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상회/폐지하느냐/계속실시냐

입력
1995.07.20 00:00

◎전국시행 19년째… 지방자치시대 맞아 존폐 논란/“정권유지악용 어용조직” “이웃간 만남의장” 양론반상회가 다시 「도마」위에 올랐다. 민선단체장 체제의 출범과 함께 반상회 폐지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시행된지 19년째를 맞는 전국 동시 반상회가 올해부터는 상당히 변화될 것으로 보인다.반상회 폐지론의 핵심은 반상회가 어용 주민자치 조직이라는 것이다. 반상회의 발상이 일제시대의 「애국반」에서 나왔고 「유신시대」인 76년 반상회가 부활된 뒤에는 권위주의 정부에 의해 정권 안보 차원에서 악용돼 왔다는 점이 폐지론의 첫째 이유다. 지방자치시대를 맞아 이같은 중앙집권적인 주민 통제수단은 마땅히 폐지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반대 입장도 만만치않다. 정치적인 이유를 떠나 반상회는 이미 주민자치조직으로 상당히 뿌리내렸다는 점이 첫째 이유다. 더구나 갈수록 소원해지는 이웃간의 정을 나누는 만남의 장으로도 반상회는 충분히 존속될 필요가 있다는 견해다.

반상회는 현재 매달 25일 반상회의 날에 전국적으로 일제히 열린다. 최말단 행정조직인 반은 현재 전국적으로 45만6천2백46개. 반상회 개최는 시·군·구별 「통반설치조례」에서 『반장은 월 1회 정기적으로 반상회를 개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게 유일한 근거규정이다. 과거에는 반상회에서 출석까지 부르고 주민 출석률을 내무부에 보고하기까지 했지만 이같은 풍토는 90년대 들어 사라졌다.

이제 민선 시·군·구청장은 현재의 통반설치조례를 개정, 시·군·구의회의 의결을 거치면 반상회를 몇 개월에 한 번씩 열 수도 있고 아예 열지 않을 수도 있게 됐다. 단 반상회 존폐여부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 전제가 돼야 할 것이다.<박정태 기자>

◎존속론/김성호 지방행정연 책임연구원/“자율성 확대 이미 관주도 탈피/주민자치조직 뿌리내려/민의수렴 사회적 효용성 있다”

반상회는 벌써 19년째 시행돼 오고 있는 제도다. 시행초기에는 반상회가 반강제적으로 조직, 운영돼 주민통제조직의 하나로, 또 정부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용돼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문민시대인 오늘날 반상회는 당시와 달리 우리나라 고유의 친목회 형태로 자율적으로 열리고 있다. 반회보의 지면구성도 행정시책이나 홍보기사를 대폭 축소하고 마을소식이나 생활정보, 생활상식등 생활에 필요한 지면을 확대해 주민생활과 가까워지고 있다. 또한 반상회에서 모아진 건의사항은 반회보에 싣고 그 처리결과와 추진상황을 주기적으로 게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자치단체가 반설치조례를 폐지키로 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반상회는 권위주의 시대의 유물이라는 인상이 여전히 짙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선거때만 되면 반상회를 통해 노골적으로 여당쪽 후보를 홍보해 반감이 생긴데다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들의 귀중한 시간을 빼앗았다는 점도 작용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행상의 문제점은 반상회 운영의 자율성 확대로 거의 해소됐다. 정치적 목적으로 반상회를 이용하는 것도 현행 공직선거법 및 선거부정방지법에서 철저히 규제하고 있어 문제되지 않는다.

