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친일문학을 다시 읽으며

입력
2002.03.06 00:00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가르마 같은 논 길을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입술을 다문 하늘아,들아…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눈물겨운 시다. 봄 정경 속을 배회하는 시인의 울분도 울분이지만, 그가 그리던 조국광복을 2년 남겨 두고 세상을 떴다는 점이 더 애통하다.

1943년과 45년 사이에 항일 시인들이 잇따라 타계했다. 한용운 이육사가 44년에 영면했고, 윤동주는 해방을 눈 앞에 두고 45년 후쿠오카 감옥에서 죽음을 맞았다.

주옥 같은 시를 쓴 이 시인들은 옥사하거나 영어생활 후유증으로 병사했다.

그에 앞서 심훈은 36년 35세로 요절했고, 이상도 이듬해 일본 감옥에서 27세로 옥사했다. 그들은 광복에 대한 간절한 희구와 현실적 절망을 품고 눈을 감았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편에는 안락한 길이 있었고, 그 길을 걷는 유명 문인도 많았다.

시로는 모자라서 소설까지 써 부일 행위를 한 시인도 있었다. 1943년 발표된 ‘최 체부의 군속 지망’이라는 소설이다.

최 체부는 읍내와 산골 마을을 다니는 우편 배달부다. 그에게는 노모와 초등학교 2년생인 아들 도시오가 있다.

집과 우체국에서 황국신민으로서 충실한 생활을 하던 그는 어느 날 경찰서 게시판에서 ‘육군 군속 모집’을 본다.

그는 벗 가네무라로부터 “나 군속 지원했네”라는 자랑을 듣고, 갑자기 자기 직업을 누추하게 느낀다.

다음날 경찰서 경무주임은 ‘육군 군속 지망’이라는 탄원서를 받게 된다. ‘덴노헤이카 반사이(천황폐하 만세)’로 시작되는 최 체부의 혈서였다.

그는 먼 남녘 나라로 떠났다. 집은 전보다 궁색하지 않게 되었고,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이 작품이 수록된 ‘친일 문학작품 선집2’에는

평론 1편, 시 4편, 시인인 그로서는 안 써도 상관 없었을 단편소설 1편, 수필 3편, 르포 1편 합계10편이 현재까지 발견된 서정주의 친일 작품이다>라는 주석이 붙어 있다.

두 권에 실린 이광수 김동인을 비롯하여 모윤숙 노천명 등의 확신에찬 듯한 친일 작품 역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앞의 소설에서처럼 그들이 존경을 받았을 리는 없으나, 집은 전보다 궁색하지 않았을 것임에 틀림없다.

임종국의 ‘친일문학론’은 우리 근현대 문학사를 장식하는 문인들의 훼절과 배신, 비겁이 어디서시작되어 어디로 흘러 갔는지를 명료하게 보여 준다.

1939년 일본인 학무국장은 “문학이 대중에 미치는 영향이 크니 당국과 긴밀한 연락을 가짐으로써적극적으로 시국에 협력해 달라”며 조선문인협회 결성을 권장했다.

회장이 된 이광수는 “반도 문단의 새로운 건설은 내선(內鮮)일체의 구현에 있다”는 취임사로 답했다. 어찌 문인만의 일이랴.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전분야에 걸친 변절이다.

3ㆍ1절에 맞춰 국회의원들이 친일 반민족 행위자 708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관련된 일부에서 항의하는 목소리도 요란하나, ‘역사의 심판에는 공소시효가없다’는 그들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이는 반세기만에 다시 찾은 역사 광정의 기회다. 애국인사와 친일 반역자를 구분함으로써 역사 위에 합당한 자리 매김을 하는 작업이다.

창씨개명을 하고 일본군 장교도 지낸 박정희는 왜 명단에서 누락됐는가를 질타하는 소리도 들린다.

건립중인박정희기념관, 홍난파기념관 등에는 그들의 공헌과 비행이 정직하게 반영되어 역사의 교훈으로 남기를 바란다.

개인이든 민족이든, 반성하지 않는 삶은 삶으로서 가치가 없다. 후손이 공명정대함으로써, 조상의 오명은 오히려 줄고 미명은 살아 남게 될 것이다.

박래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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