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기부를 즐기다] <3> 고된 봉사? 즐거운 봉사!

입력
2009.09.09 01:42

8일 오후 5시께 서울 강북구 미아9동 노루목 공부방. 대학생 교사 박준형(23)씨가 들어서자 초등학생 5명이 와락 달려든다. "안녕하세요? 선생님!"생글거리며 인사를 건네는 표정에 친근감이 뚝뚝 묻어난다.

한 아이는 박씨 다리에 덥석 매달려 떨어질 줄 모른다. 보고 또 봐도 자꾸 보고픈 애인을 만난 듯 박씨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번진다. 박씨가 매주 화요일 아이들을 만나러 갈 때마다 되풀이되는 광경이다. "학교에서 머리 복잡한 일이 많아 지쳤다가도 아이들만 보면 금세 마음이 밝아져요. 신촌에서 공부방으로 향하는 길 내내 가슴이 설레기도 하고요."

박씨는 이 공부방에서 2년째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아이들은 대부분 한부모 가정이나 저소득층 가정의 자녀들로 학교가 끝나면 학원으로 향하는 친구들과 헤어져 공부방에 온다. 아이들은 대학생 선생님들과 매일 1~2시간씩 공부하고 같이 어울려 놀기도 하는 것이 마냥 즐겁다.

박씨 역시 "즐겁고 재미있어서" 이곳을 찾는다.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던 아이들과 가까워지고 다른 봉사자들과 어울리다 보면 어느새 봉사라는 생각은 사라진다.

지난해 3월 그를 공부방으로 이끈 것은 "좋은 학교 다니고 어려움 없이 공부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나눠야 한다는 의무감"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그저 아이들이 좋고 함께 하는 시간이 즐겁다고 했다. 이번 학기 공부방을 총 관리하는 '교감'역할까지 맡은 그는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공부방 후원자로 남아 꾸준히 재미있는 봉사를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스스로 원한(자원) 봉사라 해서 몸이 고되지 않고 마냥 기쁘기만 할 리 없다. 과거엔 희생정신과 인내심으로 버텨냈다면, 요즘 2030 봉사자들은 재미 또는 즐거움에서 해법을 찾는다. 예전 같으면 "진지하지 못하다" "봉사를 장난처럼 한다"는 등 핀잔이 이어졌을 법하지만, 이들은 "나 스스로 재미있고 즐거워야 꾸준히 활동을 이어갈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대학생 박기태(27)씨가 노숙인 돕기 봉사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은 호기심 때문이었다. "서울역 주변의 노숙인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하루를 보낼까,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됐을까, 그냥 모든 게 궁금했어요."

2007년 겨울, 호기심에 건넨 한마디 말이 대화가 되고 술잔을 기울이는 밤샘 토로로 이어졌다. 그러다 자연스레 성공회 노숙인 다시서기상담보호센터와 함께 노숙인의 재기를 돕는 봉사를 시작했다. "노숙인들은 자신이 뭘 필요로 하는지 잘 몰라요. 제가 대화를 통해 필요한 것을 찾고 의료 지원, 알코올중독 치료, 숙박, 자활 등의 도움을 주는 거죠."

그는 틈만 나면 찾는 서울역을 일러 '놀이터'라고 말한다. "사실 자원봉사라고 하기에도 좀 부끄러워요. 그냥 즐거워서 하는 일이니까요." 그 역시 고등학교 때 의무 봉사시간을 때우기 위해 쓰레기 줍기 따위를 했다. 즐거움은커녕 봉사한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시간들이었다.

박씨는 즐거운 봉사를 위해 자신의 취미나 호기심에서 시작할 것을 권했다. "제 친구는 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셨는데 할머니를 뵙고 싶은 마음에 자주 나눔의 집을 찾아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대화도 나누고 시간을 보내면 어느새 봉사는 봉사 같지 않게 되죠."

