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위는 백년손님' 이젠 옛말

입력
2000.11.16 00:00

장모-사위 갈등 늘어나…장모등 처가발언권 강해져결혼 3년째인 김모(33.회사원)씨는 가끔 '아내와 결혼한 것이 아니라 장모와 결혼한 게 아닌가'하는 착각에 빠지곤 한다.

맞벌이인 김시 부부가 아이를 맡기기 위해 처가옆으로 이사하면서 그는 "퇴근이 늦다" "휴일에 잠만 잔다"는 장모의 지청구를 들어야 했다.

부부싸움이라도 한 날이면 "사위가 딸을 제대로 대해 주지 않는다"는 야단까지 들어야 했다. 퇴근 시간이 되면 "친정에 가서 저녁을 해결하자"는 아내와 실랑이를 벌이기 일쑤다.

저녁 차리는 것을 귀찮아 하는 아내 심정은 이해하지만 장모가 차려주는 밥상에는 늘 잔소리가 반찬처럼 따라 나오는게 싫기 때문이다.

결혼하기 전만해도 처가의 가족애가 돈독한 것을 좋게 생각했던 박모(35.회사원)씨는 이제는 '어떻게 하면 장모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고민중이다.

가족들의 생일에서 먼 친척들의 대소사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데리고 가려는 장모 때문에 그는 휴일을 마음 편하게 쉬어보지 못했다.

장모와의 갈등 때문에 이혼에 이른 경우도 적지 않다. 결혼 당시 처가의 도움으로 아파트를 장만한 김모(31.학원강사)씨. 딸을 애지중지 키워온 장모는 아파트를 자신의 집과 가까운 곳에 구하게 한데다 전화번호까지 국번만 빼고 같은 번호를 사용하게 했다.

드세고 간섭이 많은 장모때문에 '부부싸움'은 '장모와의 싸움'으로 이어지곤 했다.

모든 일은 친정어머니가 시키는대로만 하는 아내에게 "어머니나 나중에 한 사람을 선택하라"는 말이 불씨가 돼 결국 파경에 이르고 말았다.

요즘 장모와의 갈등대문에 고민하는 사위들이 늘어나고 있다. 가족문제 상담소를 찾는 사람 가운데는 고부 갈등못지않게 장모.사위 갈등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가족상담연구소 최규련 소장은 "지나치게 밀착적인 모녀 사이가 장모.사위 갈등으로 이어지기 쉽다"고 말했다.

노년기가 길어지면서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더 오래 지속되는 데다 요즘 어머니들은 아들보다 딸에 더 강한 집착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어머니들이 딸을 시집보내면서 '자식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며 사위와 파워게임을 벌이기도 한다.

'처가와 화장실은 멀수록 좋다' '사위는 백년 손님'이란 옛말이 있을정도로 예전의 가족관계가 부계 중심이었다면 요즘은 점차 모계쪽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는 추세다.

장모.사위 갈등은 이러한 현상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상명대 정현숙(가족복지학과)교수는 여성의 지위향상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다.

여성이 고학력이고 직업을 가짐으로써 가정경제에 공헌하는 정도가 커질수록 친정 부모의 파워도 커지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경제적 지원이나 가사, 육아등의 도움을 받게 되는 것도 처가의 발언권이 강해지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또 집안에서 장인 대신 장모가 어른노릇을 하는것도 사위를 불편하게 한다.

자신의 결혼생활에서 많은 것을 참고 살아야 했던 장모들의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딸의 역성을 들기 때문이다. 과거 친정어머니처럼 "참고 살라"고 말하는 대신 "당장 이혼하라"고 부추기기도 하다.

정교수는 "마더콜플렉스가 고부 갈등을 낳듯 장모.사위 갈등은 결혼을 하고서도 자기가 자라온 원가족에서 독립하지 못하는 딸의 문제"도 지적했다.

최소장은 사위들에게 "아내가 지나치게 친정에 의존적인 경우 자신이 느끼는 불편을 이해시키고 부부중심의 가정을 꾸려갈 것"을 조언했다.

또 "여자가 남편과 시댁에 맞추어 살아야 했던 예전과 달리 요즘은 아내와 남편의 지위가 대등해지고 처가와 시댁의 비중도 같아졌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동선기자

ween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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