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훈 前총리 회고록 '나라를 사랑한 벽창우' 펴내

입력
2008.05.28 00:24

“파란만장한 역정이 나만한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민본, 민족 그리고 자유민주주의 사상은 내가 주관과 신념을 갖고 살아 가도록 내 한평생을 확고히 받쳐 주었습니다.” 강영훈(87) 전 국무총리가 ‘나라를 사랑한 벽창우’에서 자신의 생을 압축했다(동아일보사).

“정부가 100만 서울 시민을 팽개치고 가 버린 상황에서 폭파를 지시한 군인에게 책임을 덮어씌우고 총살시킨 것은 너무나 가혹했다.(155쪽)” 제2군단 참모장 시절이었던 1950년 6월 28일, 물밀 듯 내려오는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해 실시한 한강철교 폭파 사건을 두고 하는 말이다. 비록 군인의 신분이었으나, 그는 양심과 정의감에 따라 행동하려 애썼다.

그 같은 주관은 90년 10월 평양에서 열렸던 제2차 남북고위급 회담에서 김일성 주석을 만났을 때의 일화로 이어진다. 회담 도중 김 주석이 의외로 그에게 “강영훈 총리 각하”라 칭하자 그는 “주석 각하”로 불러 주었다. “상대가 그렇게 호탕하게 나오는데 나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옹졸한 처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의 고향 평안북도 창성군은 한우 중 특히 고집 세고 힘 좋은 벽창우(碧昌牛)의 본고장으로 유명했다. 고집불통으로 자신의 길을 간 그의 별명이 ‘벽창호’로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 육사교장 재직 중이던 61년 육사생도의 군사혁명 지지 시가 행진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반혁명분자’로 찍혀 수감됐다 중장으로 예편당한 일은 그의 기질을 잘 설명해 주는 대목이다.

46년 월남해 국군에 입대한 그는 62년 미국 남가주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76년 귀국해 한국외국어대 대학원장을 거쳐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제13대 국회의원(민정당 전국구), 국무총리,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을 역임하다 2000년 일체의 현직에서 사퇴해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강씨는 책에서 아내 김효수씨에 대한 미안함과 감사의 표시를 절절하게 한다. 61년 5ㆍ16 군사정변 당시 반혁명 혐의로 마포형무소에 수감됐을 때 등 유난히 굴곡 심했던 자신을 뒷바라지 하다 노환을 얻게 된 김씨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한”(558쪽) 지아비다.

81년 주영 대사로 부임한 지 20일만에 버킹엄 궁전에서 이뤄진 엘리자베스 여왕과의 만남, 85년 교황청 대사직을 수행하기 위해 로마교황청에 갔을 때 이뤄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의 만남 등 특별한 순간들도 사진들과 함께 잘 정리돼 있다. 28일 오후6시 조선호텔에서 출판 기념회가 열린다.

장병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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