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와 癌에 맞서 싸운 진혜원 검사

입력
2007.02.20 23:42

뇌종양을 앓으면서도 중국동포를 위해 항소심까지 가며 진실을 밝혀낸 여검사의 사연이 감동을 주고 있다. 주인공은 서울북부지검 형사2부 진혜원(33) 검사.

진 검사는 지난해 초 중국동포 허모(49)씨가 “물품대금 3,500만원을 떼였다”며 한국인 사업가 김모(33)씨를 상대로 낸 형사소송 사건을 맡았다. 목도리 5,400개를 수출하고 대금 지급을 요구했지만 김씨가 “이미 돈을 지급했다”며 발뺌을 했다는 게 허씨 주장이었다.

김씨의 위증 혐의를 확신한 진 검사는 중국어로 된 3,000쪽짜리 서류를 뒤지며 밤낮없이 사건에 매달렸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지난해 7월 증거 부족을 이유로 김씨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진 검사는 수사부서로 발령이 나 이 사건에서 손을 떼야 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의 결정을 납득할 수 없었던 진 검사는 선배 검사들을 만나 항소심에서 공판검사로 나서겠다고 자청했다. 후배 검사의 열정에 감복한 서울북부지검은 이례적으로 이를 수용했다.

진 검사는 중국영사관과 외교통상부를 오가며 허씨의 진실을 밝혀줄 증인을 찾아내고, 50여쪽에 달하는 장문의 항소이유서를 2심 재판부에 제출하는 등 열성적으로 김씨의 유죄 입증에 매달렸다. 결국 서울북부지법 형사11부는 지난달 26일 검찰측 주장을 받아들여 김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승산 없는 싸움으로 여기고 있던 중국동포 허씨는 뜻밖의 승소 판결에 감격, 서울북부지검장 앞으로 “ ‘진실만이 세상과 사람을 움직일 수 있다’는 작은 신념이 제 핏줄의 근원인 한국에서 입증됐다는 게 너무 감사하고 기쁘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정작 진 검사는 그토록 바랐던 승소 판결을 법정에서 들을 수 없었다. 공판을 불과 3일 앞두고 뇌종양 수술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가끔 나타난 두통, 눈이 보이지 않는 증상을 무시한 것이 화근이었다. 단순 빈혈이라고 생각한 그는 남편이 지어준 보약을 먹어가며 낮에는 수사사건을 처리하고, 밤에는 공판사건을 준비하는 강행군을 계속했다.

지난달 17일 시어머니의 유방암 수술 때문에 병원을 찾은 진 검사는 우연히 암 관련 책자를 보다 자신의 증상이 암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혹시 하는 생각에 자기공명영상촬영(MRI)을 했다. 그의 머리 속에는 악성 종양이 자라고 있었다. 6개월을 준비해온 공판이 채 10일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휴직계를 내야 했고, 지난달 24일 뇌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수술 경과는 좋아 내년에는 일선에 복귀할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항암치료를 위해 20일 서울대병원을 찾은 진 검사는 “유죄 입증은 했지만 악덕업자가 집행유예를 받은 점이 아쉽다”며 “건강을 빨리 회복해 ‘정의는 지켜진다’는 신념을 잃지 않는 검사가 되겠다”고 말했다. 그는 1998년 연세대 법대를 졸업한 후 44회 사법고시에 합격, 2005년 1월 서울북부지검 검사로 발령받았다.

손재언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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