끊임없이 돌리고 내리꽂으며 780도나 회전하는 이 놀이기구는 세계 최대 회전수를 자랑한다. 1줄에 4개씩 달린 의자가 또 180도 따로 회전하며 스릴을 배가, 온 몸이 부서져 흩어지는 느낌을 전한다. 목걸이 시계 안경 반지 신발 등 거치적거리는 모든 것이 착용금지다. 후지큐하이랜드의 또 다른 인기 아이템은 3분 30초 동안 정신 없이 돌려대는 '후지야마'다. 최고 130km 속도로 최고 높이 79m까지 치솟으며 총 2,045m를 내달린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는 109층 높이의 건물 위에서 즐기는 어트랙션이 있다. 스트라토스피어 호텔 꼭대기 외곽에 놀이기구들이 마련됐다.

우선 구름 위 높이에서 떨어지는'스카이점프'. 가는 줄 3개에 의지한 채 100층 넘는 빌딩에서 몸을 던진다. 사람의 몸은 바닥까지 같은 속도로 하염없이 떨어진다. '엑스스크림'은 짧은 평균대 이쪽 저쪽을 오가는 롤러코스터다. 이 평균대가 기울어지면 기구는 평균대를 미끄러져 내리다 끄트머리에서 탁 걸린다. '인서니티'는 건물 밖에서 휘휘 도는 공중회전그네다. 109층의 허공을 제대로 실감할 수 있다. 카지노에서의 잭팟 만큼이나 짜릿한 스릴이다. 이곳에는 번지드롭과 같이 위아래로 샷드롭을 반복하는 '빅샷'도 있다. 100층이 넘다 보니 중력감이 남다르다. 안전바를 느슨하게 매줘 긴장감이 더 크다.

영국 랭카셔에 있는 플레저비치 블랙풀의 '아벨란치'란 놀이기구는 봅슬레이 라이드다. 처음엔 레일을 따라 출발한 기구가 중간 레일을 벗어나 봅슬레이 경기장을 닮은 반원통 모양의 트랙으로 그냥 뛰어들어선 스피드를 높여 미끄러져 달린다.

일본 요코하마 코스모월드의 '배니쉬'는 다이빙 라이드로 유명하다. 롤러코스터가 레일을 돌다 수영장 한복판으로 뛰어든다. 실제 수영장 물속은 아니고, 수영장 가운데로 난 구멍으로 빠져들어간다.

이성원 기자 sungwon@hk.co.kr

■ 이젠 단순 스릴은 가라! 테마와 체험 중시 추세

유원지가 놀이공원이 됐고, 놀이공원이 테마파크로 변신한 지 오래다. 놀이시설도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예전 창경원시절 즐겼던 회전컵, 관람차들이 행락객을 위한 기본적인 놀이시설이었다면, 놀이공원에선 청룡열차를 시작으로 본격 롤러코스트 등 스릴이 가미된 놀이기구가 등장했다. 최근 테마파크 놀이기구들은 나름의 스토리와 접목돼 탄생한다.

물론 속도 높이 등 놀이기구의 기본적인 스릴 경쟁은 계속될 것이다. 극한을 체험하고자 하는 기본 욕구는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 스릴 위에 테마를 덧입히는 것이다.

이집트 문명의 이야기를 담은 롯데월드의 '파라오의 분노'가 대표적이다. 단순 롤러코스터같은 에버랜드의 'T익스프레스'에도 알프스 산악마을로의 관광이란 테마가 가미돼 있다. '롤링엑스트레인' '더블락스핀' '렛츠트위스터' 등 3종의 놀이기구가 모여있는 에버랜드 락스빌의 경우 엘비스 프레슬리가 잠시 들른 시골마을을 테마로 한 공간이다. 이제 스릴 쾌감도 테마와 스토리가 빠지면 싱거운 세상이다.

