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희암 연세대 농구감독/진짜 승부사는 부드럽다(스타와 스타일)

입력
1996.11.20 00:00

◎팬들의 열광속 코트의 고독을 아는가/비정한 승부의 순간들… 그는 독종이다/그러나 마음에 담아둔 다정한 목소리/“아내사진을 간직하면 편안합니다”스타는 명멸한다. 대중의 사랑은 변덕스럽고 승부의 세계는 비정하므로. 무대에서 그라운드에서 스포트라이트는 영원히 한 자리, 한 사람만을 향해 쏟아지지 않는다. 사랑을 잃은 배우, 자신과의 싸움에서 패배한 선수는 퇴장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승부의 세계는 아름답다. 승부 그 자체 만으로 황홀하다. 승부의 순간, 비록 갈채가 자신을 비껴가더라도 명승부사는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것을 다 던졌으므로. 승리의 환호를 한 몸에 받아도 떨지 않는다. 승부의 세계는 영원히 끝나지 않음을 잘 알고 있으므로.

승부의 세계에서 사는 법을 아는 남자. 승부의 철학을 몸에 터득한 남자. 인생에서 수많은 승부수를 던진 남자.

최희암. 41세. 연세대 농구팀 감독. 그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승부사이다.

그는 흔들리지 않는다. 수십초를 남겨두고 전세가 역전되어도 경지에 들어선 수도승처럼 평심을 유지한다. 몸에 밴 그의 승부사적 기질과 감각은 오히려 불리한 상황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그래서 진실로 강한 승부사이다.

최씨에 옹니박이, 고수머리.

그는 코트의 선수로서보다 벤치의 조련사로 뒤늦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초등학교 때는 달리기에 소질을 보였으나 휘문중에 입학하면서 농구공을 처음 잡았다. 당시로서는 큰 편인 168㎝의 키가 농구부장이었던 담임선생님의 눈에 띄였던 것. 그러나 휘문고, 연세대, 현대건설을 거치는 동안 국가대표 한번 못해본 탓에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78년 현대건설 농구팀 창단멤버로 입단한 그는 수비전문이어서 그런지 박수교 신선우 선수 등 당시 쟁쟁한 동기들의 그늘에 가렸다.

결국 스타플레이어의 꿈을 접고 업무직을 자청, 중동건설붐이 한창이던 85년 열사의 이라크 바그다드 지사로 떠났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일지도 모를 인생의 승부수를 띄웠다. 1년 만에 지도자로 바스켓에 재도전했다.

그의 집념은 86년 부임 당시 꺾일대로 꺾인 「독수리」의 날개에 비상의 기운을 불어넣었다. 이어 농구대잔치 사상 최초로 대학팀을 93∼94시즌 정상에 올려 「연세대 신화」를 창조하는 위업을 이루었다.

그의 세가지 별명은 그의 집념과 승부사적 기질을 잘 말해준다.

먼저 「철인 28호」. 아내 조민경씨(38)가 붙여준 것이다. 부드러운 인상과는 영 다른 무쇠와 같은 고집을 만화영화 주인공에 비유한 말이다.

최감독은 스카우트 대상을 찍으면 확답을 얻어낼 때까지 달라 붙는다. 낮밤을 안 가리고 거의 매일 선수집을 찾아 설득한다. 오죽했으면 서장훈 선수의 어머니가 『입학 동의서에 도장찍어 줄테니 제발 더 이상 집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말라』고 사정했을까.

「아카징키」는 선수시절의 악바리 근성을 빗댄 것. 현대건설팀에서 활약할 때 그는 어떤 부상에도 훈련을 거르지 않았던 연습벌레였다. 발목을 삐어도 머리가 깨져도 부상입은 곳에 빨간 약을 바르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돌빠구」의 유래도 이에 못지 않다. 돌보다도 더 단단하고 냉혹한 독종이라는 의미. 학교 후배들이 치를 떨며 붙인 것이다. 해군시절 그는 공부도 할겸 모교인 연세대 숙소에 기거하면서 후배들을 지도했다. 『말이 지도지 저승사자가 따로 없었다』는 게 한 후배의 당시 회고이다. 다리가 아프다고 핑계를 대면 『다리를 쓸 필요가 없는 운동을 하라』며 윗몸일으키기 1,000번, 팔굽혀펴기 500번을 지시했다. 팔이 아프다고 하면 훈련시간 내내 운동장돌기만 시켰다.

그의 취미는 마작. 잡념을 없애기 위해서다. 104개의 벽돌로 이뤄지는 의외성과 가변성을 좋아한다. 마작에서 승부의 철학을 배운다.

경기 전에는 일주일 전에 이발을 하고 매일 목욕을 하며 술을 멀리한다.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는 것이 경기에 임하는 변함 없는 자세이다. 코트에서는 벤치에 앉기 전 꼭 기도한다. 경기가 안 풀릴 때는 안경을 치켜올리는 버릇이 있는데 흥분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최감독은 코트 밖을 떠나면 승부사적 기질을 접는 보통 남자이자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 자상한 아버지이다.

『아내의 사진을 간직하면 편안합니다』 모델로 TV의 속옷광고에 출연해 다정다감하게 속삭이던 카피처럼 그는 사실 부드러운 남자다. 선수들과 저녁회식을 할 때는 가능한 가족을 부른다. 지갑 속에는 늘 아내사진이 자리잡고 있다.

학자풍의 호감어린 인상, 사근하고도 조리있는 말씨, 사람좋아 보이는 너털웃음, 승부의 세계를 떠나서는 손해보는 걸 편안해 하는 마음씀씀이 등은 비정한 승부사의 다른 얼굴이다.

최감독은 단순한 농구인이기를 거부한다. 사회전체를 이해하는 상식인이기를 원한다. 신문을 누구보다 열심히 읽고 한달에 최소한 두권의 책을 읽는다. 「로마인 이야기」 「인물 삼국지」는 최근 심취한 책.

선수들에게도 충실한 학업생활을 강조하고 자주 외부 강사를 초빙해 강연을 듣게 한다. 불우아동시설을 자주 방문해 이들과 어울리게 하는 것은 자칫 비뚤어지기 쉬운 선수들의 스타의식을 올곧게 하기 위한 노력이다.

최고의 에너지를 폭발시키며 인생의 절정에 서 있는 최희암.

그러나 그에게 승부는 끝나지 않았다. 코트에서든 인생에서든. 자신과의 마지막 승부에서 이기는 자만이 영원한 승부사가 될 수 있다고 믿고 있으므로.<남재국 기자>

□약력

55년 전북 무주 출생·41세

74년 연세대 체육교육학과 입학

78년 현대건설 농구팀 창단멤버로 입단

85년 현대건설 바그다드지사 근무

86년 연세대 농구감독 부임

88년 연세대 체육학 석사

92년 미국연방체육대학원(USSA) 박사과정 입학

93년 연세대 첫 농구대잔치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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