물론 즐거운 봉사의 '경지'에 오르는 것이 쉽지는 않다. 기부든 봉사든 일정한 훈련이 필요하다. 쓰레기 줍는 일조차 해보지 않은 사람이 중증 장애인 돕는 일에 선뜻 나설 수 없는 것이다. '곱게 자란' 청년세대가 어깨에 힘 빼고 스스로 즐기는 봉사에 나설 수 있는 것도, 대개는 '시간 때우기'식으로 했을 망정 10대에 봉사를 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대학생 이수지(21·여)씨는 중학생 때부터 엄마를 따라다니며 봉사를 몸에 익혔다. 요양원 등을 찾는 소소한 자원봉사는 물론 가족이 함께하는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프로젝트 리더'로도 활동했다. 지금은 대학 사회봉사단에서 활동하며 자원봉사 지원자와 수혜자를 연결해주는 일을 한다. "처음엔 봉사 좀 그만하라던 친구들도 이제는 봉사하고 싶다고 조언을 구해요."

이씨는 3월부터 인천 청소년지킴이 봉사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씨처럼 자녀들이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봉사를 익히기를 바라는 부모들이 모여 시작한 모임이다. 학부모들과 초중고생 자녀 700여명으로 구성된 모임은 격주 토요일 수업이 없는 '놀토'에 개천 주변 환경정화 활동이나 노인복지관을 찾아 어르신들 말벗이 되어 주는 등의 활동을 펼친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줬다는 생각보다 그 활동을 하며 함께하는 사람들과 재미를 느낄 수 있는 활동이 봉사죠. 그냥 일상생활 같은 거예요." 이씨는 11월부터는 다시 복지관에서 봉사할 거라며 벌써부터 설렌다고 했다.

강희경 기자 kbstar@hk.co.kr

■ 진화하는 대학생 자원봉사

고려대 4학년 박정주(28)씨는 지난 여름방학에 4박5일간 강원 영월에 농촌봉사활동을 다녀왔다. 그러나 흔히 말하는 '농활'처럼 밭 매고 고추 따러 간 것이 아니다.

36명의 봉사단은 영월읍 봉래중에 캠프를 차리고 학생들에게 영어, 과학을 가르쳤다. 80여명의 아이들은 언니, 오빠들에게 영어노래를 배우고 물로켓 날리는 과학실험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봉사단은 아이들에게 진학 지도와 효율적인 공부법 상담도 해주며 살뜰한 '멘토'가 되어주었다.

영월군이 서울지역 대학들에 제안해 이뤄진 방학 교육봉사 프로그램에는 서울대(석정여고) 연세대(영월고) 이화여대(석정여중) 성신여대(연당중) 등도 참여했다. 박씨는 "농활에도 참여해봤는데 서툰 솜씨로 과일 몇 개 따는 게 과연 농촌에 도움이 될까 의문이었다"면서 "오히려 교육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꿈과 기회를 주는 것이 더 좋은 농촌봉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농활, 빈활(빈민촌봉사활동)로 대표되던 대학생 단체봉사활동도 달라졌다. 물론 1970,80년대 대학가에서 '필수활동'으로 여겨지던 농활이 시들해진 지는 오래다. 명맥만 유지되던 농활이 최근 들어 농촌학습캠프 등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며 다시 관심을 받고 있다.

연세대 학생들은 지난 7월 한일 문화교류의 하나로 일본 와세다대 학생들과 함께 강원 철원, 경기 파주, 연천 등에서 농촌봉사활동을 펼치고 평화토론회도 개최했다. 이화여대는 7,8월 3주간 하계봉사단을 꾸려 영월, 춘천, 거창 등 전국 13개 지역을 방문, 해비타트 봉사자들과 함께 낡은 집을 수리해주고 중학생들에게 공부를 가르쳤다.

이처럼 활동 내용은 다양하지만, 대학생들이다 보니 '학습 봉사'가 빠지지 않는다. 대학생 단체봉사도 자신의 능력을 나누는 '재능기부'형태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강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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