테마파크들이 신규 놀이시설을 들여놓기도 쉽지 않다. 최신 경향의 매머드 급 놀이시설 하나 설치하는 비용은 수백억 원을 호가한다. 테마파크가 고객 만족도 조사에서 중요시하는 것은 재방문율이다. 에버랜드 홍보팀 김인철 과장은 "테마파크를 찾는 동기를 분석해본 결과 놀이기구의 단순 스릴보다는 함께 찾은 이들과의 행복한 추억 쌓기가 더 높게 나타났다"고 했다. 놀이기구보다는 퍼레이드나 버라이어티쇼 관람, 동물 먹이주기 등의 색다른 경험이 더 호감을 주고 파크를 다시 찾게 한다는 것이다.

에버랜드의 '사파리월드'만족도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동물과의 교감을 통한 고객 만족도를 높이기 의해 에버랜드는 근래 애니멀원더월드, 몽키밸리, 초식사파리 등을 집중 개발했고, 기대 이상의 호응을 얻고 있다. 김 과장은 "손님들의 재방문을 유도하는 데는 체험만큼 좋은 게 없다"고 했다.

서울랜드의 경우 작년 봄 스카이어드벤처를 열었다. 쇠줄을 타고 미끄러져 내리는 짚라인을 테마파크 안에 들여놓은 것이다. 거대한 놀이기구 대신 레포츠에 가까운 체험놀이시설을 선택한 예다.

롯데월드도 지난해 12월 키즈카페를 확대한 모양의 테마공간인 키즈토리아를 새로 개장했다. 아이들이 부드러운 바닥에서 맨발로 뛰놀 수 있는 공간으로 보호자들은 의자에 앉아 아이를 지켜보며 휴식을 취할 수 있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가족과의 편안한 추억에 방점을 찍은 시설이다.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알고 타면 더 재미있다 놀이공원 속 물리학

'물리학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론'으로 불리며 20세기를 화려하게 장식한 상대성이론이 등장하기 전까지 과학자들은 세상을 뉴턴역학으로 설명했다.

뉴턴역학이 상대성이론에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사람들이 세상의 복잡함에 눈뜨게 됐기 때문이다. 규칙과 질서로 세상을 설명하는 뉴턴역학으론 도저히 이해 못하는 현상도 현실에서 엄연히 일어난다는 사실을 과학자들이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뉴턴역학이 여전히 절대 위력을 발휘하는 공간이 있다. 그곳이 놀이공원이다. 여기서만은 현대물리학의 강자인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이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다. 놀이기구들은 보란 듯 뉴턴역학에 따라 작동한다. 정확하게, 정직하게, 질서정연하게, 게다가 역동적으로.

어쩌면 사람들, 그래서 놀이기구를 떠나지 못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잠시나마 예측 불가능한 복잡한 세상과 떨어져 단순하고 규칙적인 세상을 만끽하고 싶은 마음에서 말이다. 그 단순하고 규칙적인 세상은 덤으로 짜릿한 쾌감까지 선사한다. 뇌를 비롯한 우리 온몸의 신경이 본능적으로 뉴턴역학이 만들어내는 공포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떨어지는 그 '맛'

놀이공원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롤러코스터. 차량을 높이 올라가게 만드는 동력은 모터의 전기에너지다. 수십m 높이까지 올라간 차량은 그 높이만큼의 위치에너지를 얻는다. 이후부턴 동력이 따로 필요 없다. 중력 때문에 아래로 떨어지면서 위치에너지는 그대로 운동에너지로 바뀐다.

이후 올라갔다 내려오는 운동을 계속하는 동안 각 구간마다 차량이 갖는 에너지는 운동에너지와 위치에너지의 합으로 일정하다. 에너지의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는 뉴턴역학의 에너지 보존 법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위치에너지가 작은 지점에선 운동에너지가 커진다. 따라서 높이가 낮은 지점일수록 속도는 빠르다.

올라간 다음 기다리고 있는 건 거의 일자로 세워져 있는 낙하 구간. 아찔하다. 삼성에버랜드의 T 익스프레스는 나무로 만든 롤러코스터 가운데 가장 가파른 낙하 각도(77도)를 자랑한다. 수직에 가까운 낙하 구간의 레일 모양은 떨어지는 차량의 궤도를 본떠 설계한다. 레일이 없어도 거의 그 모양대로 떨어질 거란 소리다. 차량이 레일 위를 따라 내려가는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과 같은 자유낙하운동이다.

