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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산림전문가들이 찾은 대관령 특수조림지/ 강풍 속에서 땀으로 일군 '숲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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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31 17:52

해발 800m가 넘는 고갯길이 13㎞가까이 펼쳐져 있고, 평균 강설량은 1.87m, 최대풍속은 초당 28m에 이르는 강원도 대관령(大關嶺). 올해 유일하게 한반도를 관통한 태풍 '텐무'의 중심 최대풍속이 초당 24m였으니 대관령에 부는 강풍은 태풍 수준이다.

이처럼 자연은 애초 그곳에 숲을 허락하지 않았다. 낮은 키에 바람에 뉘엿뉘엿하는 이름 모를 풀들만이 초대받았을 뿐이다. 나무가 자라지 않아 황폐했던 대관령에 1976년 처음 나무들이 심어졌다. 산림청 직원들은 마치 아기를 돌보듯 묘목 한 그루 한 그루마다 방풍막과 방풍책을 두르고 세웠다. 86년까지 11년간 86만4,000그루의 전나무와 잣나무 등이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사반세기가 흐른 지금 영동고속도로 옛 대관령휴게소 부근엔 이론상으론 존재 자체가 불가능한 아름드리 나무숲이 우거졌다. 인간의 의지와 땀이 위대한 기적을 일궈낸 것이다.

전세계에서 모인 산림ㆍ환경전문가 500여명이 지난달 26일 '대관령 특수조림지'를 찾았다. 지난달 23~28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제23차 세계산림과학대회 총회에 참석한 이들은 한국 산림녹화사업의 대표장소를 직접 보기 위해 버스로 3시간을 달려 대관령에 닿았다.

장대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 탓에 특수조림지 현장방문은 축구장 300개 규모(311헥타르)의 전체 현장 가운데 산책로 등 일부 구간에서만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비옷을 입고 발이 푹푹 빠지는 상황에서도 "원더풀"을 연발했다.

특히 총 길이가 4.8㎞에 이르는 방풍책과 나무 한 그루마다 주변을 감싼 보호통발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강풍으로부터 어린 묘목을 보호하기 위해 3m 높이에 길이가 20m인 방풍책을 50m 간격으로 길게 세운 모습은 흡사 거대한 장벽을 연상시켰다. 강풍으로부터 방풍책의 엄호를 받은 산책로 양쪽 주변에는 동자꽃 금강초롱 산수국이 흐드러지게 피고, 전나무와 잣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었다.

해설을 맡은 이경준 서울대 산림과학부 교수는 "일본의 목재수탈부터 시작해 먹고 살기 위해 풀과 나무까지 불 질러버린 화전민들이 60년대 후반 떠나기 전까지 이곳은 허허벌판이었다"며 "과거 사진과 현재를 비교해보면 한강의 기적에 이은 '숲의 기적'이란 말이 실감날 것"이라고 말했다.

전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조림 성공사례인 특수조림지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풍경은 또 있었다. 나무들은 영동(강릉) 쪽으로만 가지와 잎을 뻗은 반면, 영서(평창) 쪽으로는 앙상했고, 크기도 3~4m 높이에서 성장을 대부분 멈췄다. 서쪽에서만 바람이 세게 불다 보니 나무들이 환경에 적응하며 동쪽 방면으로만 가지를 뻗고, 너무 커버리면 강한 바람에 견디기 힘들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 성장을 스스로 억제한 것이다.

현장을 찾은 전세계 산림전문가들은 이날 직접 본 숲의 기적을 저마다 자신의 나라에 적용시킬 방법에 대해 논의했다. 몽골의 산림학자 수흐씨는 "모래바람이 강한 사막지대가 많은 몽골에 아주 알맞은 기법"이라고 했다. 존 스탄터프 미 산림청 관계자도 "한국의 조림성공 사례는 세계 산림역사에 기록될 모범사례로 국가간 기술협력 등을 통해 '지구녹화'라는 전 인류적 과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칭찬했다.

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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