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관객 100만 돌파한 '쉬리'

입력
1999.03.06 00:00

「쉬리」가 한국영화의 흥행기록을 바꿔가고 있다. 「쉬리」는 어제(5일) 관객 100만명을 돌파했고, 오늘은 지금까지 한국영화 중 최대관객을 동원했던 「서편제」(103만명·서울 기준)의 기록을 깰 것으로 보인다. 또한 국내최대 흥행기록을 세운 할리우드 영화 「타이타닉」(226만명)도 머지않아 따돌릴 것으로 전망돼 영화계가 흥분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 스크린 쿼터제(한국영화 의무상영제) 논란으로 우울했던 문화계에 통쾌하고 고무적인 소식이다.「쉬리」는 남한에서 개발한 액체폭탄을 둘러싼 남북한 특수요원들의 치열한 첩보전을 그린 영화다. 할리우드 영화 「다이하드 3」같은 구성과 액션, 반공물 분위기, 멜로영화적 요소가 복잡하고도 탄탄하게 결합되어, 감동적이라기 보다는 『짜임새 있고 재미있다』는 감상을 남긴다. 이 영화는 완성도 높은 한국적 액션영화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한국영화를 세계화하려면 우리 정서와 문화적 토양에 맞는 영화에 더 치중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곧바로 할리우드 식의 영화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서편제」(1993년)가 전자의 모델이라면, 후자의 본보기로서 요란하게 등장한 것이 「쉬리」다. 두 영화는 우리가 두 가지 방향의 영화를 모두 성공시킬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영상산업의 미래에 희망을 갖게 한다. 「서편제」는 이청준의 뛰어난 원작소설과 임권택감독의 치열한 작가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고, 「쉬리」는 발상전환과 과감한 투자, 정교한 제작기술이 받쳐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된다.

「쉬리」에 마음을 어둡게 하는 요소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북한 특수요원들의 섬뜩한 훈련장면 등 북한의 폭력성이 지나칠 정도로 강조되고 있다. 많은 영화평론가들도 이 점을 비판하고 있으며, 남북한 당국 간에도 불협화음이 일고 있다. 국가정보원이 「쉬리」를 높이 평가하고 국방부 역시 이 영화를 비디오로 제작해 각 군 교육시간에 상영키로 하자, 북한은 즉각 『남북 대결의식과 전쟁열을 고취하려는 반민족적 행위』라고 반발하고 있다. 허구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도 민족적 정서를 좀더 고려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분적 흠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만 홍콩 호주 등에서 해외 배급권에 대한 문의가 잇달아 들어오는 등 「쉬리」의 돌풍은 매우 고무적이다. 지금은 정부가 영화를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집중육성하려는 시기라는 점에서 특히 그러하다. 근래 「편지」 「접속」 「8월의 크리스마스」 「투캅스」등 우리 영화는 작품성과 재미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보이고 있다. 「쉬리」현상으로 우리 영화가 한 단계 더 올라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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