차량이 자유낙하할 때 스릴을 가장 만끽할 수 있는 자리는 어디일까. 사람들은 보통 맨 앞자리를 선택한다. 떨어지는 동안 펼쳐지는 풍경과 높이를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스릴도 재미도 가장 클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외로 최고 스릴을 선사하는 명당은 맨 뒷자리다. 맨 앞자리에선 떨어지는 초반까지도 뒷자리가 최고 높이에 채 올라오지 않은 상태다. 그 때까진 뒷자리의 무게 때문에 차량이 제 속도로 떨어지지 못한다. 결국 최고 속도로 떨어지는 거리는 앞자리보다 뒷자리가 약간 더 길다. 뒷자리에 앉은 사람이 스릴을 좀더 오래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차량이 1,000m 가까운 길이의 레일을 시속 약 100km로 2~3분 만에 오르락내리락하는 동안 탑승객들은 속도감을 즐긴다. 물리학적으로 엄밀히 말하면 사람들이 느끼는 건 속도 자체가 아니라 속도의 변화(가속도)다. 탑승객이 롤러코스터 차량에 앉으면 의자를 내리누르는 힘이 생긴다. 이에 반해 의자가 탑승객을 받치는 힘도 생긴다.

차량이 움직이면서 공기저항과 관성력도 생긴다. 탑승객은 이들을 모두 합성한 만큼의 힘을 받는다. 이 힘을 몸무게로 나눈 값이 바로 탑승객이 느끼는 가속도다. 스릴을 느끼는 정도는 가속도에 비례한다. 짧은 시간 동안 속도 변화가 심할수록 사람들은 더 스릴을 느낀다는 말이다.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래프팅에서 느끼는 스릴도 롤러코스터와 같은 이치다.

꼬이고 뒤틀리고 기울어지고

나무로 만든 초기(1세대) 우든 롤러코스터는 차량이 운동에너지를 이용해 단순히 상승과 하강만을 반복했다. T 익스프레스가 대표적으로 1세대의 기본 개념을 충실히 따른 롤러코스터다.

이후 제련기술의 발달로 나무 대신 철을 이용해 롤러코스터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 2세대 스틸 롤러코스터부터는 운동방향이 다양해졌다. 레일을 지면과 평행하지 않고 거의 옆으로 눕히다시피 기울여 놓은 것이다. 빠른 속도로 달려오던 롤러코스터 차량이 급커브를 돌며 레일이 기울어진 구간으로 들어오면 바깥으로 튕겨 나가려는 원심력이 생긴다.

이때 속도에 비해 기울기가 너무 완만하면 원심력이 커져 위험하다. 롤러코스터의 급커브 구간에서 레일을 많이 기울여 놓은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고속도로의 급커브길이 대부분 경사지게 만들어져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기울어진 레일을 따라 롤러코스터 차량이 급격히 운동방향을 바꿀 때 탑승객의 몸에는 보통 때보다 큰 중력가속도가 작용한다. 탑승객이 자기 몸무게보다 몇 배나 큰 힘으로 내리 누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는 얘기다. 그래서 롤러코스터를 타고 나면 온몸이 여기저기 쑤신다는 이들도 있다.

3세대 롤러코스터는 탑승 형태가 바뀌었다. 레일 위에 있던 차량이 아래로 옮겨졌다. 탑승객이 마치 공중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때까지의 롤러코스터는 대부분 운행 초반 속도가 느리다. 최근 등장한 4세대 롤러코스터는 이 고정관념을 깼다. 정거장에서 처음부터 빠른 속도로 튕겨 나간다. 로켓이 발사장에서 펑 하고 솟아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4세대 롤러코스터가 내는 초반 속도의 비밀은 전기모터에 있다. 3세대까지는 회전형 모터가 차량을 낙하지점까지 밀어 올렸다. 회전형 모터와 차량을 체인으로 연결해 모터가 한 바퀴씩 돌 때마다 한 단계씩 차량이 위로 올라간다. 4세대 롤러코스터의 레일에는 (직)선형 모터가 일렬로 수십 개 설치돼 있다. 박대수 롯데월드 어트랙션팀 매니저는 "선형 모터에 전원이 들어가면 순간적으로 동시에 차량을 앞쪽으로 밀어주기 때문에 회전형 모터보다 차량을 훨씬 빠른 속도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회전 직전 중력가속도 최대

