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소보 독립선언 국제정세 파장, 불붙은 발칸 뇌관… 인종충돌 '서막' 긴장

입력
2008.02.18 05:44

미국 유럽연합(EU) 등 서방을 한 축으로, 러시아 세르비아 등이 다른 한 축으로 첨예하게 맞서왔던 코소보 독립이 17일 코소보 자치정부에 의해 일방적으로 선언됐다.

서방은 코소보에서 더 이상의 인종 간 유혈충돌을 막기 위해서는 코소보 독립이 불가피하다고 보는 반면 러시아는 "코소보의 일방적인 독립은 다른 분리독립 세력의 준동을 부추기는 좋지 않은 선례가 될 것"이라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소집을 요구하는 등 강력 반발하고 있다. 코소보를 자치주로 두고 있는 세르비아 정부 역시 "코소보 독립선언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며 대통령 총리 등으로 구성된 국가안보위원회를 열어 코소보 독립선언에 따른 보복 조치인 '액션플랜'을 채택할 예정이다. 여기에는 ▦코소보 독립을 승인하는 국가와의 단교 등 외교관계 강등 ▦전력공급 중단 등 코소보에 대한 경제제재 ▦알바니아 주민의 세르비아 여행 금지 등이 규정될 것으로 알려졌다.

코소보는 지금'환희의 물결'

하심 타치 코소보 총리가 독립 선언을 공식화한 16일 코소보 전역은 축제와 환희의 물결이 넘쳤다. 거리 곳곳은 독립을 축하하는 자동차 경적과 폭죽소리에 뒤덮였고, 주도(州都)인 프리슈티나 중심가는 영하 10도까지 떨어지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 수천명의 인파가 몰려나와 민요에 맞춰 알바니아 국기를 흔들며 춤을 추는 등 독립을 축하하는 주민들의 환호성은 새벽까지 이어졌다.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가 울려 퍼지면서 코소보 의회가 17일 오후 3시 의사당에서 독립을 공식 선언하자 축제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자쿱 크라슈니키 국회의장은 "코소보는 역사의 새 장을 넘기고 있다"면서 "우리는 국제 사회의 협력 아래 모든 시민을 위한 민주 국가 건설을 다짐한다"고 선언했다. 저녁에는 독립을 기념하는 오벨리스크가 프리슈티나 도심 광장에 세워지고, 오케스트라의 축하 공연도 예정돼 있다.

코소보 자치정부는 세르비아어로 '까마귀의 땅'이라는 뜻의 코소보(Kosovo)를 알바니아어로 발음해 국명을 '코소바공화국(Republic of Kosova)'으로 바꾸기로 했다. 코소보 의회는 붉은 색 바탕에 쌍두(雙頭) 독수리를 새긴, 인근 알바니아 국기와 비슷한 문양을 심의중이다.

코소보 독립선언은 '판도라의 상자'

코소보의 독립선언은 코소보인에게는 세르비아에 편입된 1913년 이후 100여년만에 이룩한 '감격의 축제'이지만, 국제사회에는 세계 곳곳에 산재해 있는 '인종폭탄'의 뇌관에 불을 붙인 것과 같은 격이다. 유엔의 위임통치를 받고 있지만 헌법상 엄연히 세르비아의 자치주인 코소보가 중앙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독립선언을 하는 것이 국제법에 저촉되지 않는가 여부는 오히려 한가하게 들린다.

가장 절박한 문제는 코소보의 독립선언이 전 세계 분리주의자들의 도미노 독립선언을 몰고 오는 기폭제 역할을 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이 경우 중앙아시아와 발칸반도 등 인종간 갈등이 극심한 지역에서의 정치적 혼란은 물론 대규모 유혈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크다.

발칸의 또 다른 화약고로 불리는 보스니아_헤르체고비나의 세르비아계 자치지역인 스르프스카 공화국과 구소련에서 독립한 그루지야의 친러시아계 자치주인 압하지야, 남오세티아 자치공화국들이 가장 우려되는 지역이다. 또 알바니아계가 인구의 25%로, 2001년 인종간 극심한 분규를 겪었던 인접국 마케도니아도 직접적인 여파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스르프스카 공화국은 중앙정부의 권한을 강화하는 정부개혁안에 반발해 현 총리가 '자치권 훼손'을 이유로 사임하는 등 그렇잖아도 국가가 분열될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남오세티아는 그루지야 정부와 18개월 동안 독립전쟁을 치른 뒤 1992년 정전협정을 통해 불안한 동거를 계속하고 있고, 92년 독립을 선언한 압하지야는 그루지야군의 침략을 받아 전쟁을 치른 뒤 1년만인 93년 8월 종전했다.

러시아 정부가 코소보의 독립을 적극 반대한 것은 이들 친 러시아 지역을 거꾸로 독립시킬 명분을 쌓기 위한 카드였다는 해석이 유력하다. 이미 두 자치공화국에 평화유지군을 상주시키고 있는 러시아는 매년 인도적 차원이라는 명분으로 막대한 재정 지원을 하는 등 분리주의 운동을 공공연히 지원해 왔다.

서방은 러시아에 맞서 코소보의 독립이라는 목적을 달성했지만 다른 분리주의 세력의 독립 명분을 어떻게 무마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이날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코소보의 독립 선언으로 예상되는 폭력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동맹국들과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고, 영국은 1,000여명의 군병력을 코소보에 투입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발표했다.

■ 코소보 독립선언까지

코소보는 인구 200만명 중 알바니아계가 90%, 세르비아계가 10%로, 알바니아계가 절대다수이면서도 세르비아 중앙정부의 탄압을 받아왔다. 특히 세르비아의 전신인 신유고연방 쳄?당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대통령이 1989년 코소보의 자치권을 박탈하는 등 노골적으로 알바니아 민족성 말살정책을 펴자 이에 대항하는 알바니아인들의 저항운동이 끊이지 않았다.

1913년 1차 대전 와중에 세르비아에 편입된 코소보는 연방내 다인종 국가를 건설하려 했던 요시프 티토 전 유고 연방 대통령 집권 당시에는 비교적 높은 수준의 자치권을 보장받았으나,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주창한 밀로셰비치 정권이 들어서면서 중앙정부와 극심한 충돌을 벌였다.

1998~99년 코소보 알바니아계 주민들에 대한 세르비아의 탄압이 극에 달하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이 99년 3월 사태에 개입, 6월초까지 2개월여 동안 세르비아 정부와 전쟁까지 치렀다. 이 전쟁으로 1만3,000여명이 사망하고 3,000여명이 실종됐다.

법적으로는 세르비아 정부의 자치주이지만, 전쟁 이후 유엔코소보행정기구(UNMIK)의 위임 통치를 받고 있다.

황유석 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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