어떤 새로운 제도를 만들고 정착시키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이를 폐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부정적 측면만으로 반상회 존폐문제를 논하기 전에 우선 반상회의 사회윤리적 효용성과 공익성을 분석해 보고 신중히 결정하여도 늦지 않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반상회와 같은 주민자치적 모임을 시행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첫째 반상회는 혼자서는 살 수 없는 개인이 이웃간에 친목하고 화합하여 살 수 있는 장으로 기능한다. 우리민족은 농경사회를 거쳐오면서 오랫동안 촌락중심의 주민공동협동체인 두레와 계를 조직, 이웃간에 어려움과 기쁨을 나누며 살아왔다. 그런데 산업사회의 산물인 급격한 도시화로 우리사회는 익명성의 사회가 되었고 나와 내 가족 이외의 이웃에 대하여 무관심하게 됐다. 심지어 사소한 주차문제로 이웃간에 살인까지 하는 살벌한 사회로 변했고 도덕과 문화의 황폐화와 인간성 상실이 심각해지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정신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반상회는 필요하다. 이웃의 삶을 존중하고 이웃의 소중함을 체험하려면 장(장)이 필요하다. 반상회는 이웃과 이웃이 대면하여 익명성을 줄이고 이웃간에 친목과 화합을 도모하는 장으로서 기능할 수 있다. 또 이웃이 어려움에 처하거나 마을에서 긴급한 사태에 직면할때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이웃간에 기꺼이 협조할 수 있는 대화의 장이 필요하다. 지방자치시대에는 주민이 직접 나서 마을의 현안을 토의해 해결방안을 찾고 자율적으로 복지증진을 추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자치단체장은 가장 기초적인 주민자치조직인 반상회를 통해 주민들의 생활관련 민원이나 건의사항을 수렴하고 행정에 반영하며 국정 및 시군구정을 알려줌으로써 지방자치를 활성화할 수 있다.지금은 반상회의 사회윤리적 효용성과 공익성을 감안해 시행상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전래의 미풍양속을 이어나갈 수 있는 주민자치조직으로 활성화하는 게 더 중요한 시점이다.

◎폐지론/김필동 충남대 사회학교수/“일제때 창설 유신정권이 부활/반강제적 시행 주민통제 활용/자발적 부녀회로 대체 필요”

반상회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일제 식민지 치하였던 1917년이었고 지난 76년 유신 정권이 이를 부활시켰다는 점에서 반상회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반상회는 한마디로 「최말단 행정조직」으로, 위로부터 내려온 명령을 아래로 시달하는 편리한 전달통로였다.

반상회는 이처럼 단순한 행정편의용 조직으로서 뿐만 아니라 정부 정책의 홍보와 주민의 동원, 주민의 통제와 감시라는 정치적 목적으로도 활용되었으며 그 결과 선거 때만 되면 통·반장의 선거 동원이라는 시비거리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반상회의 탄생과 성장과정을 보면 민선 자치단체장 체제의 출범과 함께 왜 반상회 폐지가 새롭게 거론되고 있는 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지금까지 반상회는 시·군·구 조례사항이었지만 전국 어디서나 같은 날짜, 같은 시간에 획일적으로 시행돼 사실상 강제성을 띠고 있었다. 반상회에 참여하는 대통령과 장·차관, 시장등을 텔레비전에서 보여줌으로써 반상회 참여를 당연하게 만드는 여론조작도 동원됐다.

그러나 이제 민선 자치단체장이 취임하면서 시·군·구에 따라 반상회를 폐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대전 중구청의 경우가 좋은 예다. 그러나 상급기관인 대전시의 반대에 부딪쳐 자칫 한 구청장의 「훌륭한 출발」이 좌초될 조짐마저 보인다.

상급기관으로서는 행정편의와 행정의 효율성이 더 중요하겠지만 민선 기초단체장은 이보다 주민의 편의를 더 우선시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까지의 관주도적 반상회는 이번 기회에 폐지돼야 한다.

통반장이 동사무소에 가서 전달사항을 받아다가 주민들에게 일방적으로 나눠주는 식의 반상회가 유지되는 한 풀뿌리 민주주의가 정착할 수 있는 길은 멀어지게 된다.

최근 아파트가 늘어나면서 입주자들간에 공동주택 관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자연스럽게 주민자치조직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공동주택 뿐만 아니라 일반주택에서도 이제는 주민생활과 직결된 여러가지 사안을 다룰 수 있는 자발적 조직이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이같은 사회적 필요성때문에 기존의 반상회가 주민들의 건의사항을 수렴하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콩 심은 데 콩 난다」는 옛말처럼 반상회 조직을 근간으로 하는 건의사항 전달로는 민의가 제대로 전달될 수 없다.

관주도적인 반상회보다는 차라리 부녀회 조직이 주민생활과 관련된 민원처리에 더 적극적이었다. 지금의 반상회와 같은 말단 행정조직으로는 건의사항에 대한 정치적 압력을 행사할 수도 없고 다른 반과의 연대도 형성하기 힘들다.

우리는 두레나 계와 같은 자발적인 결사체를 만들어온 오랜 전통이 있다. 이번 삼풍백화점 붕괴참사후 현장에서 벌어진 민간 구조활동 및 자원봉사활동에서도 확인됐듯이 아래로부터 넘쳐 흐르는 자발적인 의욕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공식적인 행정기구는 턱없이 부족했다.

국제경쟁력이 날로 중요해지고 있는 시점에서 「크고 좋은 것」을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으로 틀어쥐려는 우는 하루라도 빨리 사라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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