롤러코스터에서 중력가속도가 가장 큰 곳은 구부림(루프) 구간에 막 진입하는 지점이다. 탑승객은 몸무게의 최고 5배 가까이 되는 힘을 받는다. 그러나 막상 루프에 들어가면 순간적으로 원심력이 발생해 탑승객이 느끼는 중력은 확 줄어든다. 차량이 루프에서 회전할 때 생기는 원심력은 원운동의 중심방향으로 작용하는 구심력과 중력을 합한 만큼의 힘이다. 레일을 그렇게 설계해야 원 모양으로 회전해도 차량이 밖으로 튕겨나가지 않는다.

떨어지고 꼬이고 빙빙 돌아가다 정거장에 멀쩡하게 멈춰서는 것도 참 수수께끼다. 롤러코스터를 세우는 힘은 자기력이다. 정거장 레일에는 중간중간에 금속판과 영구자석이 설치돼 있다. 레일과 마주보는 차량 아랫면에도 역시 영구자석이 달려 있다. 차량이 달려오다 레일의 영구자석을 만나면 차량과 레일 사이에 자기장이 형성된다. 박 매니저는 "차량이 움직이면서 이 자기장에 금속판이 지나갈 때 순간적으로 금속판도 자석이 되면서 주변에 자기장을 방해하는 반발력이 생긴다"며 "이 힘이 앞으로 나가려는 차량을 붙잡는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방식의 브레이크도 있다. 예를 들어 좁은 공간을 사이에 두고 벽 양쪽에 풍선이 길게 붙어 있다고 치자. 그 사이로 달리던 물체는 마찰력 때문에 어느 정도 가다 멈춰 설 것이다. 롯데월드의 프렌치 레볼루션이 멈추는 원리가 이렇다. 레일에 설치된 브레이크 라이닝이 공기에 부풀어 풍선 역할을 한다.

롤러코스터는 보통 기온이 영하 5도 아래로 떨어지면 운행하지 않는다. 박노진 서울랜드 시설부장은 "차량 바퀴 내부에 잘 회전하라고 오일을 넣어두는데, 기온이 떨어지면 이 오일이 점점 응축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날이 추울 때 몸이 움츠러드는 것처럼 말이다.

자유낙하의 최고봉

떨어지는 맛의 또 다른 강자, 타워형 놀이기구다. 타워형은 크게 세 종류로 나뉜다. 승객을 태운 탑승물을 아래에서 위로 빠르게 솟구쳐 올린 다음 천천히 내려놓는 '샷(shot)'형과 탑승물을 천천히 끌어올린 다음 빠르게 떨어뜨리는 '드롭(drop)'형, 이 둘을 섞어놓은 혼합형이다.

롯데월드 자이로드롭이 대표적인 드롭형이다. 40개 좌석이 사방으로 놓인 체어 유닛을 화물운송장치인 호이스트 프레임이 물고 70여m 높이로 끌어 올린다. 호이스트 프레임을 움직이는 동력은 전기모터. 전기모터에 연결된 로프를 감으면 호이스트 프레임이 올라간다.

최고 높이에서 3초간 멈춘 뒤 호이스트 프레임은 물고 있던 체어 유닛을 그대로 놓아버린다. 아파트 25층 높이에서 체어 유닛이 자유낙하 하는 시간은 단 2.5초. 탑승객들 다리 아래쪽에 순간적으로 고기압이 형성되면서 다리가 살짝 들린다. 또 온몸이 공중에 붕 뜨는 듯한 느낌도 받는다.

