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이해찬 세대'와 화해하시죠

입력
2007.07.18 00:10

‘이해찬 세대’라는 말이 있다. 워낙 유명한 말이라 각종 용어사전에도 반드시 나온다. 한 사전은 이해찬 세대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1999년 이해찬 장관 시절 교육부는 특기나 잘하는 과목만 있으면 대학에 무시험으로 갈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수시모집 제도 ▦특기나 적성을 우대해 선발하는 특기자 전형 ▦내신에서 과목별로 가산점을 부여하는 제도 등을 신설했다. 이 제도가 적용된 99년 당시 고1부터 2년 간의 학생을 이해찬 세대라고 한다.’

스스로를 이해찬 1세대(2002학번)라고 밝힌 한 군인은 최근 인터넷에 올린 글에서 자신이 교육부에 속았다고 했다. “남이 없는 특기가 있어도, 한 과목만 잘해도 대학에 간다고 하니 모두들 박수 쳤어요. 그리고 특기 하나, 내신 한 과목만 대충 공부하면서 맨날 놀았지요. 하지만 대학이 특기나 내신으로만 선발하는 학생은 숫자가 매우 적었어요. 결국 기존 대입처럼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중요했던 것이죠. 그런데 우리는 수능을 다 잡쳤어요. 특기나 내신 한 과목만 집중하고 수능은 손을 놓았으니 잘 봤으면 이상한 일이죠. 반대로 새 대입 제도 적용 이전에 고교를 다녀 죽어라 수능 공부를 한 경험이 있었던 재수생들은 모두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고3은 재수생들에게 밀려 생각보다 낮춰 대학에 들어가야 했어요. 그리고 교수님들로부터는 ‘건국 이래 최저 학력’이라고 무시당했어요. 한 해 후배인 이해찬 2세대(2003학번)는 앗 뜨거워라 싶어 마지막 1년을 수능 과외, 특기ㆍ적성 과외, 내신 과외의 삼중 과외로 보냈어요. 그런데도 워낙 오랜 기간 공부하고 담 쌓고 살았기 때문에 대입에서 재미를 못 봤죠.”

학생들의 학력은 저하되고, 반드시 잡겠다던 사교육은 판을 치게 만들었다는 비난이 장관과 교육부를 향해 쏟아졌다.

이렇게 공분의 대상이 된 이해찬 전 총리가 지난달 19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 뒤 전국을 돌고 있다. 그는 정책통임을 자임하면서 교육부 장관 시절 개혁을 업적으로 내세웠다. 그러자 많은 이해찬 세대가 “우리 같은 피해자를 만든 것이 업적이냐. 절대 대통령은 안 된다”고 난리다.

이 전 총리는 최근 언론 인터뷰 등에서 이 문제에 대해 “방향이 옳았다” “수능 내신 면접을 다양하게 반영하겠다는 취지였는데 언론이 특기 하나 있거나 한 과목만 잘하면 대학에 간다고 잘못 보도했다” “공부 못 했던 일부의 넋두리고, 학력 저하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당시 대입 제도 개선은 전형 요소를 수능 이외의 것으로 다양화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바람직했다. 기자들이 ‘한 과목만 잘하면…’ 하는 식으로 몰고 갔다는 얘기도 맞는 측면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오가 있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특히 정책의 엄밀성이라는 측면에서 문제가 컸다.

특기ㆍ적성 과외와 내신 과외가 극성을 부릴 수 있다는 지적이 정책 입안 단계부터 나왔는데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 또 내신이나 특기ㆍ적성에 초점을 맞춘 학생은 수능 공부를 하지 않아 기초학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컸는데 이를 막지 못했다. 물론 이 총리는 학력 저하 자체를 부정하고 있지만 그렇게 많은 교수들이 학력 위기를 얘기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 전 총리는 이제라도 “방향은 옳았는데 좀 무리했다”는 식으로 이 사안을 정리하고 이해찬 세대와 화해하는 게 좋겠다. ‘정책 대통령’을 지향한다면 더욱 그렇다.

이은호 정치부 차장대우 leeeun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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