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원북스 설립 박건수씨/"좋은책 사장 안타까워 재기 결심"

입력
2004.07.06 00:00

1980, 90년대 국내 단행본 출판업계 부동의 매출 1위였던 고려원이 재기의 첫 걸음을 뗐다. 외환위기로 온 나라가 경제난을 겪던 1997년 4월 부도가 나면서 출판계에 큰 충격을 줬던 고려원이 '고려원북스'라는 이름으로 새로 태어났다.주역은 부도 전 고려원 전무로 일했던 박건수(사진)씨. 고려원북스의 사장을 맡은 그는 5일 신간 '생명의 물 우리 몸을 살린다'를 출간하면서 재기 의지를 밝혔다. 박 사장은 "고려원의 좋은 책이 사장돼 안타까웠다"며 "종합 단행본 신간 출간과 함께 절판된 옛 고려원 책을 속속 살려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박 사장은 "고려원을 되살려 달라"는 김낙천 전 고려원 사장의 간곡한 부탁을 받고 지인들의 자금을 모아 고려원북스를 설립했다며 이 출판사가 고려원의 후신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고려원의 재고 책과 판권을 모두 인수했다"며 "절판된 양서는 물론 다른 출판사로 넘어간 고려원의 옛 책을 다시 내는 방안도 검토할 것"이라고 의욕을 냈다.

고미술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김낙천씨가 78년 창립한 고려원은 85년 이후 국내 단행본 출판업계 매출 1위를 놓치지 않았다. 이틀에 한 권 이상, 한해 평균 200종을 내며 '출판공장' 소리를 듣던 고려원은 국내외 문학서적과 인문사상서는 물론 건강, 컴퓨터 등 실용서와 아동, 만화 등을 가리지 않고 출간했다. 국내 출판사 최초의 TV 광고를 비롯해 한해 평균 50억원 이상의 광고비를 쏟아 붓는 기업형 경영으로도 유명했다. 지금 같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94년에는 월 광고비가 롯데백화점, 대한항공을 앞선 적도 있었다.

어학 교재 사업에 무리하게 돈을 쏟아 부은 것이 직접 원인이 돼 쓰러졌지만 고려원은 그 뒤에도 오랫동안 독자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Vocabulary 22000' '오성식 생활영어' 등 영어 교재의 명성은 말할 것 없고 시·소설 등 문학서, 사상서 등에서 좋은 책을 많이 쏟아낸 덕이다.

지금 한창 지가를 올리는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는 고려원이 '꿈을 찾아 떠나는 양치기 소년'으로 먼저 냈으며, 덕성여대 이원복 교수의 교양 만화 '먼 나라 이웃 나라'도 원래는 고려원 책이었다. 국내 베스트셀러사를 쓸 때 빠지지 않는 정비석의 '소설 손자병법'을 비롯해 오에 겐자부로, 스티븐 킹, 김용 시리즈 등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기획물이 줄줄이 나왔다. 한일그룹의 도움 덕도 있지만 시 계간지('현대시사상')와 소설 계간지('소설과사상')를 한꺼번에 낸 출판사도 고려원이 전무후무하다.

고려원은 부도 이후 화의 상태를 지속하면서 재기의 몸부림을 쳤으나 별 성과가 없었으며 지난해 4월 법원의 '재기 불능' 판정에 따라 화의가 취소돼 파산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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