내려온 체어 유닛이 멈추는 원리는 롤러코스터의 자기장 브레이크와 같다. 체어 유닛 뒤쪽에 영구자석이 있고 가운데 탑 아래쪽에 영구자석과 금속판이 달려 있다. 체어 유닛이 내려오면서 순간적으로 자기장이 형성되고 금속판 주위에 체어 유닛이 떨어지는 걸 방해하는 방향으로 힘이 생기면서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것이다. 체어 유닛을 떨어뜨린 호이스트 프레임은 승객들의 비명이 잦아들면 감았던 로프를 풀며 혼자 유유히 내려온다.

서울랜드의 샷엑스드롭은 전형적인 혼합형이다. 전기모터 대신 공기의 압력으로 작동한다. 14~16배 압축한 고압의 공기를 실린더에 순간적으로 밀어 넣으면 그 힘으로 실린더에 연결된 탑승물이 갑자기 빠르게 상승하게 된다. 이때 속도는 대략 시속 45km. 이후부턴 실린더에 공기를 넣었다 뺐다 반복한다. 이와 함께 탑승물도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한다.

겉으로 보기엔 오르락내리락 그저 단순해 보이지만 내부 설계는 생각보다 정교하다. 박 부장은 "샷엑스드롭은 탑승객의 무게에 따라 넣고 빼는 공기의 압력과 양, 여닫는 밸브의 수, 공기가 지나는 관의 두께를 자동으로 조절하도록 내부에 프로그램이 장착돼 있다"고 설명했다. 공기압으로 작동하는 이런 놀이기구는 롤러코스터처럼 날씨가 추워지면 운행하지 않는다. 공기가 지나는 통로에 얼음알갱이가 달라붙어 변형이 생기기 때문이다.

샷엑스드롭에는 브레이크가 따로 없다. 탑승물이 아래로 내려왔을 때 공기가 다 빠지면 멈추도록 설계됐다.

눌렸다가 떴다가

엘리베이터를 타면 올라갈 땐 미세하게나마 몸이 눌리는(무거워지는) 듯한 느낌을, 내려갈 땐 붕 뜨는(가벼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바이킹이나 롯데월드의 자이로스윙 같은 왕복운동(진자운동)을 하는 놀이기구는 이 느낌을 확대하고 반복하는 셈이다.

땅 위에 가만히 서 있는 사람이 느끼는 중력가속도는 1G. 멈춰 있던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면 관성력은 엘리베이터의 방향과 반대인 아래쪽으로 작용한다. 때문에 안에 탄 사람은 1G보다 큰 중력가속도를 느낀다. 올라가던 엘리베이터가 멈추면 관성력은 순간적으로 위쪽으로 작용한다. 이때는 중력가속도가 1G보다 작아진다.

엘리베이터 속도는 대략 시속 10km. 그 안에서 생기는 미세한 중력가속도 차이로는 몸에 별다른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놀이기구는 엘리베이터보다 최소 8배 이상 빠르다. 올라갈 땐 2~4G, 내려올 땐 -1~0G로 탑승객이 느끼는 중력가속도 변화 폭도 크다.

건강한 성인이 견딜 수 있는 최고 중력가속도는 8~9G 정도. 중력가속도가 커지면 우리 몸에선 피가 다리 쪽으로 쏠린다. 뇌에는 산소를 실어 나르는 혈액이 부족해진다. 그래서 어지럽고 시야가 흐려지는 '그레이아웃(grey-out)'을 경험한다. 심해지면 앞이 보이지 않는 '블랙아웃(black-out)' 상태가 된다. 뇌 혈류량이 더 줄면 아예 의식상실 상태(G loc)에 빠질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4G 이상인 상태가 10초 이상 계속되면 위험하다고 조언한다.

놀이기구 탑승객보다 더 큰 중력가속도를 경험하는 사람도 있다. 우주비행사, 전투기조종사다. 우주선이나 전투기 안에서 급격한 중력가속도 변화를 견디기 위해 이들은 정기적으로 훈련을 받는다. 전투기조종사들이 훈련할 때 견뎌야 하는 최고 중력가속도는 9G다.

