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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년 DJ교통사고 베일벗나/의문사委 "당시 목포 공화당후보가 배후" 진술 확보

입력
2002.09.16 00:00

1971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당한 의문의 교통사고는 대표적인 현대사의 미스터리 중 하나. 그런데 최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31년 만에 처음으로 사건의 배후인물을 언급한 진술을 확보, 비상한 주목을 끌고 있다.당시의 사고 후유증으로 지금까지 보행이 불편한 김 대통령 주변에서는 "교통사고를 위장한 암살 기도"라고 주장해왔으나 정확한 사고 원인이나 배후 여부 등은 베일에 싸여있다.

의문사규명위는 15일 "71년 전남 목포 선관위 직원이었던 김창수(金昌洙)씨 의문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 해 8대 총선 목포지역 공화당 후보였던 강모씨를 배후로 지목한 전문(傳聞)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위원회 관계자는 "강씨와 같은 목포 해병대출신자모임(청룡회) 회원 정모씨가 '강씨 선거운동에 핵심참모 역할을 했던 박모(78)씨가 이 같은 사실을 털어 놓았다'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위원회는 이 사건이 의문사가 아닌데다 활동시한이 임박했다는 이유 등으로 일단 조사를 중단한 상태이나 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조사 재개를 검토키로 했다.

위원회가 확보한 정씨 진술에 따르면 같은 해병대 원로인 강씨와 박씨가 최근 사이가 나빠지면서, 박씨가 가까운 회원 김모씨에게 "사실은 강씨가 71년 김 대통령 교통사고를 지시한 당사자"라고 털어놓았다는 것이다.

정씨가 김씨에게 전해 들었다는 얘기의 골자는 "한국전 서울수복 때 최선두로 진격, 중앙청에 태극기를 꽂은 사실을 자랑스러워하는 박씨가 2000년 12월 강씨가 이를 폄하하고 다닌다는 얘기를 전해듣고는 '당신이 71년 교통사고를 내도록 지시한 장본인인 줄 알고 있다'며 강씨에게 협박성 내용증명을 보냈고, 이에 놀란 강씨가 박씨에게 사과와 함께 용서를 구했다"는 것이다. 정씨는 다른 회원들도 김씨로부터 같은 얘기를 들은 사실이 있음을 확인한 뒤 위원회에 정식조사를 요청했다.

이와 관련, 박씨는 본보기자에게 "강씨가 나를 폄하하고 다니는데 화가 나 김 대통령 교통사고에 그가 관련된 내용을 담은 문서를 만든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내용증명을 보내기 전 해병대 후배들의 중재로 강씨가 사과해 실제로 보내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강씨는 "71년 총선 때 나는 김대중씨가 목포에 왔다는 사실조차도 몰랐으며 교통사고도 며칠이 지나서야 언뜻 들었다"고 부인했다. 강씨는 5·16쿠데타에 참여, 63년 국가재건최고회의 법률위원장을 거쳐 해병대사령관과 9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98년 국민회의에 입당, 현재도 민주당적을 갖고있다.

당시 김 대통령이 탄 승용차와 충돌한 14톤 덤프트럭 운전사 권모(67)씨도 "우발적인 사고였을 뿐, 강씨는 모른다"며 "김대중씨가 타고 있었는지도 나중에야 알았다"고 배후설을 부인했다.

그러나 71년 강씨의 경호를 맡았던 강모씨는 당시 "강씨는 공화당 후보로서 정보기관들을 사조직처럼 거느리며 수시로 선거관련 보고를 받았다"며 "DJ가 목포에 온 것도 몰랐다는 얘기부터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DJ교통사고

1971년 5월24일 오전 9시30분께 전남 무안군 국도에서 목포지역 총선 신민당후보 지원유세를 마치고 광주로 가던 김대중 대통령의 승용차가 중앙선을 침범해 돌진해 오는 14톤 덤프트럭을 피하려다 논에 쳐박혔다. 김 대통령의 승용차를 뒤따라오던 승용차는 트럭과 정면충돌해 신혼부부와 운전기사 등 3명이 숨졌다.

이 사건에선 처음부터 암살의혹이 제기됐다. 71년 대선에서 간신히 승리한 박정희 전 대통령과 공화당이 김 대통령의 출신구인 목포지역 총선승리를 위해 정보기관, 경찰, 폭력배까지 동원하던 상황이었다. 특히 사고 트럭이 공화당 의원 소유로 밝혀지면서 의혹은 더해갔다.

사고 운전자로 구속됐던 권모(67·현 부산 거주)씨에 대해서도 "진짜 운전자는 사고 후 도망가고 조수만 남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으나 지금껏 의혹 속에 그대로 묻혀 있었다.

/정원수·이진희기자

■ 당시 검사 허경만씨

1971년 목포지청 검사로 이 사건을 조사했던 허경만(許京萬) 전 전남도지사는 16일 "당시 배후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지만 입증할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 당시에도 배후설이 무성했는데.

"트럭 운전자가 졸다가 사고를 냈다고 주장했다. 일단 그에 상응하는 구속만 하면 된다고 봤다."

― 당시 신민당이 제기한 의혹들은 조사했나.

"배후가 있다면 사고낸 운전자나 사주한 사람이 자백을 했어야 했다. 정황만 갖고는 곤란한 것 아니냐."

― 운전자는 철저히 조사했나.

"사고 차량은 목포에 있는 짐을 실으러 가기 위해 서울에서 출발했다. 차량 회사가 공화당 전국구의원 소유라는 것은 알았지만 관련됐다는 단서가 없어 거기까지 조사할 필요가 없었다. 의욕을 갖고 조사했지만 입증할 수 없었다."

― 당시 공화당 후보 강모씨가 배후라는 얘기들이 나왔는데.

"그때도 이름은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전혀 문제가 안됐었다."

/정원수기자 noblelia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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