놀이기구가 갑자기 올라가거나 떨어지는 순간 비명을 지르고는 싶은데 일시적으로 목소리가 안 나올 때가 있다. 이 역시 중력가속도 변화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소리를 지르려면 가슴과 배에 있는 근육을 이용해 허파 속 공기를 수축시켜 기관지를 통해 입으로 내보내야 한다. 중력가속도 때문에 피가 한쪽으로 쏠리면 근육도 잘 안 움직인다.

중력가속도가 1G보다 작아지면 거꾸로 피가 뇌 쪽으로 몰린다. 안구 등의 혈관이 터져 눈이 충혈되고 심하면 역시 의식을 잃는, '레드아웃(red-out)' 증상이 생긴다. 순간적으로 몸이 휘청거리기도 한다. 귀에서 평형과 회전 감각을 담당하는 세반고리관과 전정기관이 균형을 잃기 때문이다. 사람은 -5G는 수초, -3G는 20~30초 정도 견딘다고 알려져 있다.

바이킹과 자이로스윙의 차이는 동력의 위치다. 바이킹은 동력이 아래에, 자이로스윙은 위에 있다. 바이킹은 배 아래 지면에 모터와 연결된 휠이 설치돼 있다. 모터가 돌면 휠이 함께 돌면서 배를 밀어준다. 올라간 배가 중력에 의해 내려오면 휠이 이번엔 반대 방향으로 돌면서 배를 밀어 올린다. 휠이 왼쪽으로 돌면 배도 왼쪽으로, 휠이 오른쪽으로 돌면 배도 오른쪽으로 밀려 올라가며 왕복운동을 하는 원리다. 그네 탈 때 발을 굴러 높이 올라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휠이 점점 속도를 줄이면 배도 왕복운동을 멈춘다.

자이로스윙은 탑 꼭대기에 모터와 연결된 커다란 원판이 설치돼 있다. 모터가 돌면 원판이 좌우로 왔다갔다 움직이고, 원판의 움직임에 따라 거대한 탑승물도 함께 왕복운동을 한다. 멈출 땐 원판 양쪽에 장착된 브레이크 캘리퍼가 원판을 붙잡는다.

무서워도 계속 찾는 이유

롤러코스터, 자이로드롭, 바이킹…. 일단 다 무섭긴 하다. 하지만 놀이공원에 여럿이 함께 가면 의견이 분분하다. 누군 롤러코스터의 빠른 속도가 제일 무섭다 하고, 누군 자이로드롭 타고 떨어질 때가 최고 공포라 하고, 누군 바이킹이 휙 올라갈 때 가장 아찔하다 한다. 무서움을 느끼는 뇌 신경회로가 사람마다 다르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뇌에서 공포를 유발하는 신경세포는 주로 편도체라는 영역에 있다. 이들 세포는 시각이나 청각 등 다른 여러 가지 자극을 받아들이는 신경세포와 복잡하게 연결돼 있다. 예를 들어 높은 데서 떨어져 다친 경험이 있다면 편도체 속 공포 담당 신경세포에 기록된다. 그 뒤 이 사람은 자이로드롭을 타거나 보기만 해도 다른 이들보다 더 무서움을 느낀다. 자이로드롭을 타거나 보는 자극이 공포 담당 신경세포로 전달되는 것이다.

김대수 KAIST 생명과학과 교수는 "신경세포들이 서로 연결된 강도나 패턴 등은 사람마다 미세하게 다르다"며 "이 차이와 과거 공포 경험의 차이가 사람마다 다른 상황에서 무서움을 느끼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무섭다, 무섭다 하면서도 사람들은 계속 놀이공원을 찾는다. 즐거워서다. 이런 아이러니컬한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를 신경과학자나 심리학자들은 공포를 담당하는 뇌 영역이 쾌감을 일으키는 영역과 서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김학진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공포를 느끼는 상황이 끝나면 뇌는 그에 대한 보상으로 반대 감정을 크게 활성화시킨다"며 "놀이기구를 탄 직후에 느끼는 쾌감이나 스릴이 바로 이 같은 작용"이라고 말했다. 아주 무서울 땐 뇌에서 마약 같은 역할을 하는 신경전달물질이 나와 쾌감을 느끼거나 고통이 줄어든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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